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2' 유신 철폐 이끈 '여공' 김경숙 사망 사건'..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여성 노동자의 삶'

김효정 입력 2021. 4. 23.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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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1979년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밤, 그들은 왜 그곳으로 갔을까?

22일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이하 '꼬꼬무2')에서는 '101호 작전, 흰 장갑의 습격'이라는 부제로 1979년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날 방송에는 배우 봉태규, 작사가 김이나, 모델 주우재가 이야기 친구로 등장해 장 트리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1979년 8월 어느 날 새벽, 한국 일보의 박태홍 기자는 철야 근무 중 돌아오지 않는 선배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고. 회사 차를 몰고 공덕동 로터리를 지나던 그때 길을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를 발견했다.

그리고 박 기자는 기자의 감으로 바리케이드 너머로 젊은 남자 20여 명이 떼로 다가오던 순간을 포착했다. 일제히 흰 장갑을 끼고 있던 이들은 박기자가 신분을 밝혔음에도 무차별 폭행했고, 곁에 있던 경찰도 이를 묵인했다.

그런데 이날 폭행을 당한 기자는 박 기자 한 명이 아니었다. 기자 10여 명이 집단 테러를 당했고 이들은 엉망이 된 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 후 조용해진 마포 거리. 그때 전 날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은 한 인테리어 업자는 마포구 도화동 175번지로 향했다. 동이 트기 전까지 작업을 끝내라는 요청을 받은 그는 현장에 도착해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닥 곳곳에는 핏자국이 가득했고 의뢰인이 오라던 건물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한쪽 구석에 잔뜩 쌓인 수백 개의 여자들의 신발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야기는 그날로부터 이틀 전인 1979년 8월 9일 오전 9시 정각으로 향했다. 해당 건물로 수백 명의 여성들이 갈 곳이 없다며 몰려왔고 이들의 손에는 모두 똑같이 목욕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여성들의 등장에 건물 경비는 난감해했지만 건물 내에서 이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라는 지시에 여성들은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여성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1979년 당시 제1 야당 신민당의 당사 건물이었으며 이들의 출입을 허락한 이는 당시 당대표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그렇게 신민당사로 모인 여성들은 총 187명.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갑작스러운 회사의 폐업 공고로 갈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들이 근무하던 곳은 바로 면목동에 위치한 YH무역. 직원 10명으로 시작해 5년 만에 직원이 4000명, 무려 400배 성장한 회사는 국내 최대 가발 업체로 70년대 수출 천만 달러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곳이었다.

이 회사의 가발을 만드는 업무를 맡았던 여공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온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소녀들이었다. 당시 이들은 당시 근로자 평균 월급인 36,000원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숙련된 여공의 경우에도 15,028원이라는 초라한 돈을 받으며 일해야 했다.

인건비가 싼 여공이 많을수록 회사의 수익은 올라갔고, 이에 회사는 여공들에게 새로운 노동자를 데리고 오면 인센티브로 휴가를 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공들에 대한 연장근로 수당도 없고 퇴직금도 없고 한 달에 겨우 두 번 정도 휴일을 주며 회사는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던 것. 마감일 직전에는 철야 근무가 일상이었고 고된 노동에 미싱 바늘에 손가락을 박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 사이 회사는 승승장구했고 대표인 장 회장은 철탑산업훈장까지 수상했고, 1972년에는 YH무역의 회장과 부사장의 종합소득세가 탑 10에 들 정도로 고수익을 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폐업을 공고하며 여공들을 몰아낸 것.

이에 여공들은 호소문을 통해 YH무역의 공금 횡령과 무리한 투자를 고발했다. 그러나 관계부처와 언론사를 다 돌아다니며 울며 매달려도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은 못 배우고 가난하고 나이 어린 여자로 당시 한국에서는 최하층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 여공들을 일컫는 말 소위 공순이. 작업장에서는 이 마저도 없이 번호로 불렸다. 공장 밖에서는 어린 남학생들까지 여공들을 조롱했다.

여공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로 23살의 여공이 투신자살을 하는 사건도 있었다. 당시 사망한 미경 씨는 자신의 팔에 유서를 남겼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라는 절규였다.

1977년 당시 우리나라에는 여공이 73만 명, 그중 70% 18-22세의 어린 여성이었고 이들은 최저 임금을 받으며 최장 시간 노동을 했다.

폐업을 선언한 YH무역은 여공들이 기거하던 기숙사를 폐쇄한다는 안내 방송을 했다. 이에 여공들은 "장 회장을 소환하고 생계 대책을 세워달라"라고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곧 경찰이 들이닥쳐 끌어낼 것이다, 회사가 깡패를 동원할 것이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는 뜬소문이 아니었다.

기숙사는 여공들을 내쫓기 위해 식당도 폐쇄하고 단전, 단수를 하며 이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늦은 밤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경찰들이 기숙사를 점령했고, 경찰은 기숙사 철문을 억지로 뜯어내며 여공들을 위협했다.

이에 여공들은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사로 가서 억울함을 알리자고 뜻을 모았고, 그곳에 가면 경찰들도 자신들을 진압하지 못할 것이며 기자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4인 1조로 탈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만약 들킬 시 둘러댈 생각으로 한 손에는 목욕 가방을 들었다.

