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골 연대 측정 이제야..문화재 연구 '독립국' 됐다

손영옥 2021. 4.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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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분석정보센터, 대전에 15일 개관

1991년 오스트리아 접경 지역에서 알프스산맥을 등반하던 산악인 2명은 빙하가 녹아내린 계곡에서 미라가 된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등산 사고 희생자로 보인 이 시신은 놀랍게도 5300년 전 청동기인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연대 특정이 가능한 건 고고학 장비의 꽃인 가속질량분석기 덕분이다.

문화재분석정보센터 내 고(古)DNA실에서 방제복장을 한 연구원들이 충남 아산 명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인골을 조사하고 있다. 문화재분석정보센터 제공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10위 회원국 중 유일하게 문화재 전문기관에 이 장비가 없어 인골 나무 천 등 각종 분석 시료를 외국에 보내야 했던 한국이 마침내 문화재 연구 ‘독립국’의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고고학 분석을 위한 각종 장비를 갖추고 국내외 유적지에서 수집한 다양한 유물 시료를 보관·관리하고 체계적으로 분석·연구하는 문화재분석정보센터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내에 15일 개관했기 때문이다. 총사업비 190억원을 들여 연면적 6900㎡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신축된 센터는 위풍당당해 보였다.

문화재연대측정실험실, 질량분석실, 각종 유·무기물 시료 보관실을 갖춘 이 센터의 핵심 장비는 가속질량분석기다. 1층의 연대측정실에는 오는 8월 23억 5000만원을 주고 스위스에서 들여올 이 초고가 장비의 자리가 표시돼 있다. 신지영 연구관은 그 빈자리를 가리키며 “가속질량분석기는 뼈 목재 등 유기물을 대상으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하는데 고고학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장비”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죽거나 나무가 베이면 방사성탄소 양이 줄어든다. 이런 특성을 활용해 언제 사망했는지, 가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등을 측정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문화재분석정보센터 연구원이 15일 방사선탄소연대측정실에서 목재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기 전에 거치는 오염물 제거 등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영옥 전문기자

이 장비에 더해 2022년에는 토기 기와 금속 등 무기물 연대를 측정하는 3억원짜리 광발광연대측정기까지 갖춰지면 명실상부한 문화재분석정보센터가 된다. 유물의 연대 측정은 보물 지정 등에 필수적인 정보다. 지금까지는 국내에 이런 장비가 없어 뼈 목재 작물 종이 도자기 등에서 추출한 시료를 미국 등 해외에 보내야 했다. 가속질량분석기만 해도 연간 2000건의 연대 측정이 가능해 연 6억 500만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고고학 연구를 위해서는 DNA 분석과 X선 분석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유기물을 다루는 4층의 고(古)DNA실로 올라가자 유리창 안으로 두개골과 뼈 등 인골이 보였다. 이곳은 에어샤워와 방제복장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 마침 충남 아산 명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남녀 인골이 놓여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DNA분석을 하면 합장묘의 무덤 주인이 부부인지 형제인지 등 친연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광분석실에선 인골을 화장한 온도까지 측정할 수 있다.

토기, 도기, 금속 등 각종 무기물이 분류돼 있다.

5층은 금속 토기 석재 등 무기물을 다룬다. 이곳의 X선 형광분석기(X-RF)도 놀랍다. 책상 위에는 익산 쌍릉 중 대왕릉에서 채취한 석재를 가루로 만들어 동전 크기로 유리질화한 시료가 보였다. 이 시료를 형광분석기에 넣어 X선을 조사했더니 구불구불 그래프가 모니터에 바로 그려지며 20분 안에 채석지가 익산 함열 지역임을 밝혀냈다. 치아와 뼈의 스트론튬(Sr) 성분 분석을 하면 무덤 주인의 마지막 주소지는 어디인지, 안정동위원소 분석을 하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무엇이었는지도 파악이 가능하다.

문화재분석정보센터 외관.

센터가 본격 가동되면 시료의 자료실화 및 빅데이터 구축도 가능해져 한국의 고고학 연구가 선진국 수준으로 격상될 전망이다. 해외로 보낸 시료는 크기가 작아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서 연대 분석이 이뤄지면 시대별, 구역별, 유적별 시료 보관실도 갖출 수 있다. 센터는 2025년까지 1만건의 연대특정, 1만건의 시료 보관, 2만건의 분석 정보 빅데이타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신 연구관은 “가속질량분석기는 들어오지만 연대측정 전문가는 없다. 토기 석재 등 재질별로 분석 전문가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모든 걸 다하고 있다”며 “전문 인력 확보가 급하다”고 말했다. 대전=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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