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국민일보

[경제시평] 정치 과잉 시대 속 경제학의 위기

입력 2021. 04. 13. 04:04

기사 도구 모음

한 일간지에서 제공하는 '찐진보, 찐보수' 테스트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재미 삼아 한 번씩 자신의 정치 성향을 확인해볼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현 정부 정책을 지지하면 진보, 반대하면 보수 성향 점수를 받게 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정치적 논쟁이지, 과학이 아니고 또 절대로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


한 일간지에서 제공하는 ‘찐진보, 찐보수’ 테스트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재미 삼아 한 번씩 자신의 정치 성향을 확인해볼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현 정부 정책을 지지하면 진보, 반대하면 보수 성향 점수를 받게 된다. 정부의 적극 지지자들로서는 찐진보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나름대로 뿌듯함을 느낄 것이고, 비판자들은 찐보수 판정을 받고 흡족해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문항에서 본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견해를 선택했을지 궁금해진다. 전반적 사회 이슈들에 대해 개개인이 명확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의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수 항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사실은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라면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모습일지 의구심이 들게 된다.

경제 정책들로 좁혀볼 경우, 소득주도성장론에 기반한 정책은 분배를 중요시하는 소위 좌파 경제학으로 분류된다. 반대로 성장을 중시하는 비판론자들은 우파 경제학으로 불리는 정책 대안을 주창한다. 정치 과잉 시대에서 우리는 이 중 한쪽의 선택을 암묵적으로 강요받게 되곤 한다. 성장도 중요하고 분배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중도층이 많은 것, 심지어는 특정 의견이 없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차라리 건강한 사회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좌파 경제학도 우파 경제학도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이 비교적 더 합당한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것처럼 좌파 경제학을 고수하다 보면 언젠가 그 시대를 맞이할 것이고, 우파 경제학을 고수하다 보면 그 시대가 열릴 날도 올 것이다. 그러나 고장 난 시계처럼 어느 한쪽을 신념으로 고수하기보다는 시대 상황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하는 유연적 사고를 할 때 설사 몇 분 늦더라도 더 유용한 시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은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기에 애써 무시된다. 객관적 사실이 바뀌면 견해를 바꾼다는 케인스의 자세는 위대한 경제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지만 정치 과잉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궁핍한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는 좌파 정책을 응원하다가도 막상 성공해 부를 얻게 되면 우파 정책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반대로 호화 생활을 누릴 당시엔 우파 정책을 신봉하다가도 막상 가세가 기울고 형편이 어려워지면 좌파 정책에 마음이 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물며 정책 입안자로서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커져 성장에 해를 끼치게 되는 수준에 이를 때 좌파 정책을 고려하다가도, 성장이 이뤄지지 못해 빈곤이 늘어나면 반대로 우파 정책을 고려하는 것을 두고 비난해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치 과잉 시대에서 우리 사회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위정자들만 가득 차 있어 이런 비난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정치적 논쟁이지, 과학이 아니고 또 절대로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통계 및 수학적 방법론으로 무장한 소위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차원에서 언급된 내용이지만, 기본 가정이 달라지거나 통계 데이터가 달라짐에 따라 특정 정책 효과에 대한 평가나 견해가 변할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과 궤를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위정자들만으로 가득 찬 시대에 이제 정치적 논쟁의 장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정치적 주장만 가득하게 됐다.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은 그렇게 점차 현실에서 멀어지고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느 한쪽이 진리인 양 믿고 선택하게 돼가고 있다.

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