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청량산.. '퇴계·청량산인'이란 호를 낳은 명산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입력 2021. 4. 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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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 에서도 조선 12대 명산으로 꼽아.. 원효·의상·김생·최치원 등 자취 전해
청량산 축융봉을 맞은편에 두고 청량사 5층석탑과 청량사가 산 능선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백두대간 등줄기에서 벗어나 있는 명산, 칠보산·묘향산·가야산(합천)과 청량산 네 개의 산만이 백두대간 여덟 개 산과 더불어 나라 안의 큰 명산으로 은둔자들이 깃들어 수양하는 곳이다’라고 이중환은 <택리지> ‘명산과 명찰’편에 밝히고 있다. 여덟 개의 산은 금강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속리산·선유산·덕유산·지리산이다. 이밖에 자주 언급되는 산은 설악산(한계산)·도장산·청화산 등이다. 청량산淸凉山(869.7m)이 한반도의 여느 산 못지않은 명산이라는 사실은 여러 문헌에서 등장한다.
1544년 청량산을 유람하고 최초로 기행문을 남긴 신재 주세붕은 〈유청량산록〉에서 ‘우리나라 산 중에 웅장함은 지리산이요, 청절한 것은 금강산이며, 기이하고 빼어난 것은 박연폭포와 가야산 계곡이다. 그러나 단정하고 엄숙하며 상쾌하고 경개한 산으로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산이 청량산이다’라고 극찬했다. 또 ‘우리나라의 명산을 묻는다면 반드시 저 다섯 산을 이를 것이니, 북은 묘향산, 서는 구월산, 동은 금강산, 가운데는 삼각산, 남은 지리산이다. 그러나 작으면서 선경의 산을 묻는다면 반드시 청량산을 꼽을 것이다’라고 했다.
선경일수록 많은 인물들이 찾는다. 신라시대에는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이 찾았고, 고려 때는 공민왕이 몽고의 침입을 피해 피란 온 장소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세붕과 이황, 그리고 그의 숱한 제자들이 청량산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원효와 의상이 창건한 사찰로 전하는 청량사, 김생이 글씨 공부를 했다는 김생굴, 최치원이 수도했다는 풍혈대, 공민왕이 숨었다는 오마대五馬隊, 퇴계가 성리학을 집대성했다는 청량정사 등은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조선 선비들이 남긴 청량산 유산록 650여 편은 금강산, 지리산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그만큼 많이 찾은 명산이다.
신라시대 김생의 글씨를 모아서 새겼다는 청량산 정상 장인봉 비석.
이들의 흔적은 6·6봉과 12대, 8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6·6봉은 최고봉 장인봉(일명 의상봉)을 비롯, 탁립·축융·경일·선학·금탑·자소·자란·연화·연적·향로·탁필봉이다. 12봉 모두 절경이다. 12대는 금탑봉 오른쪽의 어풍·밀성·풍혈·학소·금강·원효·반야·만월·자비·청풍·송풍·의상대를 일컫는다. 이 가운데 어풍대는 최고의 경승으로 평가받는다. 8개의 동굴은 원효굴·의상굴·반야굴·방장굴·고운굴·감생굴·김생굴·금강굴이다.
특히 이황은 청량산을 ‘우리 집안의 산’, 즉 오가산吾家山으로 칭하며, 스스로를 청량산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호 퇴계도 청량산에서 유래했다. 그의 <도산기陶山記>에 이같은 사실이 자세히 소개된다.
‘영지산의 한 줄기가 동쪽으로 나와 도산陶山이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 산이 두 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산이라 이름하였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옛날 이 산중에 도기굴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에 의거하여 도산이라 하였다고 했다. (중략) 왼쪽에 있는 산을 동취병東翠屛이라 하고, 오른쪽에 있는 것을 서취병이라 한다. 동병은 청량산에서 나와, 이 산 동쪽에 이르러서 벌려 선 봉우리가 아련히 트였고, 서병은 영지산에서 나와 이 산 서쪽에 이르러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높이 솟았다. (중략) 산 뒤에 있는 물을 퇴계退溪라 하고, 산 남쪽에 있는 것을 낙천洛川이라 한다. (후략)’
라시대 김생이 10여 년간 글씨공부를 했다는 청량산 김생굴.
