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명중 3명만 "인적쇄신"..與서 '비문'은 문법에 안맞는 말

오현석 입력 2021. 4. 15. 05:01 수정 2021. 4. 1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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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당 일각에서 외부 인사 영입 필요성도 제기된 비대위원장은 친문 도종환 의원이 맡았다. 오종택 기자


“우리 당에 친문(親文·친문재인) 아닌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는 ‘원팀’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지난 4년간 ‘정론’처럼 반복되던 얘기다. 이는 4·7 재·보궐선거 참패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민심·당심의 괴리를 확인했다”는 반성문이 쏟아졌지만, 여전히 친문과 범(凡)친문이 당 위기 수습에 앞장서고 있다. 스스로 비문(非文)을 자처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다.


위기 수습할 사람도 ‘친문 일색’

재·보선 참패 다음 날 구성한 민주당 비대위부터 친문이 키를 잡았다. 당 일각에선 “외부 인사를 영입해 수습하는 게 좋다”(수도권 재선 의원)는 의견도 있었으나,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이 사퇴하며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운 건 친문 의원 모임 ‘민주주의 4.0 연구소’의 이사장인 도종환 의원이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윤호중(오른쪽) 의원와 박완주 의원. 윤 의원은 친문 핵심으로, 박 의원은 범친문으로 분류된다. 오종택 기자

16일 치러지는 원내대표 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당 검찰개혁특위 위원장을 지낸 자타공인 친문이고, 박완주 의원도 86세대 운동권 출신 범친문이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송영길·우원식·홍영표 의원 역시 범친문 내지 친문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모두 ‘비문’의 존재를 부정한다. “친문과 비문을 주장하는 분은 당내에 거의 없다”(홍영표), “민주당 의원 모두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다 같은 친문”(박완주)이라는 식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인적 쇄신’조차 금기어가 됐다. 조국 사태를 언급한 반성문(9일)으로 파문을 일으킨 민주당 2030 초선 의원 5인(전용기·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부터 “친문과 비문을 나누어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11일, 2차 성명)고 했다. 친문 권리당원들로부터 ‘욕설 문자’ 등 융단 폭격을 맞은 직후였다.

민주당에서 선거 참패 후 1주일간 다른 목소리를 낸 건 단 3명뿐이었다. 조응천 의원이 지난 8일 “우리 당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데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가급적 이번 당내 선거에 나서지 않으시기를 바란다”며 처음 인적 쇄신론을 꺼냈고, 이상민 의원은 “방해나 걸림돌이 될 만한 분들은 뒤로 비켜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용진 의원 역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가면 국민의 마음이 돌아올 수 없다”며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174석 거여(巨與)에서 이들 3명을 끝으로 이런 주장은 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반면, 친문 권리당원들은 외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언급했단 이유로 초선 5인을 공격했다. 당내서 “친문 일색인 당에서 무슨 쇄신안이 나올 수 있겠냐”(수도권 보좌관)는 자평이 나오는 이유다.


文 대표 시절 당 혁신·탈당…비주류 소멸

민주당에 비주류가 처음부터 없던 건 아니다. 과거 민주당엔 정세균계를 주축으로 한 친노(親盧) 그룹 외에, 손학규계, 정동영계, 김근태계 같은 계파가 공존했다. 계파는 경쟁했지만, 당이 위기에 처하면 비주류가 주류를 대체하며 보완 역할을 했다.

2010년 민주당 10.3 전당대회는 손학규 당시 대표 당선인(사진 가운데) 외에도 박주선(왼쪽부터), 천정배, 정동영, 정세균, 이인영, 조배숙 등 각 계파 수장이 총출동해 경쟁했다. 손 대표는 당선 직후 당직 인사에서 정동영계와 정세균계를 중용하는 등 탕평 인사를 펼쳤다. 중앙포토

2010년 하반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7·28 재·보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모두 사퇴하고, 전당대회를 열어 손학규 대표를 선출했다. 대체재의 등장으로 위기는 기회가 됐다. 이듬해 손 대표가 직접 경기 분당을에 출마한 2011년 4·27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압승했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박원순 야권 단일 후보를 서울시장에 당선시켰다. 12월엔 시민통합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도 출범시켰다. 그 당시 보좌관을 지냈던 민주당의 한 의원은 “때론 계파 수장의 욕심에 과도하게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서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미덕도 남아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당의 질서가 크게 바뀐 건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를 지낸 2015년부터다. 당시 김상곤 혁신위가 당원 권한을 강화하는 혁신안을 제출했고, 문 대통령은 당 대표직을 걸고 이를 관철했다. 이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필두로 김한길계·박지원계가 차례로 당을 떠나면서 비주류 숫자가 크게 줄었다. 마침 최민희 전 의원이 발의한 정당법 개정에 따라 온라인 당원 제도가 도입되면서, 친문의 힘은 더 커졌다.

문 대통령 지지층 수십 만명이 대거 당원에 가입해 열린 2016년 전당대회에선 ‘친문 필승, 비문 필패’라는 말까지 나왔다. 권리당원 투표 반영율이 40~50%로 늘어나면서다. 친문의 낙점을 받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54%의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했다. 여성 최고위원 선거에선 대의원 과반이 지지한 유은혜 사회부총리가 권리당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양향자 의원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당내에선 “친문이 아니면 죽는다는 걸 일깨워 준 전당대회”(당직자)로 기억된다.


대선 이후 ‘친문 일색’…“내부 경쟁 사라져”

2017년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을 거치며 더불어민주당은 '친문 일색'이 됐다. 사진은 2017년 4월 3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마지막 선출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연호하는 모습. 중앙포토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친문 일색’이 완성됐다. 당시 대선 후보 경선에선 의원 128명 가운데 100명 이상이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엔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에 86그룹 임종석 전 실장이 임명되고, 김근태계 유은혜 전 의원이 사회부총리로 입각하면서 86그룹과 김근태계도 범친문에 흡수됐다. ‘원팀 정신’을 강조하는 일종의 탕평 인사였으나, 의원들이 대거 국무위원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당은 획일화됐다.

문제는 21대 총선을 거치며 174석으로 커진 뒤에 나타났다. 지난해 7월 임대차 3법 등을 강행처리 하는 과정에서 당내 토론은 전무했고, 당내 강경파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움직임에도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4·7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충격적인 참패를 당했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내부 경쟁이 사라진 게 향후 혁신의 걸림돌이 될 거라고 전망한다. 같은 거대 여당이라도 내부에 여러 계파가 존재해 상호 보완 역할을 하는 일본 자민당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은 주류를 대체할 주체가 없다는 지적이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여당엔 늘 친노·비노, 친이(친이명박)·비이가 공존하며 내부 경쟁을 벌였는데, 지금은 여당 내부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문파 권리당원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선 당심·민심 불일치를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오현석·김준영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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