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검사입니다"..취준생 죽음 부른 '전화 속 그 놈' 잡았다

박주영 기자 입력 2021. 4. 14. 13:28 수정 2021. 4. 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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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원대 보이스피싱 조직 98명 일망타진
검사 가칭 김민수검사/부산검찰청

“…여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팀에 팀장을 맡고 있는 김민수 검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김민수 검사’를 사칭,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행을 저질러 20대 취업준비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전화 속 그 놈’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대장 박준경)는 “‘김민수 검사'를 사칭해 전화금융사기 행각을 벌여온 40대 A씨 등 5명을 붙잡았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은 이중 A씨 등 3명을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구속된 A씨는 통화 연결이 되면 “일단 수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담당검사가 누군지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며 자신을 ‘서울중앙지검 김민수 검사’라고 소개, 피해자가 ‘목소리 낚시’를 믿도록 만들었다.

이어 “저희 수사1팀이…○○○을 주범으로 하는 금융범죄사기단을 현행범으로 체포…현장에서 총 500여점이 넘는 통장과 카드, 대포폰 등 증거 물품이 발견됐다…그 안에 △△△씨 명의의 통장이 2개…범인들에게 사기 당해 그 통장으로 돈을 입금한 사람들이 당신을 고소해 수사 중이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끌어들였다.

A씨는 지난해 1월 20일 이런 식으로 전북 순창의 20대 취업준비생에게 접근, “대규모 금융사기 누명을 벗어나려면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야 한다”고 속인 뒤 인출한 420만원을 가로챈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 ‘취준생’은 며칠 뒤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사연은 A씨 보이스피싱에 희생된 취준생 가족들이 지난해 2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내 아들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를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청원을 올리면서 세간에 알려졌고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부산경찰청이 최근 적발한 중국 거점 대형 보이스피싱이 범행에 이용한 위조 검찰 공문./부산경찰청

A씨가 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저지른 범죄 행각은 피해가 100억원을 넘을 정도로 대형이었다. 이 조직은 지난 2015년 8월부터 5년간 칭다오·쑤저우·하얼빈 등 중국 내 8개 지역을 돌아 다니며 콜센터 등 사무실을 차려놓고 검찰과 금융기관 등을 사칭해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속이거나 저금리 대환 대출을 제시하는 수법으로 300여명으로부터 돈을 받아 가로챘다.

경찰 조사 결과, 전북 지역에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총책 B(30대)씨가 지난 2015년 8월 중국 칭다오로 건너가 국내 조직 폭력배들을 현지로 불러들여 보이스피싱 범행을 위한 기업형 범죄단체 조직을 결성하면서 이들의 범행이 시작됐다.

이 조직은 콜센터, 팀장, TM(전화상담), 차명 통장 모집책, 해외송금책 등 역할을 분담했고, 각자 지위에 따라 범죄 수익을 분배했다. 처음엔 10여명으로 출발했으나 많을 때는 50여명이 활동할 정도로 커졌다고 경찰은 말했다.

국내 경찰과 중국 공안 등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칭다오, 쑤저우 등으로 거점을 옮겨 가며 범행을 했다. 경찰은 “이들이 중국 현지에서 14층 짜리 건물 중 4개층을 통째로 사무실로 빌려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총책 B씨 등은 현지 특급 호텔 등에서 살면서 재규어·BMW 등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등 호화생활을 했다고 경찰은 말했다. 이들은 중국 현지에 가짜 검사 사무실을 꾸며 놓고 영상통화를 하거나 중국에서 국내 피해자와 통화를 하면서 인터넷 위성 지도 등을 통해 피해자 위치를 파악하고 ‘인근 000커피숍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아라’는 등의 지시를 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했다.

이들은 또 ‘금액 다시 완벽하게 따기(어떻게 요리할 지는 이 때 파악)’, ‘한번 더 보안(전화 통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강조’ 등 피해자에게 전화를 할 때 말하는 내용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예시한 ‘전화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조직원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경찰은 “검사 사칭 A씨는 유창한 말솜씨로 이 조직의 ‘특급 전화상담가’ 대우를 받으면서 피해자 300여명 중 60~70명이 그의 보이스피싱에 당했다”고 말했다. A씨는 취준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1개월 뒤 귀국해 경기도 수원에서 숨어 지내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A씨 검거 사실을 피해 취준생 부친에게 알렸다”며 “그 부친은 ‘김민수 검사를 못 잡을 거라 생각했다. 평생 한이 맺힐 뻔 했다. 자식의 한이 풀렸을 것 같다. 재판 과정에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탄원서를 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이 보이스피싱 조직 93명을 적발, 26명을 구속했다. 이번에 A씨 등 5명을 붙잡으면서 경찰에 적발된 이 조직의 구성원은 총 98명(29명 구속)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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