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게임을 몰랐지, '렙업'의 기쁨을 몰랐냐 [커버스토리]

이유진 기자 2021. 4.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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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엄마는 게임 중

방바닥에 앉아 게임하는 아들을 앞치마 입은 엄마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다음날 게임기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엄마와 아들의 쟁탈전이 시작된다. 엄마가 숨긴 게임기를 찾기 위해 소파 밑, 장롱 안을 뒤져보지만, 어디에도 없다. 게임기를 찾지 못한 아들은 “없어”라고 외치며 괴로워한다.

어느 가정에서나 있음 직한 이 모습은 게임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 플레이 장면이다. 일본의 한 게임사가 개발했다. 게임을 체험하는 한 유튜버의 영상엔 “우리 엄마랑 나 같다”는 댓글이 줄지어 올라와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게임 때문에 입씨름하는 엄마와 자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자녀보다 ‘더 열심히’ 게임에 몰두하는 엄마도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바쁘고 치열하게 돌아가던 일상에 제동을 걸면서 ‘아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게임에 눈을 돌렸다. 이들이 찾는 게임은 ‘효도게임’으로 불리는 ‘애니팡’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김혜선씨(51)는 지난 1월 출시돼 글로벌 다운로드 수 1000만회를 기록한 대세 게임 ‘쿠키런:킹덤’에 빠졌고, 장영숙씨(55)는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플레이 시간이 1000시간을 넘겼다. 출시 당시에 비해 한물간 게임으로 여겨지는 ‘포켓몬 고’는 윤미영씨(53·가명)의 건강한 취미다. 장씨의 딸 황민지씨(30)는 “게임을 진작 알려드리지 못한 게 후회된다”며 “그동안 엄마가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너무 좁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부끄럽고 민망하다”며 인터뷰를 주저하던 ‘엄마들’은 게임 이야기를 시작하자 목소리에 묻어나는 신명을 감추지 못했다. 게임시장이 주목하지 않는 50대 여성들이 바라본 게임 속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 먹고 ‘게임은 무슨’ 했는데…새롭게 뭔가 배우고 만들게 되더라”

■애니팡 말고 쿠킹덤

여전히 게임은 ‘쑥스러운 취미’
하지만 시간과 돈 쓰는 걸
마냥 나쁘게 보지 않게 됐다
“가치를 어디 두느냐의 문제죠”

“엄마, 과금러였어?” 김혜선씨는 얼마 전 대학생 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과금러’는 게임에 돈을 쓰는 사람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다. ‘현질(온라인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입하는 것)’이 시작된 건 대세 게임 ‘쿠키런:킹덤’(쿠킹덤)을 하면서부터다. 다른 이용자와 교류하는 소셜 역할수행게임(RPG)은 김씨에게 낯선 장르였다. 김씨를 게임으로 초대한 건 딸이었다. “막상 (앱을) 깔고 보니 캐릭터가 귀여웠어요. 애한테 설명을 좀 해달라고 하니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게임 방법과 쿠키들 성격을 알려줬어요. 해보자 싶었죠.”

게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폐허가 된 쿠키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 다섯 쿠키가 모험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쿠키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모험에 따른 전투는 ‘자동 전투’ 기능을 활용했다. 김씨는 “실행만 시키면 알아서 싸운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왕국도 꾸미고, 열심히 모은 ‘별사탕’으로 쿠키를 성장시켰다. 딸의 권유로 3만원을 “투자”해 에스프레소맛 쿠키도 뽑았다. 애착 쿠키도 생겼다. “맨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양파맛 쿠키를 보면 딸 어렸을 때가 생각나요. 허브맛 쿠키는 말을 착하게 하고 목소리도 좋아서 제일 좋아요.”

게임 생활이 마냥 순탄한 건 아니었다. 지난달 초 업데이트 이후 ‘쓴맛’을 봤다. 새로 생긴 ‘길드 토벌전’은 이용자들이 연합해 팀을 이뤄 적을 토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하루 3번 용과 싸울 수 있고, 성과에 따라 보상이 지급됐다. 문제는 길드의 ‘성과주의’였다. 능력치보다는 좋아하는 캐릭터로 구성된 김씨의 쿠키들은 팀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낮은 성과로 세 차례나 길드에서 쫓겨났다. “서운한데 어쩌겠어요. 젊은 친구들이 보기엔 많이 답답했을 거예요. 50대 아줌마라고 하면 봐줬을 수도 있지만, 실력이 기준이라면 퇴출돼도 할 말은 없죠.(웃음)”

