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서울신문

[백종우의 마음의 의학] 소방관, 자살이라는 이름의 순직

입력 2021. 04. 13. 05:08

기사 도구 모음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국민의 생명을 최전선에서 지키는 소방관들은 처참한 사고 현장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시신을 수습한다.

소방관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이 극심한 상태에서 자살로 사망했다면 이것이 순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2015년에서 2019년까지 재난과 구조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은 21명에 이른다. 그런데 같은 기간 자살로 사망한 소방관은 56명으로 2.7배에 달한다. 그래서 순직보다 자살이 많다는 표현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소방관 자살은 10만명당 31.2명 수준으로 일반인이나 경찰보다 높다. 그러나 소방관 사망에서 순직과 자살은 완전히 다른 것인가?

국민의 생명을 최전선에서 지키는 소방관들은 처참한 사고 현장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시신을 수습한다. 아이의 시신을 목격했던 경험은 평생 잊기 힘들다고 한다. 구조를 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함께했던 동료가 죽는 걸 지켜봐야 하는 경험은 끔찍하기만 하다. 나만 혼자 살아 나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다른 것은 참아도 주취자를 비롯한 악성 민원인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상황은 참기 힘들다.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수면장애가 일반인보다 약 20배나 많다. 불안장애는 15배, 심혈관질환은 10배 정도 높다. 잦은 야간 근무와 업무 스트레스는 불면증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전체 소방관 중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6.3%, 우울증은 10.7%에 이른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그들은 왜 치료를 받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했을까? 절반 이상은 아프면서도 그게 정신건강의 문제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41%는 불이익을 걱정하거나 동료들에게 나약한 사람으로 비칠까 염려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5년간 발생한 소방관 자살을 대상으로 심리부검을 실시해 보니 96%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있었고 정신건강 문제는 81%였다. 소방관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이 극심한 상태에서 자살로 사망했다면 이것이 순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실제 최근 법원에서 이들의 순직을 인정하는 판례가 이어지고 있다.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소방관의 건강은 누가 지켜 줘야 하나? 다행히 소방관은 2020년부터 국가직으로 인정됐다. 소방관을 위한 보고 듣고 말하기 생명지킴이 교육이 2020년 개발돼 보급되고 있으며 찾아가는 상담실도 운영 중이다. 전문적 치유를 위한 국립소방병원도 2024년 건립될 예정이다. 정신건강센터 등 체계적인 건강관리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한다.

묵묵히 참고 견디는 데만 익숙한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면 책임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이 위급할 때 119를 찾듯 소방관들 역시 몸과 마음이 아플 때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1년에 한 번은 제대로 된 정신건강 검진을 실시하고 최고 수준으로 치료를 해 줘야 한다. 적어도 수많은 생명을 살린 사람이 그 과정에서 얻은 정신건강 문제로 순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Copyrightsⓒ 서울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