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도전 '오페라' 에릭오 감독 "관객에게 질문 던지는 작품"
"표현방식에 제약 없는 장르..사회에 좋은 메시지 전하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동그라미 얼굴과 삼각형 몸통으로 이뤄진 인간들이 피라미드 안에 와글와글 모여 있다. 이들은 각자의 구역에서 출산, 교육, 종교, 노동, 폭력 등 인간사의 단면을 반복적으로 행한다.
뚜렷한 서사도 없고, 주인공이라고 부를만한 캐릭터도 없다. 고개를 갸우뚱할 법한 이 9분 남짓의 영상이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올랐다. 작품명은 '오페라'(Opera). 국내 제작사가 만든 한국 작품이다.
오는 25일(현지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에릭 오(37·한국명 오수형) 감독은 공들여 만든 작품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는 데 신나고 흥분된 모습이었다.
'오페라'는 낮과 밤이 끝없이 반복되는 인류 역사의 계층, 문화, 종교, 이념 간의 갈등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토리와 캐릭터 중심의 애니메이션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인류의 역사나 사회, 보편적인 부분을 정형화된 스타일이 아닌 순환된 구조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평소 정치나 테러, 환경오염, 종교갈등 등에 대해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었는데, 작품을 구상할 때 이런 부분이 극에 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삶과 죽음, 제도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들을 나열하는 것부터 작업이 시작됐다. 그렇게 선정한 주제들을 피라미드 안에 구역을 나눠 배치했다.
"24개 섹션으로 나뉘어있지만, 정확한 구분은 아니에요. 3∼4개 구역이 하나로 묶이기도 하고, 정반대 쪽에 있는 구역과 시너지를 내기도 하거든요. 우리 삶이 그렇잖아요. 결혼식에 행복해하다가도 장례식에 슬퍼하기도 하고. 지구라는 행성 안의 수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담으려고 했어요."
작품을 들여다보면 관객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관심사에 따라 눈에 띄는 부분들이 있다. 예컨대 피라미드 오른쪽 하단의 뼈가 앙상한 물고기는 어느 순간 돌변해 사람들을 잡아먹고, 반대편에 알록달록한 사탕같이 다양한 색상의 머리를 단 사람들은 목이 잘려 나가기도 한다.
"물고기는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해요. 물고기를 뜯어먹는 건 우리가 자연을 파괴해나가면서 사회를 구성하는 점과 닮아있죠. 밤에는 물고기가 사람들은 다 잡아 먹어버려요. 코로나도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자연의 반격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표현한 거죠. 다양한 색상의 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인종만을 뜻하는 건 아니에요. 사상일 수도 있고, 창의적 생각이 될 수 있죠."
오 감독은 작품을 통해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그 질문에 관객들이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작품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는 "디즈니, 픽사는 어떤 점을 배우라며 결론을 주지만, '오페라'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현실이 이런데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라며 "염세와 절망, 희망이 버무려진 작품인데, 희망은 관객 스스로가 찾아가는 것이다. 답은 관객 각자에게 있다"고 말했다.
'오페라'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파격적이다. 당초 벽면이나 구조물에 투사되는 미디어아트로 제작됐다. 오 감독은 애니메이션은 표현 방식에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장르라고 강조했다. 이번 아카데미의 후보 지명은 기존의 형식을 깬 작품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했다.
그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만화영화만 생각하는데, 한 꺼풀 들춰보면 더 넓은 세계가 있다"며 "내 역할은 '이런 것도 애니메이션이야'라며 야금야금 그 폭을 넓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오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픽사 출신이다. 그의 손끝에서 '도리를 찾아서'의 문어 행크가 만들어졌다. 개인 작품활동에 집중하게 된 건 2016년 10월 픽사를 퇴사하면서부터다.
"픽사를 나오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나게 작품 활동을 했어요. 고생도 많았는데 힘든 줄 모르고 지나간 거 같아요. 픽사에 있을 때는 팀원들과 똘똘 뭉쳐서 전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면, 지금은 돛단배처럼 움직이고 있죠. 제 이야기를 직접 지휘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오 감독의 아버지는 인간형 로봇 '휴보'를 만든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다. 그는 예술과 과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탐구해나간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다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창작자로서 형식적인 틀을 깨는 태도를 유지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또 작품을 통해 사회를 좀 더 나아지게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한 작품들도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계속 손잡아줄게…(We'll hold your hands as long as…)'라는 글이 적힌 작품은 애틀랜타 총격 사건 다음 날 만들었다. 흰 얼굴의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있는데, 한 명의 얼굴이 빗물에 씻겨 노란색으로 드러나는 순간 손을 놓아버린다. 그리고 흰색으로 얼굴을 다시 칠하고 나서야 다시 손을 잡아준다.
"작품을 통해 사회에 좋은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예술을 떠나 사회 구성원은 누구나 그런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림쟁이로서 계속 사회가 나아질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거죠."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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