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 보고 싶다. 생각하면 아리다."..고 장원봉 박사 1주기 추모행사

조현경 2021. 4. 1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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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나 아쉬움이 아니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하여> ..도전
사회적경제의 진부화·동형화·도구화 경계
사상과 철학에 기반한 복합성·정체성 복원
17일 오후, 장원봉 박사 1주기 추모식의 〔2부 북토크〕에서 고 장원봉 박사의 추모집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하여>의 저자들과 함께 그의 사상과 실천을 기리는 북토크가 열렸다.
“사회적경제는 국가 및 시장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자기의 길을 잃지 않고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에 관해 자신만의 목표와 전략을 가져야 한다.”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하여: 장원봉과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에서 발췌
시원한 4월의 바람이 마스크의 갑갑함을 모처럼 가볍게 해 주던 17일 오후 4시 서울 충무로의 ‘공간 채비’. 토요일임에도 1년 전 하늘로 떠난 장원봉 박사를 그리워하는 사회적경제인들과 그를 아끼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현장과 온라인을 연결해 열린 추모식에 모였다. 1부는 그와의 추억을 기리는 추모식이 진행됐고, 2부는 장 박사의 사상을 짚어보고, 그리운 마음을 담은 책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하여>를 이야기하는 북토크 자리로 꾸려졌다.

사회적 경제 전공으로는 국내 최초 박사인 그는 2008년부터 사회투자지원재단에서 조사연구팀장, 지역자치센터소장, 상임이사를 맡아 사회적 경제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다 암이 발병해 1년여간의 투병도 헛되이 지난해 4월 17일 타계했다.

70~80여명의 사람들이 고 장원봉 박사의 1주기 온라인 추모식에 참여해 자리를 지켰다.

장 박사의 부인 이재원씨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그는 여러 회의에서 작성한 메모 곳곳에 ‘다짐’을 기록해놓았습니다. 저와 우리 아들 모두 그 사람이 남긴 메모처럼 매 순간 ‘다짐’하며 살려고 합니다…늘 자기 고백했던 그 사람의 삶을 태도를 기억하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고 전했다. 대신 글을 낭독하던 김유숙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는 “아직도 장 박사의 열정이 담긴 빼곡한 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대목을 읽다 잠시 울컥해 하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추모식에 참여한 민동세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이사장은 “오늘날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가 모범적 주체가 되기까지 장원봉 박사의 가치와 신념이 토대가 됐다”며 “2년 넘게 매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장 박사와 지역 활동가들을 만나 공부하며 만든 전략체계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 이사장은 “그 때로 돌아간다면 천천히 하자고 말해주고 싶다”고 애석해 했다.

신필균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이사장이 고 장원봉 박사의 1주기 추모식 무대에 올라 그를 기념하며 추도하고 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의 이사장을 역임했던 신필균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이사장은 “추모영상에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마이 웨이>(My Way)에 장 박사의 성격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며 그와의 특별한 인연을 회고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심 이사장이 원장으로 재직했던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에선 단순한 구호활동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연대 속에서 실업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사업을 10개 지역에서 시작했다. 신 이사장은 “장원봉 박사가 우리 사업 이야기를 듣더니 본인이 바로 찾던 일이라며 자발적으로 보수 없는 간사 역할을 자청해왔다”며 “젊은 학생이 지역에서 실업자들과 일하며 봉사하겠다는 이야기에 처음엔 믿기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론 천군만마의 일꾼을 얻은 셈”이라고 감회에 젖었다. 그는 “장 박사는 짧게 살았지만 30여년간 사회적 경제에 몰두한 사람으로서 그 내용과 의미에서는 깊고, 길다”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므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백미선 노원사회적경제연대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그는 ‘고백’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살아가는 자세도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무언가를 같이 하는 방식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었다.”며 “장 박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려다 보니, 어느덧 그게 내 일이 되었고, 사회적경제 운동에도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백미선 노원사회적경제연대 사회적협동조합 대표가 고 장원봉 박사의 1주기 추모식 무대에 올라 그를 기념하며 추도하고 있다.

2부 북토크는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이 진행을 맡고,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장, 김정원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계약교수, 정수남 전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패널로 나서 장 박사의 연구와 글이 한국 사회적경제 운동에 어떤 자취를 남겼는지를 짚었다. 아울러 추모집에 기고한 저자들이 어떻게 그를 기억하고 되새기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채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추모집을 기획한 신명호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장은 “1년 전 장례식장에서 장 박사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그의 연구와 실천, 그의 생각과 고민들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데 뜻이 모여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신 센터장은 “장 박사는 누구보다도 사회적 경제에 애정이 깊었다. 사회적경제가 번성하기를 바랬지만, 그 과정에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수단화되거나 도구화되는 것에 대해 걱정도 컸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그가 연구자이기도 했지만, 실천을 중시하는 실천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추모집에는 여러 필자들이 사회적경제의 전략과 목표를 견지하면서 본성을 잃지 않고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을 내놓았다.

자크 드푸르니 벨기에 리에주대학교 HEC 경영학부 사회적경제센터의 명예교수가 장원봉 교수의 추모집에 마르트 니센, 올리비에 브롤리와 함께 <사회적기업 모형의 국제적 검증: 사회적기업 모형 국제 비교 프로젝트’를 바탕으로>라는 기고문을 실었으며, 2부 북토크를 위해 녹화영상을 보내왔다.

하승우 소장과 김신양 회장은 “사회적경제가 제도의 진부화·도구화를 극복하고, 사상과 철학에 바탕을 둔 복합성을 인정하고 더욱 다원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원봉 박사가 벨기에 리에주대학교에서 박사후 과정을 이수하던 당시 지도교수였던 자크 드푸르니 명예교수 역시 추모집에 기고문을 실었다. 추모집에 기고문을 보낸 드푸르니 명예교수는 영상에서 “사회적기업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개하고 싶었다”며 “다양성·복합성은 사회적기업에 있어 자유의 뼈대가 되고 자유를 보장하는 보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원봉 박사는 1970년 인천시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 2005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과에서 <사회적경제의 대안적 개념구성에 관한 연구 >로 사회적경제를 주제로한 연구로는 국내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 벨기에 리에주대학교 사회적경제센터 CES에서 박사후 과정 (2007년 ~2008년 )을 이수했다 .

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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