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7년, 세월호 가족들은 어디에 있을까?

2021. 4. 15. 09: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의 역할,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

[남서현 세월호 유가족]
2021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다가왔다. 수없이 계절이 변했고, 국민의 촛불로 정권은 교체되었다. 사회는 여전히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곳곳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움직임들은 여전히 꿈틀거린다. 2017년 인양된 세월호는 목포신항에 거치되어 있고, 단원고 기억교실을 품은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은 7주기를 맞아 개방되었다.

그렇다면 세월호 가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피해자의 위치

사건 초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의 목소리가 높아져 갈 때, '피해자다움'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난 순간 가족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참사 피해자들은 참사의 진실을 알 권리가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설계해 놓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벗어난 순간 사회는 그 권리마저 부당한 요구로 변질 시켜 버렸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게 된 상황과 남은 이들의 그리움은 가슴 아픈 스토리라는 미명하에 점점 자극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을 파고들었고 미디어는 피해자의 고통을 소비했다. 가족들은 자의와 타의에 의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사건 이후 주체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간담회를 통해 현재 가족들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했다. 그것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 프레임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담담해 보이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우리를 잊지 않을 것 같았다. 상황에 따라 사회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를 소개해야 했다.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의 역할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은 767명으로 그 중 80.3%인 616명은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고 있다. 안산에서는 참사 이후 유가족의 회복 탄력성 지원과 지역사회 공동체 회복이라는 미션을 가진 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역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상실의 고통에 심리적 부조를 아끼지 않았으나, 이렇게 등장한 단체들이 보인 양상은 대체로 비슷했다.

전문가들은 가족들의 고통을 측정했고 본인들이 분석한 제도 안에서 피해자들을 치료하려 했다. 다양한 사회적 실험들을 통해 적절한 치료방식을 찾아갔다. 피해자들에게는 미래의 재난 참사의 본보기로써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나 점점 구체화되고 복잡한 양상으로 드러나는 피해자의 고통과 갈등을 해석하지 못했으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구조적 문제의 해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진상규명과 관련된 사안은 가족들에게 모든 결정권을 맡겼다. 가족들이 느끼는 사회적·정치적 의견에 이유 불문 동의하거나 중립을 지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는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해야 했고, 투쟁해야 했다. 전면에 피해자들이 나서는 것이 당연한 그림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에 우리 사회 전반의 어른들이 저지른 편법과 부정부패가 강력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망각되었다.

국가와 사회의 역할

모든 안전사고의 전면에는 개인의 안전불감증에 앞서 이윤의 극대화에 눈이 먼 기업과 국민의 안전에 취약한 역사를 건설해온 국가가 나서야 한다. 한국 사회는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물론 세월호 피해자와 유가족들 역시 그 권리를 가진 국민이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우리에게 사회적 참사라는 재난은 부끄러운 기억, 잘못된 과거로 치부된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현실은 어떠한가? 믿었던 국가는 폭력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진실을 덮었고, 진실의 저울은 권력의 무게에 의해 국가의 편으로 내려앉았다. 그날의 기억을 지렛대 삼아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진실의 저울은 늘 권력의 무게에 가라앉을 것이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4월이 오면 그날의 진도체육관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든 것이 생생해진다. 그날 피부에 느껴지던 온도, 고함치는 사람들의 소리, 불안한 마음, 한참을 울어 따가워진 눈과 살짝 느껴지는 허기까지.

8번의 봄을 마주하는 동안 가족들은 남겨진 과제를 끊임없이 점검했고 끊임없이 달려왔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참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하여 혐의 없음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유가족은 호흡곤란을 호소했으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7주기 선상 추모식에 해경은 참사 당시 총괄 지휘부가 탑승하여 희생자 구조를 방관한 3009함을 배정했으며, 유가족은 해당 선박의 승선을 거부했다. 7년째 여전한 직업의식과 윤리가 배제된 업무처리에 분노가 일렁인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된 피해자 유가족의 상당수가 정신적, 신체적 이상 증상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여기에 있다.
사건과 가장 가까이. 하지만 진실과는 가장 멀리

▲ 유가족이 6주기 선상추모제 이후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김민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남서현 세월호 유가족]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