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고 목매달고..강남 야산의 섬찟한 '마네킹 시위'

최연수 2021. 4.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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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야산에서 '마네킹 시위'가 벌어져 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최연수 기자

12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야산은 스산했다. 얼핏 보면 사람처럼 느껴지는 마네팅 약 30개가 곳곳에 있었다. 여성 한복을 입고 야산 나뭇가지에 매달린 모습이었다. 피를 흘리는 마네킹의 얼굴, 목이 매달린 상태로 서 있는 마네킹, 가발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로봇고등학교에서는 교실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인근 주민들은 “한두 개였던 마네킹이 점점 늘더니 무서워서 밤 산책도 하지 못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야산의 재개발을 놓고 서울시에 불만을 품은 야산 주인의 항의 시위가 그 출발이었다.


500명이 돈 모아 산 야산…무용지물 돼 ‘마네킹 시위’
문제의 야산은 ‘도시자연공원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개발이 불가능하다. 개발 제한을 풀어달라는 입장인 야산 주인은 마네킹 서른여 개를 설치해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다. 주인 정한영(48)씨는 8년 전 투자자 500명을 모아 10억원을 주고 야산을 사들였다고 했다. 도시자연공원지역 지정 기간이 끝나면 개발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이 산에 대한 도시자연공원 지정을 연장했다. 도시자연공원 구역은 도시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시민에게 여가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지정한 구역이다. 도시 안에서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경우 구역이 설정되며 건축 및 용도변경 등 도시계획사업을 시행할 수 없다. 기대했던 야산 개발이 막히자 정씨와 서울시의 갈등이 시작됐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야산에서 땅 주인이 '마네킹 시위'를 펼치면서 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최연수 기자

정씨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에서 도시자연공원지역은 다시 사들이겠다 해서 사뒀던 땅인데 어디다 팔지도 못하고 코로나19에 세금만 연 3000만원씩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500명이 ‘강남에 한 번 땅 가져보자’며 300만~500만원씩 모아서 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서울시가 나 몰라라 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2만평의 야산은 1년 전 기준 시세가 약 185억원 정도라고 한다. 정 씨는 “185억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서울시에서 예산에 맞춰 나눠 보상하는 등 법률에 따른 보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혐오시설 방치로 과태료 5만원"

지난 12일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한 야산에서 '마네킹 시위'가 벌어져 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최연수 기자

‘마네킹 시위’에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졌다. 고등학생 박모(17)군은 “야자 시간에 가끔 누가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보면 저 마네킹들이다. 소름 끼치고 무섭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씨는 서울시의 보상을 받기 위해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정씨는 “마네킹은 사람을 쫓아내는 허수아비 역할일 뿐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 이번 주에 마네킹 10개를 추가로 더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산에 반려동물 수목장을 마련해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할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는 정 씨의 야산은 보상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관할구청인 강남구는 “해당 야산이 그린벨트지역이고 보상대상은 맞지만, 그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마네킹 시위에 대해서는 혐오시설 방치를 이유로 과태료 5만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사유지이기 때문에 강제로 철거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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