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일보

[중간착취의 지옥도] '중간착취 금지' 위한 법들, 국회 여정을 시작하다

남보라 입력 2021. 04. 13. 04:30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③여야 의원 4명 법안 발의 준비
근로기준법·파견법·하도급법 개정안 발의 예정 
임금 직접 지급, 파견 수수료 상한 법제화 될까
편집자주
부당한 현실을 보도했는데, 그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만큼 기자들을 허탈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지난 1월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획기사에서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 착취 실태를 보도했고, 2월부터는 중간착취 금지 입법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을 담은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취재팀이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15명에게 '중간착취 금지법 입법 질의서'를 전달한 후 3월에 받은 답변서들. 15명의 위원 중 11명이 입장을 밝혔다. 남보라 기자

"저희가 법안 낼게요. (노동자 임금에서 떼어가는) 파견 수수료 상한을 정하고, 근로계약서에 파견 대가 명시하는 것 너무 좋은 생각이에요." (이수진 의원실, 파견법 개정 관련)

"국회 법제실에 용역 노동자들의 직접 노무비를 보호하는 개정안을 검토해 달라고 의뢰해 놓았어요. 4월 안에 발의할 거예요." (강은미 의원실, 하도급법 개정 관련)

"당장 실천 가능한 법안부터 발의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공공 발주 사업 임금 직접 지급과 파견·직업소개 수수료 규제 문제라도 법이 개정되면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박대수 의원실, 근로기준법·파견법·직업안정법 개정 관련)

"을(乙)인 파견노동자가 수수료 얼마인지 알려달라고 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수수료를 근로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어요." (윤미향 의원실, 파견법 개정 관련)

기대를 가져도 되는 걸까요.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무자비한 중간착취를 보도하고 이를 막아 줄 법안들을 국회에 제안한 데 대해, 바로 법안 발의까지 나서겠다는 의원들이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윤미향 의원이 파견근로자보호에 관한 법률(파견법),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이 근로기준법·파견법·직업안정법 개정안을 최대한 빨리 발의하겠다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4명 모두 각 당 비례대표입니다.

취재팀이 질의서를 보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15명의 위원 중 4명(27%)이 곧바로 응답해 법을 고치는 작업에 돌입한 것입니다. 한 달 수십~수백만 원을 중간에서 떼이는, 수백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의원들을 찾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낙관하기는 너무 이릅니다. 첫 배는 띄울 수 있게 됐지만, 그 배가 국회 상임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목적지에 무사히 다다르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 정부나 다수 의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법안들이 부지기수니까요.


첫 번째 법_ “파견 수수료는 정해진 만큼만” 파견법 개정안

국회 환노위원 15명 중 취재팀의 질의에 답변을 준 의원은 11명이었습니다. 국내외의 관련 사례를 조사하고, 현실적인 여건 등 치열한 고민을 담아 진지하게 답변한 의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가장 많은 의원들이 긍정적으로 답변한 법이 바로 파견법입니다. 취재팀이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제안한 파견법 개정 방안은 3가지입니다.

① 파견 수수료 상한 설정하기 : 파견업체가 원청에서 받는 돈(파견 대가) 중 정해진 비율 이하로만 수수료(이윤)를 받도록 해 과도한 중간착취를 막을 수 있음.

파견 대가(근로자 인건비, 수수료 등)를 근로계약서에 명시하기 : 근로계약서는 반드시 작성해야 하므로 노동자가 원청이 파견업체에 준 돈 중 자신이 받아야 할 임금과 파견업체가 떼는 수수료를 정확히 알 수 있음.

파견업체 위장 폐업 시 고용승계하기 : 파견업체들은 퇴직금 등을 주지 않기 위해 폐업한 후 상호 등만 바꿔 새로 업체를 여는데, 고용이 승계되면 노동자는 퇴직금을 떼이지 않을 수 있음.

우선 박대수 의원은 위 세 가지 모두를 포함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실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구체적인 어려움은 잘 몰랐는데,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알게 돼 개정안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박 의원실은 또 직업소개소가 노동자에게 수수료를 10%나 부과하는 중간착취를 막기 위해 법적 수수료(1%) 이상 착취할 경우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직업안정법 개정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노총 출신 비례대표인 박 의원은 비정규직 등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다. 오대근 기자

이수진 의원은 파견법 중 ① 파견 수수료 상한 설정과 ② 파견 대가 근로계약서 명시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의원실은 "일본에서는 파견노동이 확산되고 그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자 법 개정을 통해 파견수수료의 정보공개를 의무화하기도 했다"며 "수수료 정보공개를 비롯해 수수료 상한을 주 내용으로 하는 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수진(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으로부터 '중간착취 금지 입법 질의서'를 받고 "적극 공감하며 입법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도 한국노총 출신이다. 오대근 기자

윤미향 의원도 ② 파견 대가 근로계약서 명시 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윤 의원실은 "한국일보 기사를 보고 파견법에 대해 많이 논의했고, 앞으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파견법에 더 고칠 부분이 있을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윤 의원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며 간접고용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오대근 기자

또한 환노위 소속이 아닌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지난달 11일 ② 파견 대가 근로계약서 명시를 골자로 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강 의원실은 "한국일보의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사를 보고 해당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입법 작업에 나서 이번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취재팀에 알려왔습니다. 저희가 ‘입법 로비’를 하지 않은 의원이었음에도 먼저 법안을 발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견법 개정에는 대부분 의원이 찬성 의견을 냈습니다. ① 파견 수수료 상한 설정에는 11명 중 10명의 의원이 동의했고, 송옥주 의원은 "일률적으로 적정 이윤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② 파견 대가 근로계약서 명시는 11명 모두 법 개정에 동의했습니다. 전원이 동의한 법안은 이 법이 유일합니다. ③ 위장 폐업 시 고용승계 법제화에는 10명이 동의했고,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고용승계를 법제화해도 벗어날 방법이 많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두 번째 법_“용역업체가 임금에 손대지 못하게” 하도급법 개정안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용역업체가 원청에서 받은 직접 노무비(100%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마저 착취한다는 점입니다. 이에 취재팀은 직접노무비는 전용계좌 등을 통해 노동자에게 바로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습니다.

