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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죽음을 막아라"..DGIST 이색 동아리 '잡다'

우성덕 입력 2021. 04. 17. 08:03 수정 2021. 04. 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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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스물]
유리에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 붙이고
캠퍼스에 인공 둥지 설치
생태 토론회, 세미나 열고
SNS 이벤트로 치킨, 커피 쿠폰 주기도
2019년 디지스트 생태 동아리 `잡다` 학생들이 학교 정문 앞 `과학기술교`에서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제공 = 동아리 잡다]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디지스트) 정문 앞에는 낙동강 지류인 현풍천을 건너는 '과학기술교'라는 다리가 있다. 폭 25m, 길이 50m 정도의 일반 교량이다. 하지만 이 다리의 난간에 설치 된 유리는 평범하지 않다. 유리마다 직사각형으로 잘려진 작은 스티커가 촘촘히 붙어 있기 때문이다. 유리에 스티커가 붙여진 이유는 새들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새들이 유리에 충돌해 죽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디지스트 생태학 동아리인 '잡다' 가 아이디어를 발휘해 내 놓은 결과물이다. 새들은 좁은 틈을 통과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방지하고 유리 충돌을 막기 위해선 가로 5cm 미만, 세로 10cm 미만의 스티커를 붙이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잡다' 동아리 학생들은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아 2019년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 간에 걸쳐 가로 5cm, 세로 10cm로 시트지를 일일이 잘라 교량에 설치된 66장의 유리에 붙였다. 시트지를 붙인 후 2년 간 과학기술교 유리에 부딪혀 죽은 새는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디지스트 생태 동아리 `잡다` 학생들이 학교에 설치한 인공 둥지. [사진 제공 = 동아리 잡다]
디지스트의 이색 동아리 '잡다'가 만들어진 건 2018년 2학기다. 생태학을 좋아하는 학우들이 모여 조류와 곤충 등 생태학을 좀 더 재미있고 실용성 있게 연구해 보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동아리명은 '잡다한 생물을 잡는 동아리'란 의미를 담았다. 2019년 2학기부터는 교내 정식 동아리로 승인을 받았다. 정식 동아리로 승인을 받은 지 2년이 채 안 됐지만 생태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모여들면서 회원 수도 43명에 달한다. 올해도 신입생 10여명이 신규로 가입했다.

'잡다'의 주된 활동은 조류 충돌 예방이다. 조류는 눈이 머리 측면에 위치해 있어 전방에 있는 물체의 거리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새들은 유리의 투명성과 반사성으로 인해 유리를 뚫려진 공간으로 인식하고 충돌해 즉사하거나 다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리창과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죽는 조류가 연간 800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전임 동아리 회장을 지낸 이은교(22·기초학부 2학년)씨는 "과학기술교 유리에 부딪혀 죽은 새 중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2급인 새매도 있었다"며 "인간과 새들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 동아리의 주된 활동"이라고 말했다.

2018년 디지스트 생태 동아리 `잡다` 학생들이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생태 여행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동아리 잡다]
'잡다'가 조류 방지 스티커를 붙인 곳은 현재 '과학기술교' 한 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재 조류 충돌이 많은 '기숙사 돌다리' 등 교내를 중심으로 학교측과 협의해 스티커를 추가로 붙일 계획이다. '잡다'는 교내 안팎을 대상으로 새가 유리 등 외부 물체와 충돌해 죽는 일이 발생하면 제보도 접수받고 있다. 신고가 접수되면 회원들은 현장을 찾아 새 종류를 확인하고 충돌 이유와 사체 수거 등을 통해 예방책을 논의한다.

계절마다 좀 차이가 있지만 요즘 동아리에는 일주일에 한 두번 이상은 새가 충돌했다는 신고가 들어온다고 한다.

이외에도 '잡다'는 교내 안팎에 30여개의 인공 둥지를 설치해 여러 새들이 둥지를 틀도록 도와주고 있고 생태 학습 등을 위한 생태 여행이나 토론회, 세미나 등도 수시로 열고 있다.

교내 학우들의 생태 분야 관심 증대를 위해 SNS 등을 통한 각종 이벤트를 여는 것도 이 동아리만의 특징이다. 동식물 사진을 찍은 후 동아리 페이스북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치킨이나 커피 무료 쿠폰권 등을 주는 식이다.

이 씨는 "교내외에서 죽은 새나 다친 새를 보면 언제든지 잡다로 제보를 바란다"며 "코로나로 인해 야외 활동에 제약에 많지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동아리 홍보 활동을 더욱 활발히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물스물은 '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라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사회 진출을 준비하거나 첫 발을 내딛고 스멀스멀 꿈을 펼치는 청년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매일경제 사회부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 20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참신한 소식에서부터 굵직한 이슈, 정보까지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대구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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