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성차별' 회사 사장에게 〈82년생 김지영〉을 보내다

송지혜 기자 2021. 4. 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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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은 이 문제를 '면접상 불쾌한 질문'으로 프레이밍하려 했다. 당시 일어난 일은 '불쾌한 경험'이 아닌 성차별이다. 제대로 사과하려면 이것을 정확히 언어화해야 한다."
동아제약 면접에서 성차별을 당한 피해자가 <82년생 김지영>(중문판)을 들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지난 3월5일 유튜브 〈네고왕 2〉에는 생리대를 할인해 판매하는 내용의 18분짜리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네고왕〉은 진행자가 기업의 대표를 찾아가 소비자 요구를 직접 전달하고 해당 상품의 할인을 약속받는 프로그램이다. 매회 조회수가 100만 회에 육박하는 등 인기가 높다. 특히 생리대는 〈네고왕 2〉의 구독자가 가장 많은 ‘네고(negotiation·협상)’ 요청을 한 제품이다. 이날 영상은 동아제약이 자사 제품 생리대를 60% 할인 판매하기로 약속한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해당 영상에 ‘동아제약 면접에서 성차별을 겪었다’는 댓글이 달리면서 불거졌다. ㄱ씨는 “지난해 11월, 면접 때 인사팀장이 유일한 여성 응시자였던 나에게 여자는 군대 안 가니까 남자보다 월급 적게 받는 것 동의하냐고 묻고, 군대 갈 생각 있느냐고 묻더니 여성용품 네고? 웃기다”라고 썼다. 해당 댓글이 불러온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다. 여성용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정작 여성 지원자를 차별하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등의 댓글이 2만 건 넘게 달렸다.

논란이 커지자 최호진 동아제약 사장은 3월6일 해당 영상의 댓글에 사과문을 남겼다. “면접관 중 한 명이 지원자에게 매뉴얼에서 벗어나 지원자를 불쾌하게 만든 질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지원자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동아제약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해명했다. “군 미필자 대비 군필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인사제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면접자의 의견을 듣고자 군 관련 질문을 했다.” 해당 질문을 한 인사팀장은 보직해임 및 정직 3개월을 처분받았다.

그사이 SNS에는 동아제약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채용 과정에서 벌어진 또 다른 성차별 사례가 알려졌다. 국내 대표 게임사 면접에서 사상 검증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기도 했다. 한 게임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은 트위터에 “3월9일, 3N(넥슨·엔씨·넷마블) 중 한 곳의 면접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이슈가 된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게임에서 지우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라고 썼다. 피해자는 ‘동아제약 채용 면접 피해자’ 덕분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ㄱ씨는 동아제약 측의 사과문에 반박하며 정식 사과문을 요구했다. 동아제약이 유튜브 영상 ‘댓글’로 사과문을 달고 ‘성차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등 미흡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네 차례에 걸쳐 쓴 글은 화제를 모았다. 결국 3월22일 동아제약은 회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올려 “면접 과정에서 성차별적 질문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지원자와 청년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라고 밝혔다. “‘특정 성별에만 유리하거나 불리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거나 질문하지 않는다’는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채용 안내서’ 기준을 위반한 질문이었다”라고도 인정했다.

같은 날 ㄱ씨는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면서 최호진 사장 앞으로 책 〈82년생 김지영〉을 보냈다. 그는 ‘화해만 있을 뿐 과오에 대한 면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기업 ‘갑’을 상대로 20대 여성 지원자 ‘을’이 부당함에 맞서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피해자다움’의 틀을 깨면서 ㄱ씨는 20~30대 여성의 지지를 받았다. ㄱ씨는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고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검토하고 있다. 3월29일 ㄱ씨를 만나 이번 사건에 대해 물었다.

유튜브 채널 <네고왕 2>에 출연한 최호진 동아제약 사장. ⓒ유튜브 네고왕 2 갈무리

동아제약이 ‘댓글 사과’를 한 이후부터 문제점을 지적하며 온라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동아제약은 해당 질문을 한 사람이 ‘인사팀장’임에도 불구하고 ‘면접관 중 한 명의 일탈’로 꼬리 자르기를 하려 했다. 여성 구직자가 겪는 차별을 ‘불쾌한 경험’ 정도로 치부한다는 점에 화가 났다. 사건을 축소하려는 모습이었다. 성차별은 단순히 ‘불쾌’라는 단어로 갈음될 수 없다. 사과문에는 성차별을 인정하고 채용 및 인사 부문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등이 들어가야 한다. 만약 동아제약이 〈네고왕 2〉 제품으로 박카스나 가그린을 내놓았다면 기분은 나빴겠지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여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여성친화적 기업인 척하면서 여성 지원자에게 성차별 질문을 한 것이다. 정확한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댓글 사과문’이 나온 지 이틀 뒤 출근길 지하철에서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건을 폭로하게 된 경위, 동아제약의 변명이 합당하지 않은 이유 등을 남겼다.

동아제약의 사과문에 반드시 ‘성차별’을 명시하라고 요구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동아제약은 이번 문제를 ‘면접상 불쾌한 질문’으로 ‘프레이밍’하려고 했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하려면 ‘불쾌한 경험’이 아닌 성차별 질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정확히 언어화하는 게 중요하다. 면접 당시 일어난 일은 성차별이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성차별에 해당하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재발방지 대책 역시 신뢰할 수 없다.

면접 당시 상황을 복기하면?