이 법안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준비 중입니다. 강 의원은 마침 하도급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하도급법 개정을 추진 중이었다고 합니다. 중대재해 등 원청의 귀책 사유로 작업이 중지돼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휴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원청이 하청에게 도급비 중 임금을 구분해 지급하고, 임금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보증보험 등을 들도록 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임금 별도 지급 법안이 통과되면 중간착취를 막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달 중 발의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임금을 전용계좌로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이달 중 발의할 예정이다. 강 의원은 지난 2월 질의서를 받았을 때부터 중간착취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으며 "법 개정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2월 강 의원이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을 만나 대화하는 모습. 오대근 기자

박대수 의원은 공공부문에서 발주한 사업의 임금은 직접 지급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으며, 다음 달 발의할 예정입니다.

중간 착취, 임금체불을 막기 위해 원청이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은 건설업(공공부문)과 조선업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고(故) 김용균씨 사망으로 심각한 중간착취 실태가 드러난 발전소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적정임금 지급 시범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인 거죠.

국회의원 11명 중 8명이 “법안이 필요하며 발의 참여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1명은 “검토하겠다” 1명은 “필요성은 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김웅 의원은 “근로계약 기본 요건과 배치되는 면이 있어 법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세 번째 법_“원청도 사용자다” 노조법 개정안

간접고용은 원청에게 적은 비용으로 책임과 의무없이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을 주죠. 반대로 노동자들은 중간착취뿐 아니라 계약해지 명목의 상시 해고 위협에 시달립니다.

원청의 무한 책임 회피를 막아줄 법안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의 개념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현행법상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맺은 자’로만 제한돼 있어 용역·파견업체만 노동자의 사용자입니다.

이렇게 사용자의 범위가 확장되면 원청은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원청에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원청은 ‘법적 의무가 없다’, 용역업체는 ‘우리는 권한이 없다’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노동자를 ‘낙동강 오리알’로 만드는 일을 조금은 줄일 수 있는거죠.

이 법안은 강은미 의원이 지난해 발의했습니다. 의원 11명 중 7명이 “이 법안이 필요하며 적극 찬성한다”고 밝혔고, 4명은 “논의가 필요하다” “신중 검토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사용자 개념 확장은 17대 국회(2004~2008년)부터 매 국회마다 발의됐습니다. 2019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고용노동부에 사용자 개념 확대를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아 수십 년 전의 협소한 사용자 개념에 머물러 있습니다. 노동시장 현실은 대체 언제쯤 법에 반영될까요.

중간착취 금지법에 대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의 답변. 그래픽=김대훈 기자

네 번째 법_“간접고용 노동자 보호법을 만들자” 별도법 제정

취재팀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법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질의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합니다. ① 근로기준법, 노조법 등 기존법만 고쳐도 보호가 가능하다 ② 별도 법을 만들어 보호해야 한다. 11명 중 5명은 “기존 법으로 보호 가능한지 검토한 후 법안 발의에 참여하겠다”는 조건부 참여 의견을 냈고, 4명은 “새 법 제정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2명은 “별도 법 발의 의사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논쟁도 역사가 깁니다. 2012년 19대 국회 개원 첫날,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민생법안 1호’라며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법 이름만 보면 그럴 듯해 보였지만 오히려 불법파견을 합법화해 사업주에게 면죄부를 주고, 취약한 근로조건을 그대로 고착화시킨다는 이유로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 법안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습니다.

그 후 간접고용 노동자 관련 법 제정안이 발의된 적은 없습니다. 기존 법을 개정하는 쪽의 발의가 많았죠. 하지만 개정안조차 통과된 적이 없습니다.

새 법을 만들든, 있는 법을 고치든 방법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겁니다. 중요한 건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라는 목적이니까요. 노조법, 파견법, 하도급법 개정으로 충분히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 여부가 새 법 제정의 필요성과 연동될 것입니다.


불안한 희망, '검토하겠다'는 답변에 숨은 뜻은

국회 환노위 11명 의원들의 답변서. 검토한다는 약속이 꼭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남보라 기자

의원실에서 받은 답변서에 유독 많았던 단어는 ‘공감’과 ‘검토’. “문제의식에 공감하지만 검토가 필요하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검토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검토도 제법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누구도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 법안은 발의 못 하겠다”고 답하지는 않았지만 ‘검토’라는 말이 기약 없는 희망고문처럼 느껴지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어법'을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겁니다.

또한 15명의 의원 중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이자·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취재팀이 여러 번 요청했으나 답변서를 주지 않았습니다. 환노위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실은 "너무 바쁘다, 깜빡했다"는 말을 반복하다 연락이 없었고, 같은 당 김성원 의원실은 "간사인 임이자 의원에게 일임하겠다"고 했죠. 민주당 노웅래 의원실도 "바빠서 깜빡했다"를 반복하더니 끝내 연락을 주지 않았습니다.

피감기관 공사 수주 논란을 겪은 무소속 박덕흠 의원실 측은 “언론 질의에 대한 공식 답변이 어렵다. 질의서 내용에 공감하며 환노위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4명의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나섰고 "발의에 동참하겠다"는 의원들도 많지만 아직은 불안한 희망입니다. '검토'나 '침묵' 뒤에 숨은 의미를 기자들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취재팀은 관련 법안이 발의된 후 국회 논의 과정 또한 보도하겠습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