김씨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이전까지는 “게임과 담을 쌓고 살았다”고 했다. PC방은 가본 적도 없고, 자녀들 손에 이끌려 오락실 한두 번 간 게 전부였다. 모바일 게임을 시작하면서 게임에 흥미를 붙였다. 퍼즐게임 ‘애니팡’을 비롯해 1년 주기로 김씨의 스마트폰에 게임 앱이 새로 깔렸다. 이동 시간이나 잠들기 전 주로 했다. 난도가 높아지면 그만두고 다른 게임을 찾는 식이었다. 하루 20~30분씩 게임을 했지만,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뮤지컬 관람”이라고 답했다. 김씨는 “취미가 게임이라는 건 창피한 일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여전히 게임은 “쑥스러운” 취미다. 하지만 김씨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커졌다”면서 “게임에 시간과 돈을 쓰는 걸 마냥 나쁘게 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뮤지컬에 돈 쓸 땐 30만원도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게임은 1만원, 3만원만 있어도 재미와 기쁨을 줘요. 과소비만 하지 않는다면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무테크? 몰라도 괜찮아

코로나로 남는 시간 앞에 장사 없었다
딸의 도움 받아 시작한 게임
“나이들수록 쪼그라드는 느낌인데
게임에선 ‘내집 마련’ 꿈도 이뤄”

김씨가 쿠키 왕국 재건을 위해 힘쓰고 있다면, 장영숙씨는 동물 친구들과 자신만의 섬마을을 꾸며가고 있다.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모동숲) 이야기다. 입문 8개월차인 장씨도 딸을 통해 게임에 발을 들였다. 직장인 딸은 지난해 4월 한창 닌텐도 품귀 현상이 일었을 때 모동숲을 시작했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출이 줄자 딸이 집에선 종일 게임기를 붙들고 있었다. “딸이 게임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곤충을 잡을 때마다 달려와선 ‘엄마, 이거 봐봐’ 자랑했어요. 게임을 즐기는 건 좋은데, 현실에 치여서 저렇게 게임세상에 빠져있나 걱정을 하기도 했지요.”

딸이 게임에 싫증을 느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자 게임기를 방치하는 날이 늘었다. 그 무렵 장씨는 ‘코로나 블루’가 극에 달했다. 운영하던 카페는 매장 내 취식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영업시간을 단축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번갈아 가며 재택근무를 하는 가족들과 다투는 날이 늘었다. 딸은 극약처방으로 게임을 권했다. “이거 하면 화가 가라앉을 거라면서 게임기를 쥐여줬어요. 처음엔 안 한다고 했죠. 남세스럽잖아요. 나이 먹고 게임은 무슨….”

‘남는 시간’ 앞에 장사 없었다. 딸의 도움을 받아 게임기 조작법을 익혔다. “세상 좋아진 걸 느꼈다”고 말했다. 바다에 던져놓은 낚시찌를 물고기 그림자가 건드릴 때마다 손끝에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엔 감전된 줄 알고 게임기를 던졌어요.” 장씨가 웃으며 말했다. 바지락을 캐서 미끼를 만들고, 미끼를 던져 물고기가 나타나면 낚싯대로 낚았다. 이 별것 아닌 과정에 밤새는 줄 몰랐다. 물고기와 곤충을 잡아 판 돈으로 대출금을 갚아 집도 키웠다. 장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을 게임에서 이뤘다”며 웃었다. “나이가 들수록 쪼그라드는 기분이 있잖아요. 이룬 것도 없는 것 같고 일도 잘 안 풀리니까. 근데 게임에서라도 자꾸 뭘 배우고,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장씨는 “게임 속에서 존중받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10마리 동물 주민은 장씨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생일날엔 파티를 열고 선물을 줬다.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우편함에서 동물 주민이 보낸 편지를 열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주민들은 틈만 나면 달려와 질문을 던진다. ‘말투를 고쳐야 할까?’ ‘그 물건 나한테 팔지 않을래?’ 어떤 답을 해도 동물 친구들은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누구도 싫은 소리를 안 해요. ‘잘했다’ ‘멋지다’ 이렇게 칭찬만 받기도 어렵잖아요. ‘너희가 사람보다 낫다’고 혼잣말 할 때도 있어요.(웃음)”

게임 플레이 시간은 1000시간을 조금 넘겼다. 장씨는 “하루 3~4시간씩 하던 게임 시간을 1시간 미만으로 줄였다”고 했다. 일요일 오전 무를 일정 가격에 산 뒤 시세에 따라 내다 파는 ‘무테크’(무+재테크)는 여전히 할 줄 모른다. 그래도 “질리지 않고 재밌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퇴근을 기다리거나, 저녁 드라마를 볼 때 짬을 낸다. “며칠만 관리 안 해도 섬에 잡초가 엄청나요. 꾸준히 관리해야 해요. 주민들도 ‘왜 요즘 안 보였냐’고 말하는데 너무 짠하잖아요. 나만 기다리는구나. 오래는 못해도 매일 들어가서 둘러보고 나오는 거예요.”

