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 같은 곳서 성고문..'사북항쟁' 국가폭력의 야만
남녀 함께 가두고 '공개 고문'
"정부 사과·피해자 명예회복을"
[경향신문]
■사북항쟁
1980년 4월21일부터 강원 정선읍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일하던 광부와 가족 등 4000여명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던 중 경찰의 탄압을 받아 계엄당국과 대치했다. 광부들은 4월24일 해산했지만, 5월6일 전두환 신군부가 이들을 폭도로 규정한 후 대대적인 연행과 끔찍한 고문이 이어졌다.
수십명이 강원 정선경찰서 강당에 마련된 임시 조사실로 연행됐다. 조사실 내부에는 각목, 포승줄, 고무호스, 곡괭이, 주전자 등 고문 도구가 놓여 있었다. 강당 벽을 따라 칸칸이 만들어져 ‘돼지집’처럼 빽빽한 조사실에서 어떤 사람은 무릎을 꿇은 채, 어떤 사람은 ‘통닭구이’ 상태로 허공에 매달려 폭행을 당했다. 두들겨 맞다가 다른 공간으로 끌려가 물고문도 당했다. 조사실 칸막이를 헝겊이나 베니어판으로 만든 탓에 옆 조사실에서 다른 사람이 구타당하는 것이 보였다. 성고문까지 병행된 조사실에서 피해자들은 남녀 구분 없이 방치됐다. 1980년 사북항쟁 참가자들을 상대로 한 국가폭력은 공개 고문에 가까웠다.
정선지역사회연구소는 사북항쟁 41주년을 하루 앞둔 20일 ‘사북항쟁 시기 국가폭력의 실상과 특이점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며 “좁은 공간에 남녀를 몰아넣고 사실상의 공개 고문을 자행했던 임시 조사실은 국가폭력의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가장 야만적인 고문 공간이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재단법인 진실의힘과 함께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1기 진실화해위)가 발간한 ‘80년 사북사건 보고서’ 등 수천쪽에 이르는 관련 문건들과 피해자 등 관련자 50여명의 구술 내용을 종합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연구소는 “사북항쟁을 국가폭력에 초점을 맞춰 종합적으로 분석한 첫 결과물”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여성을 상대로 한 성고문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당시 군 보안부대·경찰·검찰·중앙정보부로 구성된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은 손, 경찰봉, 야구방망이로 특정 신체 부위를 쿡쿡 찌르는 방식으로 여성들을 괴롭혔다. 물고문 중 옷가지가 내려가면 몸을 함부로 만지고 그 상태에서 폭행했다. 한 피해자의 경우 임신 4개월 상태에서 고문을 받고 유산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음부나 가슴이 보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고 살아서 자식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죽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황인욱 연구소장은 “그동안 사북항쟁 피해자들은 국가폭력 피해 사실을 직접 입증하라고 요구받았다”며 “잔혹한 국가폭력에 대해 국가와 권력기관은 당사자와 국민에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구제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연구소는 이날 경향신문에 피해자 150명의 명단을 최초로 공개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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