2년 끌어온 LG-SK 배터리 전쟁 극적 합의..바이든이 끝냈다

문창석 기자 2021. 4. 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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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 편만 들 수 없었던 美 정부..LG·SK에 합의 종용
美 현지에선 LG-SK 합의 두고 '바이든의 승리' 보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놓고 2년 동안 미국에서 법적 분쟁을 벌였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둘 중 어느 한 쪽 편만 들어주기 어려웠던 바이든 행정부의 강력한 합의 요청이 이번 합의의 주요 배경인 것으로 풀이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11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터리 분쟁을 모두 종식하기로 합의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019년 4월부터 진행된 모든 소송 절차는 마무리됐다. 양사는 이번 합의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현재가치 기준으로 총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을 합의된 방법에 따라 지급하기로 했다.

당초 양사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 이후에도 합의금 규모를 둘러싸고 LG(약 3조원)와 SK(약 1조원)의 주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당분간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이번 분쟁에서 어느 한 쪽만 선택하는 것보다는, 합의를 통한 해결을 강하게 원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 이번 합의의 주요 배경인 것으로 분석된다.

ITC 결정에 따라 SK가 미국 내 사업을 못하게 된다면, 대대적인 전기차 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 정부는 배터리 수급난으로 타격을 받게 된다. 현지에선 배터리 공급망이 취약한 미국 완성차 업체까지 동반 부진에 빠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SK가 미국 사업을 철수하면 중국에서 배터리를 수입해야 하는데, 이는 중국을 견제하며 의존도를 낮추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에 역행한다.

공화당의 텃밭이었지만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에 더 많은 표를 줘 자신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조지아주(州)를 외면할 수 없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상황도 있었다. 배터리 공장이 지어질 조지아주는 SK가 철수하면 2600개 일자리가 날아갈 상황이라, 소속 상원의원이 중재에 나섰고 주지사도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쓰라고 세 번이나 요청하는 등 여론도 부담이 됐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거부권을 행사해 SK이노베이션을 구제해야 할 정치적인 필요성이 있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의 모습. 2021.4.1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부담이 매우 컸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건 ITC 소송에서 승소한 LG에너지솔루션을 외면하고 패소한 SK이노베이션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미국 정부 입장에선 해외 기업들의 다툼에 개입해 ITC의 법적 판단을 뒤집으면서까지 어느 한 쪽 편만 들어주는 건 무리가 있어서다.

특히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윤리적 잣대가 엄격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를 사실상 묵인하는 거부권 행사는 더욱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16년 ITC가 설립된 이후 100년이 넘는 동안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은 단 6건만 행사됐는데,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해선 아직 1건도 없을 정도로 지식재산권 침해는 미국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직접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또는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어느 한 쪽의 손만 들어주는 부담을 지는 것보다는 양사가 합의하도록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날 미국 현지에서 양사의 합의를 두고 '바이든이 승리했다'는 보도가 이어진 이유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거부권 행사 시한이 지나기 전에 양사에 합의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과 미국 정부는 양사가 합의에 도달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전했다. 양사도 입장문을 통해 "합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준 한·미 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며 미국 정부 차원의 개입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SK이노베이션이 입주해있는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모습. 2021.4.1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급속하게 커지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분쟁이 지속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크다는 양사의 속내도 이번 합의의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SK는 미국 사업을 철수할 경우 포드·폭스바겐에 막대한 위약금을 줘야할 뿐만 아니라 전세계 3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 시장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LG도 회사의 역량을 사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송에 얽매이는 등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실적으로는 막대한 소송 비용도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 행사가 무산되면 SK는 ITC의 결정에 대해 미국 연방 항소법원에 항소할 예정이었고, 델라웨어 연방법원에서도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항소 절차는 약 1년, 손해배상 소송은 약 3~5년 정도 걸리는데 이 경우 소송 비용은 눈덩이처럼 더 불어날 수 있었다.

지난 2019년 첫 소송 제기 이후 2년 동안 양사가 지출한 소송 비용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회사 측 관계자는 "이번 합의로 인해 소송 비용을 줄인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며 "그대로 소송을 이어갔다면 합의금보다 소송 비용이 더 클 뻔 했다"고 설명했다.

지속된 분쟁으로 인한 양사의 이미지 실추도 합의의 배경이 됐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싸우는 동안 경쟁자인 중국 기업에게 배터리 영토 확장의 기회를 넘겨주고 있다는 점도 국민 여론을 더욱 악화했다. 지난 1월 정세균 국무총리는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국민에게 이렇게 걱정을 끼쳐드리면 되느냐"며 합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양사가 합의하면서 SK이노베이션에 대한 ITC의 수입금지 조치도 무효화됐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도 차질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SK는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를 포드·폭스바겐에 공급할 예정이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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