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촌평] IAEA조사단이 WHO조사단 전철 밟지 않으려면

이현경 기자 2021. 4.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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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경 데일리뉴스팀 기자

일본 정부가 13일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탱크에 저장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으로 방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방사능 오염수의 안전성을 둘러싸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이날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과 관련해 “‘처리수’의 안전성을 담보하고 이와 관련한 소문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정부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의 주장처럼 후쿠시마 원전 탱크의 물이 ‘오염수’가 아니라 안전한 ‘처리수’인지 과학적으로 판단하기에는 공개된 정보가 여전히 불충분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후쿠시마 제1 원전이 재기 불능 상태가 되자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원전 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후 원전 폐로 작업의 일환으로 10년째 제1 원전의 녹아내린 핵연료봉을 냉각하기 위한 물을 주입해왔다. 이 과정에서 하루 170톤(t)가량의 방사능 오염수가 생성됐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폐로 홈페이지에 따르면 오염수 저장 탱크는 현재 1000개가 넘고, 여기에는 약 123만t이 저장돼 있다. 이는 올해 개최되는 도쿄올림픽 수영 경기장 500개 또는 도쿄돔 500개를 채울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도쿄전력은 63종의 방사성 핵종을 제거할 수 있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이용해 탱크의 오염수를 정화하는 만큼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또 ALPS로도 제거되지 않는 유일한 방사성 핵종인 삼중수소는 해수로 희석해 자국 기준치보다 훨씬 낮은 농도이자 세계보건기구(WHO)의 식수 권고치의 7분의 1 수준으로 낮춰 방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본 측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측면에서 무리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최근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의 15개소에서 테러 목적 등의 칩임을 감지하는 설비가 고장 났는데도 규제 기관인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에 보고하지 않았고, 원전 직원이 동료의 출입 카드로 중앙제어실에 부정하게 들어가는 등의 사고가 적발돼 원전 운전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최근까지도 원전 운영에서 신뢰를 잃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절차를 제대로 진행할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일본 관가의 분위기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에 강력히 항의하자 한국과 중국 따위의 의견은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대사관은 해양 방류 방침에 대해 사전에 한국 정부와 국내 유관 기관, 언론에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해양 방류를 통보한 시점은 발표가 임박한 시점에서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인 셈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NRA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절차에 대한 도쿄전력의 계획을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심사할 수 있을지에도 회의적인 분위기다. NRA는 한국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원자력 규제 기관으로 독립된 정부 기관이지만, NRA 위원장은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찬성하는 의견을 공공연히 밝히며 독립성을 훼손시켰다. 

원안위 관계자는 “2019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 방침을 밝힐 때부터 NRA 측에는 기술기준 등 심사 절차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매번 ‘도쿄전력이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아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전 한국, 중국 등 인접국이 참여하는 국제조사단을 꾸려 안전성을 검증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재 상황대로라면 국제조사단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 

도쿄전력이 투명한 정보 공개를 내세우며 운영하는 후쿠시마 폐로 홈페이지는 일본어로만 서비스된다. 후쿠시마 폐로의 한 축인 방사능 오염수 처리를 자국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도쿄전력에 묻고 싶다. 도쿄전력이 앞으로도 이런 식의 폐쇄적인 입장을 유지한다면 IAEA 국제조사단에 오염수 탱크의 방사성 핵종 농도 등 실질적인 정보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할지는 미지수다. 

켄 뷰슬러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WHOI) 해양및환경방사능센터장는 지난달 동아사이언스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도쿄전력은 삼중수소 외에 오염수 탱크에 들어 있는 방사성 핵종을 2018년 중반에야 공개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뷰슬러 센터장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매년 인근 해역의 방사성 핵종의 농도를 조사하며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관련 논문을 공개하는 등 이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유행 이후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조사단을 꾸려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의 기원을 조사한 뒤 최종보고서를 발표했지만 각국 정부와 전문가들로부터 “부실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중국 정부의 비협조로 국제조사단의 우한 방문이 지난 1월에야 처음 이뤄졌고, 코로나19 발병 초기 데이터 제공을 거부하는 등 조사 과정에도 제약이 많았다. 

IAEA 국제조사단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일본 정부가 국제조사단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편으로는 외교적 설득과 압박이 필요하다. IAEA 국제조사단만 바라보고 있을 수도 없다. 2년 뒤 실제 해양 방류가 이뤄지면 해수와 해양생물의 방사성 핵종의 농도를 직접 검증할 수 있는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도 더욱 견고하게 갖춰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함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참사로 꼽힌다. 대량의 방사능 오염수를 희석해 해양에 방류한 전례가 없다. 비교 근거로 삼을 사전 데이터가 없다는 뜻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조사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투명한 검증 과정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IAEA 국제조사단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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