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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강간 후 살해..'소녀의 귀걸이'가 엄마의 한 풀었다

정은혜 입력 2021. 04. 20. 17:58 수정 2021. 04. 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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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서호주에서 실종된 10대 소녀 헤일리 도드의 어린 시절 사진.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미제사건이었던 '헤일리 도드' 실종 사건이 22년 만에 결론을 맺었다. 시신도, 아무 단서도 발견되지 않아 초기 수사가 실패로 돌아갔던 이 사건은 "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야겠다"는 엄마 마거릿 도드의 끈기와 법의학자의 꼼꼼한 증거물 재조사가 빛을 발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최근 ABC뉴스 등 호주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호주 남성 프란시스 존 워크(65)는 22년 전 서호주 배징가라에서 히치하이크를 하던 헤일리(당시 17세)를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지난달 31일 최소 16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시신 찾기에 협조하지 않으면 징역 2년이 추가된다.

1999년 7월 29일 헤일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어촌마을 동가라에서 약 214㎞ 떨어져 있는 무라를 향해 출발했다. 단돈 5달러와 호신용 칼을 들고 처음으로 먼길을 홀로 떠났다. 차량으로 2시간가량 이동해야 하는 거리다.

헤일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배징가라의 도로 위였다. 무라까지 불과 52㎞ 앞두고 도로에서 히치하이크를 하다 사라진 것이다.

헤일리는 22년 전 동가라에서 약 214km 떨어진 무라로 가던 중 배징가라 도로(별표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실종됐다. [구글맵 캡처]


범인 워크(당시 43세)는 당시 배징가라 지역에서 15년째 살고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워크는 히치하이크를 하던 헤일리를 차에 태워 강간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

사건 초기에는 단서가 없었다. 워크는 당시 경찰에 "헤일리가 실종됐을 당시 나는 무라에서 쇼핑 중이었다"며 알리바이를 댔다.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헤일리의 엄마 마거릿은 경찰과 정치인에게 수사를 강화할 것을 호소하고 압박했다. 개인 수사관을 고용했을 뿐 아니라 심령술사까지 동원해 7만 달러(약 7789만원)를 지출했지만, 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배징가라 지역에서 '요주의 인물'을 130명으로 추리기도 했다.

하늘이 도운 걸까. 14년이 지난 2013년 서호주 경찰 당국은 사건 재조사에 들어갔고, 한 법의학자가 과거 경찰이 압수해 보유해온 증거물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당시 요주의 인물 중 하나였던 워크의 차량 좌석 시트도 경찰이 보관해왔다.

법의학자 트레이시 혼은 시트 덮개를 거둬내고 꼼꼼히 들여다보던 중 천에 박혀있는 귀걸이를 발견했다. 헤일리가 실종 이틀 전 친구에게 선물 받은 독특한 모양의 귀걸이였다. 귀걸이 발견 위치를 중점 조사하자 혈흔이 검출됐고 머리카락도 발견됐다. 마거릿의 DNA와 일치했다.

헤일리 도드를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16년형을 선고 받은 프란시스 존 워크(65).

증거물을 확보한 경찰은 워크를 심문한 뒤 기소했다. 워크는 히치하이크를 하던 또다른 여성을 성폭행하고 구타한 혐의로 복역 중이었다. 헤일리 실종 사건의 첫 재판은 2017년에 열렸다. 하지만 워크의 변호인은 알리바이를 들며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다. 귀걸이는 헤일리 부모의 압박을 받은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재판부는 21년 징역형을 선고했지만 2020년 항소법원이 증거불충분과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심을 명령하면서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31일 서호주 대법원은 워크를 살인 유죄로 판단했다. 판사는 워크가 히치하이커를 강간한 전력이 있는 데다 전리품으로 피해자의 귀걸이를 가져가는 습성을 고려했다. 법정에서 마거릿은 "내 딸의 유일한 죄는 순진했다는 것"이라며 워크를 향해 직접 "헤일리가 어디 있는지 말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거릿은 또 "21년간 헤일리가 누군가에게 공격당하면서 도와달라고 외치는 꿈을 수도 없이 꿨다"며 "헤일리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무력감이 닥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판사는 "취약성이 분명한 소녀에게 성적 의도로 다가가 폭력을 저지른 최악의 살인 유형"이라며 "소녀의 소원그리고 안녕과 관계없이 자신의 성적 만족을 추구했다"고 꾸짖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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