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대선 리셋, '선거 공식'이 깨졌다

이기수 논설위원 입력 2021. 4.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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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방송사 출구조사가 주는 ‘시각적 쇼크’가 있다. 4월7일도 그랬다. 60초 카운트다운 후 뜬 표차는 역대급이고, 야당 압승의 여론조사 흐름 그대로였다. ‘샤이 진보’는 없거나 투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을 찍다 처음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는 지인(56)도 딱 그 경우였다. 선거 공식도 다 깨졌다. 보수야당이 처음으로 서울 25개 구를 독식했고,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후 10년째 민주당을 민 20~40대의 진보·중도 연합도 무너졌다. 여야를 놀래키고 발버둥치게 한 선거의 승자는 늘 그렇듯 국민이었다.

이기수 논설위원

4·7 선거의 키워드는 셋이다. 화난 20대, 급증한 스윙보터, 선거를 흔들어도 바꾸진 못한다는 네거티브다. 그중에도 선거판을 객토한 것은 20대였다. ‘이남자’의 72%가 보수후보를, ‘이여자’의 15%가 1·2번 밖 후보를 찍었다. 정치적 존재감을 확 드러낸 선택이었다. 유세차에 올라 그들이 먼저 말했다. 청년은 하루하루가 숨막히는 ‘약자’이고, 내로남불을 못 참겠다는 ‘n포세대’이며, 평등하게 자란 집을 벗어나면 젠더도 사회적 문제로 보게 된다고…. “보수화?”란 시선엔 “오세훈 생태탕도 싫다”고 선을 긋는다. ‘좋아서, 필요해서’보다는 ‘상대가 싫어서’ 찍었다는 얘기다. 그 저류엔 6070 보릿고개 세대나 4050 민주화 세대가 ‘라떼의 담론’으로 20대를 오독하고 소비하지 말라는, 우리의 분노는 또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경고가 실렸다. 화는 삭여졌을까, 아니면 이제 시작일까. 전체 유권자의 30~40%까지 급증했다는 스윙보터 선택지도 예단은 금물이다. 여도 야도 지금부터 하기 나름이다.

“높은 지지는 한편으로 굉장히 두려운 일이다.” 2018년 지방선거 압승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한 말이다. 대통령은 유능함, 도덕성, 국민을 받드는 태도를 주문했었다. 그 경구(警句)는 올해 4월7일 현실이 됐고, 이제 완승한 제1야당도 마주하게 됐다. 쇄신 격랑이 일 때 반추하는 정치사의 세 컷이 있다. 2004년부터 2년5개월간 당의 얼굴이 8번이나 바뀐 ‘비대위 열린우리당’은 내분과 자기부정으로 치닫다 문을 닫았다. 2016년 총선에서 진 ‘박근혜 새누리당’은 친박 일색의 이정현 지도부를 세웠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쇄신은 당심에 갇혀도, 자기부정으로만 가도 실패했다. 2012년부터 4년 터울로 여야에서 세 번째 이어진 ‘김종인 비대위’의 성공비결은 목표점을 정하고 가는 뚝심과 메시지의 일관성이다.

4·7 선거 밑으로는 대선도 흘렀다. 야권엔 뒤처져 있다 단일화로 최종승자가 된 ‘오세훈의 길’이 새로 생겼다. 대선을 다시 엿보는 안철수, 지지율 5% 밑 유승민과 원희룡, 복당부터 급한 홍준표가 노리는 길이다. ‘장외 대장주’ 윤석열은 이회창처럼 호랑이굴에 들어가거나, 제3지대에서 단일화·통합을 모색하는 선택지를 받아들었다. 여권엔 생활진보로 독주하는 이재명과 친문 총리(이낙연·정세균)와 86 주자들이 다투는 ‘대항마’의 길이 있다. 대권 경쟁은 이재명·윤석열과 진보·보수에서 그를 딛고 서려는 4자의 축으로 각이 잡혔다. 이재명과 윤석열이 붙으면, 진보·보수 비주류끼리 맞서는 첫 대선이 된다. 중도 확장성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절대 승부처는 또 있다. 민생이다.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먹고살만 하십니까?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생계(경제)·불평등·스트레스를 함축한 세 질문은 대선 토론의 단골 메뉴다. 민생이 흔들리면 야당이 절반 먹고 들어가는 게 선거판이다. 여당의 대선은 코로나19·부동산 끝에서 포장길·자갈길이 갈린다는 뜻이다. 여기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 기후위기, 미·중 신냉전 문제가 얹어질 것이다. 아무리 봐도, 검찰개혁은 그다음이다. 공수처 안착과 수사권 조정도 시험대에 있고, 국회의 시간은 2024년까지다. 대통령도 갈라쳤듯 속도는 과유불급이다.

대선을 곧잘 항공모함에 빗댄다. 1도·10도·90도 트는 방향 따라 대한민국 도착지가 다른 길싸움인 까닭이다. 대개의 선거가 국정에 힘을 싣거나 심판하는 회고투표라면, 대선엔 5년마다 다분히 미래투표가 얹어진다. 작금의 대선지형은 50대가 균형선, 3040과 60대 이상이 여야 우세로 갈리고, 절반이 지지 후보가 없다는 20대가 무풍지대다. ‘앵그리 20대’는 민생 콘텐츠를 젊고 새롭게 하고, 스윙보터는 정치의 역동을 키울 것이다. 정치원로들이 대선 얘기하다 맺는 말이 있다. 살아온 대로 싸우고, 내 장점을 살려야 선거에서 이기더라는 것이다. 4월7일 리셋된 대선, 11개월의 장정이 다시 출발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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