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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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호랑이 그린다더니 고양이 그린 통신 3사의 5G 2년

입력 2021. 04. 13. 00:33 수정 2021. 04. 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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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라지만 5G 투자비 축소
소비자 사용 늘릴 '킬러 앱' 내놔야
이영렬 서울예술대 영상학부 교수

5세대 이동통신(5G) 서비스가 국내에서 상용화된 지 지난 3일로 꼭 2년이 지났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위해 밤 11시 올빼미 작전으로 1호 개통한 그날의 흥분과 탄성이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2년 5G가 잘 터지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불만 속에 5G 상용화 시작 때의 팡파르와 장밋빛 홍보 문구는 어느 사이 묻혔다.

5G 상용화 1년 시점에는 ‘반쪽짜리 5G’ ‘무늬만 5G’라는 제목의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더 기다리면 5G 기지국이 빠르게 구축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통신 3사는 망 구축 투자비를 전년보다 오히려 각각 24~30% 줄인 것으로 연간 실적 발표에서 나타났다. 통신 3사는 전송속도가 4G LTE보다 20배 빨라 ‘진짜 5G’라는 초고주파(28GHz) 대역을 활용하라는 정부 방침에도 난색을 보인다. 왜 그럴까.

통신사는 5G 망을 깔아 수익이 늘어날 게 분명하다면 빚을 얻어서라도 기지국을 만들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사용을 폭발적으로 늘릴 콘텐트(킬러 앱)를 통신사들이 찾지 못한 데 근본적인 고민이 있다. 4G는 3G가 갖지 못한 ‘동영상 시청’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처럼 단기간에 가입자가 늘어났다. 3G도 2G 때는 하지 못했던 ‘웹 검색’이 가능해 가입자 몰이가 이어졌다.

영국의 통신 미디어 조사기관 오범(Ovum)은 “5G에는 소비자 대상의 킬러 앱이 없고 통신사들이 몸부림치며 이를 찾으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신 3사는 상용화 초기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이 5G의 킬러 앱이라며 콘텐트를 쏟아냈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지금 주류가 아닌 틈새 콘텐트로 재확인됐을 뿐이다.

한국은 4G의 데이터 전송 속도가 세계 1위 수준이고, 공공 와이파이(Wi-Fi) 속도도 4G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빠르다. 다수의 소비자는 4G 무제한 상품 등으로 별 불만이 없고 5G와의 속도 차이도 현격히 다르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이처럼 통신사는 5G에 비싼 요금을 물리고 가입자를 빠르게 늘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니 5G 망 투자를 과감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통신사 내부에서는 “5G에 너무 서둘렀다. 장비업체만 좋은 일 시킨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신사는 호랑이의 꼬리를 잡은 채 손을 놓지 못하는 형국에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호랑이를 그리려 했으나 고양이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랑이를 잡으러 산에 간 이상 호랑이를 무서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5G는 소비자에게 4G보다 커진 용량과 높아진 기능을 제공하고, 산업에는 4G에서 어려웠던 신기술 융합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통신사는 이 기능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소비자에겐 5G에서만 즐길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트를 만들어 줘야 한다.

글로벌 통신업계가 5G를 채택한 동력은 애초부터 산업에서 기업 대 기업 간(B2B) 활용이었다. 5G는 4G보다 빠른 기술이라기보다는 스마트 시대를 이끄는 생태계의 주춧돌이다. 공장과 유통 현장 같은 산업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신경망이고, 스마트 교통이나 스마트 시티 등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주도 경제의 혈관이다.

5G가 산업에서 이러한 잠재력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통신사와 정보기술(IT) 업계, 산업, 그리고 정부까지 머리를 맞대고 혁신을 해야 한다. 정부는 ‘5G를 통한 국가 산업 생산성 제고’를 위해 통신사 등과 파트너가 되어서 같이 뛰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5G)의 성공에는 기존과 다른 접근법이 요구된다. 5G는 처음부터 ‘세계 최초’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 간 ‘스마트 혁신’의 경주였다.

이영렬 서울예술대 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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