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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판타지를 위한 변명

이융희 문화연구자 입력 2021. 04.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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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방영 전부터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일었고 결국 2회만 방영한 채 폐지되었다. 제작사는 방송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 지적에 대해 역사 속 인물과 배경을 차용했지만 ‘판타지 퓨전 사극’이기 때문에 다양한 상상력에서 이야기를 출발했으며, 오로지 ‘판타지적 상상력’에 초점을 맞춘 탓에 문제가 일어난 듯하다며 사과했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결국 논란의 중심에는 ‘한국형 엑소시즘 판타지 액션 사극 드라마’라는 타이틀이 존재하는 셈이다. 제작진은 좋은 ‘판타지’ 장르를 만들기 위해서 상상력을 발휘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부작용이 생겼단 소리다. 그럼 정말로 판타지는 현실에서 도피한 채 상상력만 강조하면 되는 장르일까?

이러한 인식은 1970~1980년대에 판타지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던 시선과 맞닿아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일제강점기부터 산업화·민주화 등 격변의 시기를 거쳤던 만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 물체, 괴물이나 사람 등을 꿈꾸고 표현하는 판타지는 마치 현실에서 도피하는 순진하고 무책임한 장르처럼 여겨졌고, 자연스럽게 배척받았으니까.

그러나 영국의 문학 연구자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성>이라는 책을 통해 이러한 의견에 반대한다. 잭슨에게 판타지란 마냥 비현실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존재하지만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 볼 수 없던 문제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보이는 것으로 전환함으로써 오히려 현실에 대해 눈뜨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현실과 판타지는 서로 연동되어 있고, 판타지는 현실의 문제점들을 전복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조선구마사>의 패착은 여기에 있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재현하는 것만으로 좋은 판타지가 태어날 것이라 여긴 것이다. 장르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수사학적 방식이 정형화된 것이라는 캐럴린 밀러의 말처럼 대중상업 장르는 마냥 세상에 없던 것을 발굴하는 개별 작품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집단으로 소비하는 대중의 소비양식, 그리고 감정과 맞닿아 있다. 코로나 이후 강해진 반중 정서와 동북공정에 대한 위험성 등을 도외시한 채 만들어낸 판타지로는 SBS가 밝혔던 ‘웰메이드 판타지 퓨전 사극’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드라마라는 것이 인물의 내적·외적 갈등과 변화 및 성장을 담고 있는 만큼 초기 2화의 설정만을 두고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란 어폐가 있다.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건 초기 설정이 아니라 해당 설정을 갖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는가, 그리고 어떤 결말에 도달하는가 하는 지점이리라. 그렇기에 더더욱 일상을 버티고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힘을 주는 ‘판타지’라는 장르가 대중을 잘못 설계한 제작 과정의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안방 드라마 시장에서 다양한 장르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판타지 요소가 드라마에서 시도되는 이때야말로 판타지가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할 때가 아닐까.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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