“성취감·존중 받는 기분·배우는 기쁨…고립이 아닌 ‘나’의 확장이었다”

■코로나가 알려준 ‘게임의 맛’

다른 ‘캐릭터’로 변신한 나
또 하나의 자아로 사는 매력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
마음을 여니 찾아온 가치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게임에 빠진 50대는 이들만이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50대 디지털 게임 이용률은 2018년 50.3%에서 2020년 56.8%로 증가했다. 여성 이용자 증가 폭(7.7%)이 남성(5.3%)보다 컸다. 특히 모바일 게임 이용률은 2년 사이 48.4%에서 57.1%로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모바일 게임 이용 시간 증감률을 묻는 질문에는 50대 여성 이용자의 51.2%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중장년층은 게임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업계의 통념과 달리 코로나19는 50대의 지갑을 열게 했다. 50대 게임 이용자 중 코로나19 이후 모바일 게임 아이템 구입 비용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6.3%였다.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10대(45.8%), 40대(42.5%), 30대(39.1%), 20대(35.5%), 60대(32.2%)가 뒤를 이었다.

포켓몬 고 6년차 유저인 윤미영씨는 “게임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200명에 이르는 포켓몬 고 친구들의 국적은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등 다양하다. 윤씨가 부탁하면 아들이 포켓몬 고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친구를 모아줬다. “엄청 고맙죠. 맨날 그래요, 아들 덕에 전 세계에 친구 생겼다고.”

윤씨는 포켓몬 고 열풍이 한창이던 2017년 게임을 시작했다. 온 가족이 포켓몬 고 삼매경에 빠져 주말이면 차를 타고 ‘포세권’(포켓스톱과 체육관이 많은 장소)을 돌았다. 4년 뒤 게임엔 윤씨 혼자 남았다. 낚시가 취미인 남편은 “할 만큼 했다”며 가장 먼저 손을 뗐다. 뒤이어 아들이 “단순해서 질린다”며 떠났다. 윤씨는 “딱히 취미라고 할 게 없고 재밌으니까 내가 그만둘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사이 43레벨(최고 50레벨)이 됐다. 포켓몬을 잡기 위해 걸은 거리는 총 5120㎞로 집계됐다. 지금까지 잡은 포켓몬 수만 9만3000마리가 넘는다.

포켓몬 고의 한계로 꼽히던 게임의 단순함은 윤씨가 게임을 오래 할 수 있던 이유였다. 한 달에 한 번 업데이트를 했지만 게임 방법엔 큰 변화가 없었다. 어쩌다 낮은 확률로 나오는 ‘색이 다른’ 포켓몬을 잡으면 “운수 좋은 날”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체육관까지 가지 않아도 티켓(리모트 레이드패스)만 있으면 먼 거리에서 ‘배틀’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초대장만 있으면 거실 소파에 앉아 해외에 있는 체육관에 등장한 포켓몬을 잡을 수 있었다. 윤씨는 “체감상 코로나19 이후에 이용자가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포켓몬 고 개발사 나이언틱의 최고 실적은 2020년 상반기(4억4500만달러)에 나왔다.

성취감·존중받는 기분·배우는 기쁨…. 경향신문과 만난 50대 여성 게이머들이 공통으로 찾아낸 게임의 가치다. 게임을 통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의 모습도 다양했다. 장씨는 동물의 숲에서 열 살 남자아이, 윤씨는 포켓몬 세상에서 30대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은 “원하면 언제든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어디를 가나 ‘부캐(부캐릭터)’가 대세잖아요. 임영웅씨를 좋아하는 것도 저고, 뮤지컬을 좋아하는 것도 저고, 게임 속 캐릭터도 저예요.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볼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죠.”(윤미영씨)

‘10년 전에는 게임을 어떻게 인식했냐’는 질문에는 두려움 혹은 공포감이 먼저 꼽혔다. 장씨는 ‘기계에 대한 공포심’을 언급했다. 1990년대 초반 건설회사 사무직으로 일하며 PC통신을 해보긴 했지만, 육아 문제로 퇴사한 이후엔 컴퓨터를 제대로 써본 기억이 없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공인인증서를 활용한 온라인 거래는 줄곧 자녀들 도움을 받아왔고, 공공기관을 찾을 일이 있으면 대면이 기본이었다. “잘못 만져 고장낼까봐 무서웠다”고 했다. “장사할 때도 제가 기계를 만지면 더 작동이 안 되고 고장이 잘 나는 것만 같았어요.”

게임기 앞에서 망설인 이유도 비슷했다. “처음 해보는 거니까 서툴잖아요. 그런 제 모습이 창피했어요.” 장씨는 “이제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한다”고 했다.

