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프리즘] 미나리, 소수자 감정, 인종차별

신준봉 2021. 4. 17.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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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 사건·문화 다양성 공존 미국
불편한 감정 쌓인 분노, 우린 다를까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역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한쪽에서는 소수 인종을 상대로 증오 범죄 성격의 총격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이 폭발하는 모양새다.

이 폭발에 우리가 한몫하고 있다. 일주일 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들 모두 선전을 기원하는 영화 ‘미나리’ 말이다. 간단한 검색만으로 ‘아시안 아메리칸’에 신경 쓰는 미국 영화 산업계의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 스티븐 연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계인 정이삭 감독이 감독상, 역시 한국계인 제작자 크리스티나 오가 작품상을 노린다.

한국계의 활약은 활자의 영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프린스턴대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이창래가 주목받은 지는 오래됐다. 역시 한국계인 이민진은 장편 『파친코』가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주가가 크게 뛴 느낌이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시인 캐시 박 홍(45)이 가세했다. 지난해 출간한 자전적인 산문집 『Minor Feelings: An Asian American Reckoning(‘소수자 감정’쯤으로 번역하면 어떨까)』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A) 회고록 분야(Memoir/Autobiography) 수상작으로 지난달 선정되면서다. 1974년에 제정된 상은 600여 명의 문학평론가, 각종 매체의 출판 담당 에디터들이 참가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필립 로스(2018년 작고),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여성 시인 루이스 글릭이 이 상을 거쳐 갔다.

그런데, 느껴지시나. ‘미나리’와 ‘소수자 감정’은 한국의 피와 숨결이 흐른다는 공통점을 빼면 사뭇 다른 작품들이다. 장르가 다른 만큼이나 다르다. 제목부터 그렇다. ‘미나리’가 중립적인 단어여서 사전 정보 없이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면 ‘소수자 감정’은 이미 어떤 종류의 이야기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로 ‘미나리’는 척박하고 낯선 땅에 던져진 한국인 이민자들의 신산스러운 삶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따듯한 영화다. 적어도 기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낯 가리던 손주들은 결국 할머니와 친해지고, 자신만의 작물 재배방법을 고집하던 집안의 가장 제이콥은 화재 사건으로 사실상 모든 걸 잃고 난 후 아칸소 현지의 다분히 수상쩍은 영농 관습을 따르기로 한다. 제이콥의 이런 회심(回心)을 두고, 결국 이민자들이 미국사회에 녹아드는 동화(同化) 과정을 그린 서사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타자를 길들이는 서부영화의 한국계 버전이라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김봉석)

그에 반해 ‘소수자 감정’의 캐시 박 홍은 전사 같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지만, 속으로는 뿌리 깊게 차별적인 미국사회의 치부를 까발리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걸까. “아시아계 미국인은 백인들의 사주를 받아 흑인들을 짓누르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흑인에게서 의심받거나 백인에게 무시당하는 연옥 같은 곳에 처해진 존재.” 이런 직격탄을 날린다. 제목부터가 편의상 ‘소수자 감정’으로 즉흥 번역했지만 실은 백인과 흑인들의 지배적인 대표 감정들에 짓눌려 자리를 찾아주기 어렵고 내용도 규정하기 어려운 ‘소수적 감정’에 가깝다. 미묘하고 어정쩡한, 그러나 해소되지는 않는 불편한 감정들. 이것들이 쌓여서 생기는 분노. 이런 모호한 것들 말이다.

한낱 영화와 자서전을 어떻게 봐야 한다는 원칙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소수자 감정’에 집중하면 ‘미나리’는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미나리’나 ‘소수자 감정’은 미국만의 문제일까. 인구 절벽에 대처, 대거 이민자들을 받아들인다면, 한국은?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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