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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새봄은 어떻게 오는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력 2021. 04.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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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이가 좋아하던 반찬을 말하며 웃던 엄마가 아이가 좋아하던 샴푸 냄새를 말하며 울기 시작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2014년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맡은 동안 나는 마음을 단단히 여미리라 다짐했다. 공감과 이해가 섣부를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실용적이었다. 같이 슬퍼할 겨를이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손과 머리를 보태자. 국회 농성 중 유가족 몇 분이 삭발이라도 해야겠다고 할 때 말린 것도 같은 이유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2015년 4월의 첫날에는 말릴 수 없었다. 정부의 보도자료와 함께 ‘희생자 1인당 평균 얼마’류의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었다. 내가 이미 모욕감과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청와대까지 행진해야겠다는 집념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광화문네거리를 넘어가는 집회와 행진은 불가능했다. 오래전부터 광화문광장 남단은 집회와 행진의 북방한계선이었다. 신고한들 경찰이 금지했다. 신고할 수 없으므로 행진하지 않거나 신고하지 않은 채 행진하거나, 이전부터 반복된 고민이었다. 나는 대체로 선을 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축이었는데 방법을 못 찾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벽을 넘기도 어렵지만 누군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결정을 어렵게 했다.

그 봄,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다. 특별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폐기하고 당장 세월호를 인양하라! 대통령은 배·보상 액수를 언론에 퍼뜨리는 것으로 응답했다. 유가족은 삭발을 했고, 안산에서 서울로 행진했다. 4월16일.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떠났고 유가족은 오후에 예정된 합동분향을 취소했다. “추모는 제단의 촛불이 아니라 거리의 촛불이 되어야 함을 보여주십시오.”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유가족과 함께하려고 7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문화제를 마치고 헌화를 위해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너 겹의 차벽이 이미 길을 막고 있었다. 막히면 돌고 막히면 다시 돌아, 유가족은 광화문 현판 앞에 닿았다. 뒤쫓아온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며 유가족을 에워쌌다. 유가족은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18일 다시 집회가 열렸다. 서울광장에서 나가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었지만 사람들은 광화문으로 꾸역꾸역 다시 모였다. 경찰이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지만 돌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흩어지고 다시 모이고를 반복하며 사람들은 차벽을 흔들었다. 견고한 벽에 균열이 생겼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도로로 나갔다.

그 봄에 선을 넘어 무엇을 이루었느냐 물으면 딱히 답할 말이 없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은 폐기되지 않았고, 세월호 인양도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졌다. 이듬해 세월호 특조위는 해산당했고 진상규명은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 박근혜 퇴진 촛불이 광장을 메우자 모두들 세월호를 떠올렸고 유가족에게 경의를 표했다. 오랜만에 유가족들이 웃었다. 나도 덩달아 뿌듯했다. 분명 민주주의는 전진했다. 그러나 어디까지 갔을까.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는 아직도 거리에 있고 투쟁은 역사가 되지 못했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이었던 김혜진, 박래군에게 지난달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 주최자로서 미신고 집회, 일반교통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에 대해 벌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 봄에 정신을 차려 이렇게 말해야 했다. 서울광장에서 광화문광장 가는 길은 행진 신고가 안 되니 헌화는 나중에 하세요. 모여서 추모하는 건 ‘불법 집회’라고 하니 아프고 슬픈 마음은 각자 집에서 달래시죠. 그래도 새봄은 왔을까?

보궐선거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았냐”고 말하던 이들에게 묻고 싶다. 누가 물대포를 맞았나요? 그렇게 지킨 민주주의가 유죄인가요? 새봄을 만드는 새로운 세대가 역사를 모른다고 탓할 때가 아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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