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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73] 백 년을 자도 달콤하니 '단잠'

우정아 교수 입력 2021. 04. 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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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번존스, '장미의 그늘', 1885~1890년, 캔버스에 유채, 125x231cm, 영국 옥스퍼드셔 버스콧파크 소장.

나른한 봄이다. 이른 아침 자명종이 울릴 즈음 어렴풋이 잠에서 깨면 이미 자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더 자고 싶다. 백 년 동안 자고 나면 개운할까. 에드워드 번존스(Edward Burne-Jones·1833~1898)의 ‘장미의 그늘’은 백 년 동안 잠만 잤다는 그 유명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보여준다.

산업혁명의 발원지로 대량생산이 미덕이 된 19세기 말 영국에서 번존스는 절친 윌리엄 모리스와 함께 젊은 예술가들의 집단인 라파엘전파를 이끌며 중세의 장인 정신을 되살리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화려하고 정교한 스타일뿐 아니라 주제 또한 중세에서 영감을 얻어 신비롭고 낭만적인 옛 전설을 담아냈는데, 그중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고 잘 알려진 ‘들장미 전설’을 네 폭의 그림에 담은 이 연작은 특히 인기가 많았다. 1890년 런던의 한 화랑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수천 명의 관객이 줄을 서서 봤고, 곧 유명 컬렉터가 일괄 구입해 옥스퍼드셔의 버스콧파크 저택에 걸어둔 뒤 지금껏 그 자리에 있다.

번존스는 살아있는 모든 게 잠들어버린 궁전 안에 마침내 발을 들인 왕자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그렸다. 네 폭의 그림 속 수십 명의 인물 중 눈을 뜬 사람은 왕자 하나다. 그에 앞서 전설의 미녀를 찾아 궁전에 도달했던 수많은 기사들, 정사를 논하던 왕과 신하들, 베틀로 천을 짜던 시녀들, 그리고 침상에서 곤히 자는 아름다운 공주까지 잠에 빠져 고요하기 그지없다. 오랜 세월 동안 쉬지 않고 움직인 건 오직 울창한 넝쿨 숲을 이루도록 자라난 가시 돋친 들장미뿐. 그런데도 깨어나고픈 기색이 전혀 없는 공주의 얼굴을 보니 단잠이란 백 년을 자도 달콤해서 단잠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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