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공병원 확충, 정치권과 정부 결단 필요하다

입력 2021. 4. 1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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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코로나19로 점철된 2020년 한국은 성공적인 방역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소위 K방역의 성공은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을 주축으로 ‘코로나19 전담병원’을 맡은 41개 공공병원의 사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코로나 환자의 80%를 담당했다. 한국은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병원 비율이 5.7%에 불과하지만 그중에서도 1%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이 주역이 돼 코로나 대응을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성공적이라 해서 이런 무리한 대응에 문제가 없을 리 없다.

1차 대유행에서 병원이 수도권에만 집중된 문제와 공공병상의 부족 문제를 뼈저리게 겪어야 했다. 당연히 공공병상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를 위해 내놓은 뉴딜 정책에도 공공병원 확충 계획은 전혀 없었다. 의료시설과 인력 보강 없이 2차 유행을 맞았고 사태는 3차에 이어 4차 유행으로 진행될 조짐이다.

병상을 기준으로 해도 한국은 공공병상이 10%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71.6%이고 자유주의 성격이 강한 일본(27.2%) 미국(21.5%)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 건강보험은 공공재원을 통해 전 국민 의료보장을 실시하고 있는데, 막상 의료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공공병원과 병상은 세계 최저 수준인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국가 역할에 대한 한국의 특수한 개념 때문이다. 도로 항만 교량을 놓는 토목 사업은 정부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국민 삶을 보살피는 사회 인프라 구축은 정부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구의 정부들은 경제와 사회의 두 가지 역할을 균형 있게 수행한다. 우리는 국가 역할 문제에 대해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한다. 이를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병원 강화는 당장 급한 문제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공공병원 확충을 겹겹이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 몇 가지는 시급히 풀어줘야 한다. 첫째는 국가 재정을 약간이라도 전환하는 문제이다.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텅텅 빈 도로들이 즐비하다. 동시에 쓸 만한 병원이 없어 멀리 나가야 하는 지역도 허다하다. 지방의료원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 작은 병원이고 시설은 낙후돼 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인 고속도로 200㎞ 건설비가 약 7조3000억원인데 이 돈이면 500병상쯤의 현대식 공공병원 30개를 세울 수 있다. 지방의료원 수가 35개이니 고속도로 하나를 포기하면 공공병원을 현재의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말이다. 고속도로 200㎞와 공공병원 30개, 국민에게 어느 편이 중요할까? 국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쓰임새가 잘못된 것이다.

둘째는 새로 공공병원을 지을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이다. 예타는 토목공사를 생각하고 만든 것이라서 사회시설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는 터무니없는 것들이 많다. 병원은 ‘의료시설 이용시간, 교통비, 대기시간 단축’ 그리고 ‘응급사망 감소’ 등이 편익 기준의 전부이다. 급만성 질병 관리, 분만, 방역 등을 통해 목숨을 구한 것과 경제를 살린 값은 계산되지 않는다. 공공병원에는 예타를 면제하거나 성격에 맞게 평가 항목을 바꿔줘야 한다.

셋째는 경영지원 체계이다. 시·도에서 공공병원 설립을 꺼리는 큰 이유가 운영의 어려움 때문이다. 의사와 간호사 인력풀을 만들고 병원 관리와 정보화, 공동 구매 등을 지원하는 ‘공공병원 운영지원본부’ 형태의 새로운 조직이 있어야 공공병원 설립에 겁을 내지 않을 수 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공병원 확대를 원하는 국민이 80%를 넘는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의견도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갔다. 공공병원 확대는 이미 국민적 합의가 된 것이다. 이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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