“이젠 별거 아닌 거 알아요. 잘못 눌렀을 때 ‘뒤로 가기’를 찾아 누르면 그만이에요. 정 안 되면 강제종료하면 되고요. 이게 뭐가 무섭다고 그동안 벌벌 떨었나 웃음이 나요.”

도영임 카이스트 교수가 말하는 ‘게임할 권리’

■건강하게 게임할 권리

도영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초빙교수(왼쪽)와 이세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연구원은 최근 디지털 상업 게임을 즐기는 50~60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삶의 질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카이스트 제공
디지털 게임 즐기는 40~60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삶의 질 높아
‘게임 막는 세대’ 편견 넘어 콘텐츠를 직접 즐기는 ‘인식의 전환’을

“게임 산업에서 바라보는 50대 여성이요? 가장 대척점에 있는 집단이죠. 컴퓨터를 가로막고 스마트폰을 빼앗는, 게임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이미지를 떠올려요.” 지난 13일 경향신문과 줌 인터뷰로 만난 도영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초빙교수가 말했다. 역시 ‘50대 여성’ 집단에 속하는 도 교수는 “이러한 인식은 실제와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의 40~50대 여성은 10년 전과 또 달라요. 청소년기를 아날로그 경험으로 보내긴 했지만,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고 스마트폰도 사용해보면서 디지털 경험치를 가진 세대란 말이죠. 여전히 타인과의 교감을 원하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는데, 사회·문화적 채널이 많지 않아요. 게임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50대 여성의 게임 활동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안타깝죠.”

심리학자이자 게임 연구자인 도 교수 역시 ‘게이머’라는 부캐를 가지고 있다. 2000년대 초 박사과정 논문을 쓰기 위해 PC게임 ‘마비노기’를 시작했다. “원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게임 연구를 하려고 보니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당시엔 게임을 사회·문화적으로 해석하거나 플레이어들의 경험을 다루는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었어요.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해서 ‘게임 좀 알려달라’고 한 뒤 1년간 아무것도 안 하고 게임만 했어요. 연구가 끝날 때까지 하다보니 10년이 넘었어요.(웃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더라고요. 그리고 느꼈죠. 아, 게임이 사람의 생각과 감정·행동 변화를 가져오는 데 큰 영향이 있구나.”

도 교수 연구팀은 최근 디지털 상업 게임을 즐기는 50~60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삶의 질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게임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룹은 게임을 혼자 하는 그룹이나 하지 않는 그룹보다 긍정적 정서·웰빙지수·사회적 지지 만족도가 높았다. 또 게임을 혼자 하는 그룹은 하지 않는 그룹과 비교했을 때 사회적 지지 만족도가 높았다. 디지털 게임이 사람을 고립시킨다는 일반적인 고정관념과는 반대의 결과였다.

도 교수는 “게임을 자주, 많이 한다고 무조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게 논문의 결론은 아니다”라며 “게임 행위가 가치 있다고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긍정적 인식이 클수록 게임을 통해 얻는 사회·정서적 효능감이 높아져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면 오히려 게임을 하면 할수록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껴요.” 연구에 참여한 이세연 카이스트 연구원은 “게임을 함께한다는 개념도 폭넓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존 연구는 1인용 게임을 하면 싱글 플레이어, 2인용 이상 게임을 하면 멀티 플레이어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1인용 게임을 하더라도 누가 옆에서 도와주거나 말을 걸면 ‘타인과 함께한다’고 인식했다”고 말했다.

“50대 이상 참가자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게임 때문에 자녀와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디지털 문화에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섞인 경우가 많았어요. 게임 플레이 워크숍이 끝난 뒤 ‘진작 (게임을) 해봤더라면 덜 싸웠을 텐데’ 말하는 분도 계시고요. 모바일 게임을 하다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놓친 경험을 하고선 ‘아들이 왜 그렇게 빠져서 했는지 알겠다’는 분도 있었어요.”

코로나19가 게임 경험을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면, 업계의 변화는 이를 장기화할 필수요인이다. 도 교수는 “상업용 게임 대부분이 10·20대 위주로 설계돼 있다”며 “반응속도를 갑자기 높이거나 과제를 복잡하게 만들면 중장년 게이머들은 좌절감을 느낀다.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한 번 떨어져나가면 흥미를 되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에선 10년 전부터 지역사회, 게임 커뮤니티, 게임회사를 중심으로 게임 접근성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활발하지만 한국은 게임시장이 세계 4위 규모임에도 제대로 된 게임 연구센터도 없는 실정”이라며 “게임 접근성에 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저도 30대에 게임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50대가 됐잖아요. 마음은 여전하지만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느려졌어요. ‘모르면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누군가 친절하게 답해줬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많아요. 중장년·노년 세대도 가치있는 콘텐츠를 누리며 삶을 즐길 권리가 있잖아요? 이들을 새로운 소비층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게임 산업의 다음 과제라고 봐요.”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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