2020년 11월16일 신입사원 채용 1차 실무면접 때였다. 실무진 1명과 인사팀 1명이 들어왔고 면접 응시자는 나와 남성 두 명이었다. 총 3개의 질문을 공통적으로 받았다. 인사팀장은 두 남성에게 어느 부대에서 근무했는지, 군 생활 중 무엇이 가장 힘들었으며 무엇을 배웠는지 물었다. 두 사람의 답변이 끝나자 질문 순서가 돌아왔다. “여자라서 군대를 가지 않았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황스러웠다.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는 임금의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군 가산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면접관은 재차 “군대에 갈 생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병역의무가 부과되면 갈 것”이라고 답했다. 그 자리에서 상당한 모멸감을 느꼈다. 군대에 가지 않은 여성이나 장애인을 배제한 분명한 차별행위다.

당시 면접관은 남성 지원자에게 군 생활에 대해 묻고 ㄱ씨에게 군 가산점제에 대한 견해와 군대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순간 성차별이 발생했다. 2011년 인권위의 〈기업 채용 과정의 차별 관행에 대한 실태조사〉를 보면 ‘병역 여부에 대한 질문은 남성 지원자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여성 지원자에 대한 성차별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2019년 여성가족부가 낸 성평등 채용 안내서에도 군대와 관련한 기준이 제시돼 있다. ‘면접 과정에서 특정 성별에게만 유리하거나 불리한 주제(군대 경험)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안내서에는 이를 어기면 남녀고용평등법 규정에 위반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동아제약에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요구하고, 끝까지 갈 테면 가보자고 대응하기도 했다.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떳떳했으니까.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나를 고소한다면, 얼마든지 하라고 했다. 나는 한때 입사를 희망한 회사와 싸워서 이기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동아제약은 여성 소비자 불매운동을 가속화하고 망신을 당하는 거다. 논란이 길어질수록 동아제약은 ‘채용 성차별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거다. 유튜브 댓글에 단 사과문이나 언론에 낸 해명 등을 보면서 이길 자신이 생겼다. ‘나만큼 성차별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있지 않구나’ ‘어떤 해명을 하더라도 다 반박할 수 있겠다’ 싶었다. 기업 대 개인이라는 힘의 차이가 있지만, ‘여성용품을 마케팅한 기업이 채용 성차별을 한다’는 이미지가 씌워진 상태인데 앞에서 사과하고 뒤에서 고소한다? 동아제약은 계속 싸우는 카드를 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건을 폭로하고 동아제약에 요구사항을 전하면서도 이전과 같이 출근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근황을 글로 썼다.

피해자의 일상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옳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상에 타격이 생기면 앞장서기 힘들지 않나. 언론에 비치는 피해자들은 늘 이런저런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다. 공론화하더라도 피해자는 괜찮다고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다른 여성들도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당신에게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거다. 그러니 우리 함께 말하자’라는. 나는 스물여섯 살 사회초년생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몸개그’ 하는 평범한 20대이고, 이런 ‘자기다움’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싸울 수 있다고 전하고 싶었다.

네 차례 쓴 글 중에는 ‘차라리 제가 당해서 다행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무슨 뜻인가?

나는 기득권에 속한다. 금수저는 아니어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가졌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국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 경험이 있다. 또 이성애자, 비장애인이다. 제약업계를 벗어났고 취업에 성공했다. 만약 취직이 절박한 여성 구직자나, 가난 등의 이유로 충분히 말하고 쓸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 같은 일을 당했다면, 더 큰 절망을 느꼈을 수 있다. 저마다 사회적 위치가 다른 만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 발자국 내딛겠다.

동아제약 인사 담당자가 성차별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왼쪽)와 동아제약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식 사과문.

ㄱ씨는 3월13일 동아제약이 신입사원 면접 과정 중 ‘고용상 성차별’을 저질렀다는 내용으로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었다. 국가를 통해 명백한 성차별에 해당함을 인정받고 성차별 면접을 진행한 기업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3월16일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는 채용 성차별 논란에 대한 합동 대책을 발표하고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성별균형 인사관리 역량강화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채용성차별철폐 공동행동은 고용노동부에 동아제약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고 있다.

최호진 사장에게 〈82년생 김지영〉을 보냈다.

최 사장의 ‘댓글 사과문’이 올라오기 전까지 남초 커뮤니티에는 면접 성차별 관련한 내용이 ‘주작(조작)’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나. 책 〈82년생 김지영〉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뇌피셜 소설이다’ ‘피해의식 소설이다’ 식의 악평이 있었다. 그런 책이 해외 수십 곳에 수출되고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될까? 〈82년생 김지영〉을 중문판·영문판으로 읽었다. 어떤 국적의 여성을 대입해도 이것은 ‘하이퍼리얼리즘 에세이’였다. 책에는 주인공 김지영이 채용 과정에서 차별받는 과정이 나온다. ‘당신이 떨어뜨린 내 이야기’를 보라는 뜻에서 보냈다.

지지해준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면접에서 일어난 성차별 사건에 여성들의 공분이 높은 건, 그간 일상적으로 차별을 겪었기 때문이다. 차별에는 비용이 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번 사건이 단발성 이슈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시작이고 끝까지 갈 거다. 언제나 순항할 순 없겠지만 한발 더 나아간 결과를 얻을 것이다. 면접 과정에서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의 군대 질문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는 점을 인정받고,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힘을 보태겠다.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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