청량산유산록, 금강산·지리산 이어 많아
여기서 도산서원과 퇴계가 유래했다. 청량산인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다. 따라서 퇴계는 청량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인 것이다.
이 정도의 경관과 유래가 있는 명산이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고도 남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이 명시한 명승 제23호 지정이유.
‘봉화 청량산은 낙동강 가에 우뚝 자리 잡은 명산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고 전하여 왔으며,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 백두대간의 8개 명산 외에 대간을 벗어난 4대 명산 중 하나로 평가되어 온 한국의 대표적 명산이다.
해발 800m 내외에 12개 암봉(六六峰: 장인봉·선학봉·자란봉·자소봉·탁필봉·연적봉·연화봉·향로봉·경일봉·탁립봉·금탑봉·축융봉)과 청량산 12대(어풍대·밀성대·풍혈대·학소대·금강대·원효대·반야대·만월대·자비대·청풍대·송풍대·의상대), 청량산 8굴(김생굴·금강굴·원효굴·의상굴·반야굴·방장굴·고운굴·감생굴) 및 청량산 4우물(총명수·청량약수·감로수·김생폭)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 준다.
청량산 정상 장인봉에서 내려와 하늘다리 맞은편에 자란봉과 연적봉이 길게 뻗어 있다.
청량산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 사암, 이암층이 융기·풍화·차별침식 등의 작용으로 다양한 지형이 나타나 있는데, 봉우리들은 모두 역암으로 이루어져 저각도 수평층리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V자곡이 발달된 계곡 주변엔 소규모의 수직·수평절리에 의한 풍화혈과 타포니 등이 발달해 특별한 경관을 보여 줄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또한,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 몽진 시 머무르며 축조했다는 산성 흔적과 마을 주민들이 공민왕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사당이 남아 있으며,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이황 등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장소와 설화들이 많이 남아 있는 등 이곳은 불교의 도량으로, 그리고 16세기 사림파의 등장 이후 산수경치를 사랑하고 유교와 퇴계를 숭상하는 선비들의 유교적 순례지가 되어 왔다.
청량산 하늘다리에서 북쪽 문명산 능선이 길게 펼쳐져 보인다.
봉화 청량산은 이렇듯 역사적 유래가 깊은 명산일 뿐 아니라 공민왕을 기리는 당제가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등 민속적 가치가 크고, 자연경관이 매우 뛰어난 명승지로 평가된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천년 고찰 청량사에는 보물 두 점이 눈에 띈다. 보물 제1919호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건칠약사여래좌상은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일정한 두께를 얻은 후 조각해 만든 건칠불상이다.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지만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 결과 780~870년 즈음,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930년경으로 추정되는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건칠불상으로 평가받는다.
사진 순서대로 1 보물 제1919호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2 보물 제1666호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도명존자상. 3 보물 제1666호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무독귀왕상. 4 보물 제1666호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지장보살상.
청량사 기점 등산로로 주로 활용
이어 보물 제1666호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양식분석을 통해 이 삼존상의 제작연대를 1578년으로 추정한다. 현존하는 16세기 불상 중에 종교성과 조각적 완성도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량산 등산로는 모두 6개 코스로 조성돼 있으나 대개 청량사를 들러 정상에 오른다. ▲입석에서 청량사를 들러 선학정까지 내려오는 코스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청량사에서 하늘다리를 거쳐 정상 장인봉까지 갔다가 원점회귀로 돌아오는 코스는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청량사에서 김생굴까지는 30분가량 소요. ▲도립공원 입구에서 금강굴과 금강대를 거쳐 정상 장인봉을 갔다가 하늘다리~자란봉~연지봉~탁필봉~자소봉~경일봉~오마대~축융봉을 거쳐 다시 안내소로 돌아오는 코스는 청량산 환종주 코스로 총 9시간 소요된다. 그외 중간 중간 가로질러 순환하는 코스는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 이상 걸린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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