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칼럼] 백신전쟁 참패, 재난 디스토피아 불렀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2021. 4. 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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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접종률 3.5% 참담
백신정책 실패 비판하면 야당·언론 탓 되풀이
백신 들여와 국민 살리는게 문 정권의 마지막 사명

지금 이스라엘 국민들은 일상의 기쁨을 만끽한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풀리고 상업 시설과 공공 시설들도 정상 가동되고 있다. 전체 인구의 61.96%가 한 번 이상 백신을 접종해 집단 면역에 이르렀다(4월 20일 기준 아워월드인데이터). 접종 비율 3.57%에 불과한 한국과 극적으로 대조된다. 국가 총력전으로 백신 구매에 나선 리더십이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 반면 한국은 ‘재난 디스토피아(Dystopia)’다. 자영업자들의 파산이 속출하고 일상을 빼앗긴 국민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섰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을 세계에서 접종이 가장 뒤처진 ‘느림보’ 국가로 꼽았다.

4월 22일 오후 대구 수성구 육상진흥센터에 설치된 수성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75세 이상 어르신 대상 화이자 백신 접종이 처음 이뤄지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은 백신 전쟁에서 참패했다. 한국의 접종률은 캄보디아나 아제르바이잔보다 못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국 중 35위다. 우리는 치명적인 백신 디바이드(Vaccine Divide·접종 격차)의 나락에 빠져버렸다. 세계 최첨단 방역 체계를 갖추었건만 접종할 백신 자체가 태부족인 참사다. 문재인 정권 최악의 실정(失政)이 아닐 수 없다. 국민 생명이 걸린 사안을 오판한 정권이야말로 재난 디스토피아의 주범(主犯)이다.

기모란 교수를 청와대 방역기획관에 중용한 게 단적인 증거다. 기 기획관은 코로나 사태 내내 정부의 정책 실패를 옹호해 온 ‘스피커’였다. 그는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백신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거나 “백신을 먼저 접종한다고 집단 면역에 빠르게 도달한다고 볼 수 없다”는 궤변을 일삼았다. 학자로서 전문성과 정직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억지 주장이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 다수는 작년 4월부터 여러 종류 백신을 넉넉히 구입해야 한다고 호소해왔다. 전문가 공동체의 충언을 무시한 정권이 재앙을 불렀다.

다른 나라들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백신 선구매를 완료한 작년 7월 이후에도 문 정권은 백신 구매에 미온적이었다. 어용 지식인이었던 기모란 기획관의 억설(臆說)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기 기획관 임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문 대통령의 단언은 누가 백신 전쟁 참패에 궁극적 책임이 있는지 투명하게 보여준다. 명백한 정책 실패를 호도(糊塗)하는 문 정권의 의뭉스러운 행태는 재난 디스토피아를 한층 악화시킨다.

국가 중대사일수록 투명한 정보 공개로 정부가 신뢰를 얻어야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 정권은 불리한 정보는 통계를 조작·윤색해서라도 감추려 한다. 백신 정책 실패를 비판하면 오히려 야당과 언론을 탓한다. 정권이 퍼트리는 거짓말과 가짜 뉴스는 국가적 재앙으로 되돌아온다. 정권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국민이 믿지 않는 총체적 불신이 난무하게 된다. 문 대통령이 아스트라제네카 대신 더 안전한 백신으로 바꿔 접종받았다는 루머가 퍼진 것도 정권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근거도 없이 백신 구매 성공을 호언(豪言)해 온 문 대통령의 계속된 허언(虛言)이 재난 디스토피아를 부추긴다.

거짓과 불의가 창궐해 정의와 희망이 사라져 버린 곳이 재난 디스토피아다. ‘별(astro)’이 ‘없는(dis)’ 상황이 곧 재난(disaster)이다. 재난 디스토피아엔 우리들의 항로를 비춰줄 별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재난 디스토피아만 낳는 것은 아니다. 재난 앞에서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분출해 남을 돕고 나라를 살리는 ‘재난 유토피아’가 출현하기도 한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과 2007년 태안 앞바다 유조선 사고 때 ‘태안의 기적’이 재난 유토피아의 실제 사례다. 위대한 한국 시민들은 힘을 모아 재난을 돌파해 간다.

2020년 코로나가 대구를 강타했을 때 전국에서 달려간 의료인들의 헌신과 시민들의 솔선수범이 재난 유토피아를 탄생시켰다. 찬란한 ‘우정의 재난 공동체’였다. K방역도 국민의 희생과 의료인들의 헌신이 만든 성취다. 그 성과를 참칭한 문 정권은 ‘가만히 있으라’고 겁박하며 국민을 재난 디스토피아에 가두려 했다. 그러나 한국인은 권력에 굴종하지 않는다. 그게 4·7 재·보선의 메시지다. 한국인은 재난 디스토피아를 재난 유토피아로 바꾸는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거듭 증명해 왔다. 중국·러시아 백신 따위가 아니라 안전이 검증된 백신을 들여와 국민을 살리는 게 문 정권의 마지막 사명이다. ‘한미 백신 스와프’를 넘어 국가적 비상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경제 회복뿐 아니라 우리 목숨이 걸린 문제다.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뜬 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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