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살아있다]펀치볼, 2억년간 빗방울이 만든 '딥 임팩트'

우경식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2021. 4. 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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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그릇을 닮은 해안분지. 안개가 고도가 낮은 분지 내부를 덮은 모습이 화채 그릇처럼 보인다. 양주군청 제공

한반도의 정중앙인 강원도 양구군은 대부분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지만, 유독 한 지역은 마치 크레이터(화산 웅덩이나 운석 웅덩이)처럼 가운데가 푹 꺼져있다.  이 모습을 본 미국의 한 기자는 파티용 음료인 ‘펀치’를 담는 그릇을 닮았다고 ‘펀치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쩌다 수많은 산 중간에 이런 지형이 생겼을까. 어마어마하게 큰 운석이라도 떨어진 걸까.

해안분지, 운석이 충돌한 흔적이다

평범한 석영과 달리 운석이 충돌한 지형에서 발견되는 석영은 충격으로 변형되어 특이한 줄무늬 구조가 나타난다. 우경식 제공

펀치볼의 정확한 명칭은 ‘해안분지’이다. 지질학자들은 주변보다 해발 고도가 낮아 푹 꺼진 것처럼 보이는 지역을 ‘분지’라 부르는데, 분지 가운데 ‘해안면’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해안분지라 부른다.  해안분지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국군이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은 조용한 농촌이지만, 해안분지는 북한의 접경지대에 있어 들어가려면 아직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멀리 산 너머로 금강산도 보인다.

해안분지는 동서 약 6~7km, 남북 10km에 이른다. 넓이는 대략 58㎢로 축구장 8000개가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다. 이렇게 넓은 땅 주변으로 해발고도 800m가 넘는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분지 중간에서는 정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만 보인다. 그래서 여름 아침에 주변 산에 올라 해안분지를 내려다보면 안개가 소복 담긴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어쩌다 이 산골에 넓은 평지가 들어섰을까. 해안분지가 크레이터처럼 생긴 지형이다 보니, 이곳이 운석 충돌로 생겼다고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지질학자들은 해안분지의 암석을 조사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흔히 운석이 충돌하면 석영이라는 광물에 자국을 남기는데 해안분지 암석의 석영에는 운석 충돌로 변형된 흔적이 없다. 따라서 운석이 떨어져 생긴 크레이터는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장이었던 이곳은 이제 평화로운 농촌으로, 시래기 등 양구군의 특산물을 키워내고 있다. 양구군청 제공

변성암 속에 화강암 있다

지질학자들은 해안분지와 분지를 둘러싼 산이 완전히 다른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우선 주변 산은 20~30억 년 된 변성암으로 이루어졌다. 변성암은 암석이 높은 열과 압력을 받으면 변해서 만들어지는데, 절리가 적고 풍화에 강하다. 대륙이 충돌하거나, 해양지각이 대륙으로 밀고 들어가는 지역에서 생긴다. 

그런데 해안분지 중심에서는 약 2억 년 전, 중생대 쥐라기에 만들어진 화강암이 발견된다. 화강암은 잘 갈라져서 절리도 많고 풍화에도 약해서 잘 부서진다. 

지질학자들은 암석이 여러 작용으로 점차 파괴되고 분해되어 흙으로 변하는 현상을 ‘풍화’라고 부른다.  땅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암석은 높은 압력을 받다가, 지표면에 노출되면 압력이 낮아지면서 갈라진 틈이 생긴다. 틈 사이로 들어간 물이 얼면 얼음의 부피가 커져서 암석이 부서져 작은 돌 더미가 된다. 이 과정을 ‘물리적 풍화(기계적 풍화)’라고 부른다.

우경식 교수가 해안분지의 지층을 보고 있다. 쌓인 흙 아래로 화강암이 드러나 있다. 이광춘 제공

그런데 풍화는 화학 반응을 통해서도 일어난다. 지표면 암석의 광물은 땅속과 달리, 빗물, 대기와도 만나 새로운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소금이 물에 녹는 것처럼, 어떤 광물은 빗물을 만나 ‘점토광물’이라는 다른 광물로 변한다. 광물에 철 성분이 있다면 녹이 슬면서 색이 붉게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암석이 화학 반응을 통해 더 안정한 광물로 변하는 과정을 ‘화학적 풍화’라고 한다. 암석은 화학적 풍화를 통해 다른 형태의 광물로 변하고, 이렇게 변한 광물이 식물과 함께 흙이 된 것을 ‘토양’이라 부른다..

해안분지는 차별침식으로 만들어졌다

2억 년 전 양구 일대 지역의 지하에서 마그마가 단단한 변성암을 뚫고 올라왔다. 마그마는 굳으면서 화강암이 되었고, 이후 이 지역 전체가 솟아오르며 화강암과 변성암이 같이 지표면에 노출됐다. 그런데 화강암은 변성암보다 갈라진 틈이 많아 훨씬 풍화에 약하다. 그래서 화강암에서 풍화가 빨리 일어나 흙이 만들어지면서 가운데 부분만 깎여나간 것이다. 

이렇게 장소에 따라 지표면의 침식 정도가 달라 서로 다른 속도로 깎여나가는 현상을 ‘차별침식’이라 한다. 차별침식 현상이 2억 년 동안 일어나면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부분만 푹 꺼진 해안분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화강암은 지금도 변성암보다 빨리 침식되고 있으니, 앞으로 해안분지는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해안분지의 지질도. 해안분지 내부는 풍화가 잘 일어나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졌지만, 분지를 둘러싼 주변 산은 변성암이다. 변성암은 양쪽에서 힘을 받아 만들어지면서, 암석 속에 ‘엽리’라는 선 모양의 구조가 생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필자소개.

우경식.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해양지질학을 공부하고 1986년부터 강원대 지질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동굴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IUCN 세계자연유산 심사위원으로 세계의 지질유산을 심사하고 있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4월 1일자, [파고 캐고 지질학자] 운석이 아니라 빗방울이 펀치볼을 만들었다고?

https://dl.dongascience.com/magazine/view/C202108N022

[우경식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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