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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조선 8대 명창 '이날치' 후손, 심청가 후계자 2명 지정 왜

김준희 입력 2021. 04. 20. 17:50 수정 2021. 04. 2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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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전북도, 무형문화재 2명 지정 예고 "이례적"
조선 후기 8대 명창인 '이날치'의 후손인 이일주(85·여) 명창. 중앙포토



이일주 명창 판소리 심청가 종목 후계자

조선 후기 8대 명창인 '이날치'의 후손인 이일주(85·여) 명창의 뒤를 이을 공식 후계자가 2명이 됐다. 최근 전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이 명창의 제자 2명이 나란히 심사를 통과해서다. 이날치는 '수궁가'를 재해석한 노래 '범 내려온다'를 히트시킨 밴드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북도는 20일 "지난 2일 '이옥희(이일주씨 본명) 바디 판소리 심청가' 전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송재영(61)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과 장문희(45·여)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수석단원 등 2명을 지정(인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바디는 판소리에서 명창이 스승에게 전수받아 다듬은 판소리 한 마당 전부를 말한다. 전북도는 한 달간 예고 기간을 거쳐 다음 달 7일 최종적으로 지정 고시를 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국악계 안팎에서는 "스승의 뜻과 전통을 중시하는 국악계 정서상 한 문파에서 후계자 2명이 나온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도는 어떤 기준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지정했을까.

'범 내려온다'를 부른 이날치 밴드. 이날치는 조선 후기 8대 명창의 이름이다. 전민규 기자



"송재영·장문희, 모두 80점 기준 넘겨"
전북도는 지난해 3월 10일 도 무형문화재 지정 계획을 알렸다. 이일주 명창의 건강이 악화하자 지난해 그를 명예보유자로 전환한 뒤였다. 이후 ▶무형문화재 신청서 접수 ▶신청서 검토 ▶도 무형문화재위원회 현지조사자 선정 ▶현지조사 실시 ▶도 무형문화재 소위원회 배점표 평가 등을 거쳐 1년여 만에 두 명창을 낙점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보통 문파라고 하면 무형문화재 신청 전에 스승이 제자 중 하나를 후계자로 정해 그 사람이 문화재가 됐다"며 "이일주 명창의 경우 후계자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제자 3명이 문화재를 신청해 이 중 기준 점수를 넘긴 2명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청과 타 시·도 사례를 참고해 2015년 당시 도 문화재위원회에서 기준 점수를 80점으로 정했다"고 했다.

전북도가 지난 2일 공개한 도보. '이옥희(이일주씨 본명) 바디 판소리 심청가' 전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송재영 명창과 장문희 명창을 지정(인정) 예고했다. 두 사람 모두 "평가 결과 우수하다"고 적혀 있다. 사진 전북도



"문화재위원들도 격론…둘 다 실력 우수"
전북도 측은 "도 무형문화재 지정은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조례를 근거로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다만 "남원 옻칠장 등 시간 차를 두고 도 무형문화재로 여러 명이 지정된 경우는 있었지만, 한꺼번에 여러 명이 지정된 경우는 이일주 심청가가 처음"이라며 "한 문파 내에서 동문들이 여러 명 신청한 적이 없어서 문화재위원들도 당황했다"고 전했다.

전북도에 따르면 도 무형문화재는 문화재청 심사표에 준해 평가한다. 1단계 심사에서는 전승 활동 실적, 전승 기량, 대상자 평판, 건강 상태, 전승 기여도, 2단계 심사에서는 실기 능력, 종목 이해도, 교수 능력, 시설·장비 수준, 전승 의지 등이 평가 항목이다. 두 명창 모두 실력이 출중해 지난달 26일 위원 11명이 참석한 도 무형문화재위원회 지정 예고 심의에서 격론이 벌어졌다는 게 전북도 설명이다.

'이옥희(이일주씨 본명) 바디 판소리 심청가' 전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 예고된 송재영(61)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송 명창은 2003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차지했고,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을 지냈다. 사진 전북도



전수 교육 조교 VS 이날치 마지막 후손
전북도 관계자는 "송재영 명창은 이일주 선생님을 40년 가까이 모시면서 전수 교육 조교로서 10년가량 활동한 경력이 강점이고, 장문희 명창은 나이는 어리지만 판소리 실력으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데다 이날치 선생의 마지막 자손"이라고 했다.

두 명창은 도 무형문화재 복수 지정을 두고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스승의 소리를 잘 보전하겠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송 명창은 "같은 제자지만, (장)문희 나름대로 소리 보전 계획이 있을 것"이라며 "저는 선생님이 가르쳐 준 소리를 가장 온전하게 세상에 많이 보급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옥희(이일주씨 본명) 바디 판소리 심청가' 전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 예고된 장문희(45·여)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수석단원. 장 명창은 28살이던 2004년에 전주대사습대회 사상 최연소 대통령상 수상자로 당시 심사위원 전원으로부터 만점을 받았다. 2017년에는 케이블 음악 방송 엠넷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에 출연해 그랜드 마스터로 두 번 뽑혔다. 사진 전북도



최동현 교수 "바디별 중복 지정 검토할 때"
이일주 명창의 조카인 장 명창은 "송 선생님은 연륜과 지위가 있으시고, 저와 이모님 밑에서 가장 오래 있어서 (복수 지정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저 나름대로 이모님에게 받은 소리를 묵묵히 전승하겠다"고 했다. 이날치는 장 명창의 고조 외할아버지다.

국악계 일각에서는 "판소리 다섯 마당을 쪼개 각각 한 사람만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 말고 한 사람이 여러 소리를 전승할 수 있게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동현 군산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보통 소리를 하면 심청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춘향가·수궁가 등 판소리 다섯 가지를 다 잘한다"며 "무형문화재 지정 목적이 판소리 보전이라면 문화재가 몇 명인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명창 한 사람이 여러 소리, 아니면 한 소리의 보유자로 여러 명 지정하는 것을 검토해 볼 때"라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 ▶전북도 무형문화재전북도에 따르면 최초 도 무형문화재는 '익산목발노래'로 1984년 9월 지정됐다. 현재 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판소리 등 55개 종목 72명, 단체는 정읍농악 등 16개가 있다.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전북도로부터 매달 전승활동비로 100만원, 1년에 한 번 공개행사비로 250만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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