제1조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하고 이들은 9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187명이라는 인원이 당사 앞에서 몰려든다면 이목을 끌 테고 경찰에게 들킬 수 있으니 각자 숨어있다가 9시 정시에 당사 앞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었다.

당시 24살이었던 권순갑 씨는 "9시 전 그 앞에 왔다. 골목에 몸을 숨기고 시계만 쳐다보는데 이상하게 조용하더라. 3분 전 고개를 내밀어도 경찰만 보일 뿐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아무도 안 오면 어쩌지, 다들 포기했나, 혼자라도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들을 했다"라고 했다. 그리고 9시 정각, 신민당사 앞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어디서 벌떼같이 여공 187명 전원이 뛰어나왔던 것. 이에 권순갑 씨는 "다 한꺼번에 나왔어요. 그리고 조합원들이 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라며 당시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여공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기적에 감격했고 그제야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신민당사 강당에 모여 서로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권순갑 씨는 "목숨 걸고 했으니까, 이거 아니면 우리는 해산이다 했으니까 정말 간절했다"라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그리고 당시 여공들의 호소를 들은 김영삼 대표는 노동청장 장관 다 부를 테니 대화로 풀어보자라고 제안했고, 이에 여공들은 목욕 가방에 숨겨뒀던 머리띠와 플래카드를 꺼내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그날 석간신문에 실렸고 여공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청와대에서 대책 회의가 열리고 이 회의에는 대통령 비서실과 중앙정보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중정 관계자는 "장관이나 노동청장이 사과하는 식으로 해결하면 전례가 된다. 오늘 내로 경찰 투입해서 해산시켜야 한다"라고 강경 진압 방침을 내세웠고 이는 그대로 실행됐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긴급 작전 101호 작전. 101은 여공 한 명을 양쪽에서 붙들고 연행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 작전에는 경찰 1200명이 투입되었고 그중에는 흰 장갑을 낀 사복 요원들도 속해있었다. 그리고 흰 장갑들은 이 작전을 주도했다.

그런데 작전 실행 당일 저녁, 경찰은 안전을 지적하며 중정에 작전을 미룰 것을 건의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할 수 있게 시간을 조금 달라고 했으나 중정은 이를 묵살했고 그대로 진행하라 일렀다.

그리고 밤 밤 9시 신민당사, 여공들은 창 밖으로 골목에 진을 치기 시작한 흰 장갑들을 목격했다. 여공들은 최후를 예감하고 고향 방향으로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고 애국가를 부르며 자신들만의 종결 대회를 시작했다. 나라가 자신들을 제압하기 위해 폭력을 준비할 때 여공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끝까지 조국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

조합원들이 울분에 복받쳐서 어찌할 줄을 모르던 그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선 적 없던 스물한 살의 김경숙 씨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주도하에 여공들은 끝까지 투쟁의 구호를 외쳤다.

8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떡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경숙 씨는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1년 늦게 들어가고 결국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소망은 자신의 성공이나 꿈의 실현이 아닌 3살 어린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었다.

식모 생활로 돈을 처음 벌기 시작했던 경숙 씨는 도둑으로 몰려 쫓겨났고, 15살에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 시다(견습공)로 들어갔다. 당시 경숙 씨의 하루 노동 시간은 16시간. 그 후 시다로 하청 공장을 전전했고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이력서를 쓰고 입사한 곳이 YH무역이었다.

처음 사원증도 받고 행복했던 경숙 씨는 힘들어도 돈을 모아 가족들에게 부쳤고, 하루 2시간 야간 학교도 다녔고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했다. 그러나 YH무역의 고된 노동으로 학교에 갈 수 있는 날은 얼마 없었다. 야근은 기본 하루 건너 하루 철야 작업이 일상이던 경숙 씨는 일기에 "이렇게 사느니 자살이라도 해버리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고향이 그 길을 막았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동생의 대한 진학을 위해 버티며 명절에도 차비가 들어 고향집에 가지 않고 견디었던 것.

경숙 씨의 외침에 여공들을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고, 이를 보던 신민당 국회의원들과 기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에 신민당 당직자는 안타까운 여공들을 보며 경찰에 철수를 요청했다. 그러자 경찰은 "진입하지 않을 거다. 철수시키겠다"라고 했고, 실제로 경찰차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밤 12시 강당 문을 집기로 막고 바닥에 팔짱을 낀 채 누운 여공들. 그리고 당사 2층에는 국회의원 당직자와 기자들이 비상 대기했다.

당시 2층에 있었던 이성춘 기자는 1979년 8월 11일 그 밤에 대해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야 쳐들어온다 하고 여성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라고 했다. 이에 기자들과 국회의원들은 밖으로 나왔고, 김영삼 총재도 그곳에 있었다.

여공들이 있는 강당에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 이들은 강당으로 향하려 했고, 그때 갑자기 벽을 뚫고 흰 장갑을 낀 주먹들이 등장했다. 곤봉을 하나씩 쥐고 두들기며 소리를 지르던 이들은 대략 5,60명. 그들은 국회의원과 기자들에게 "안에 있는 너희들 움직이면 죽여"라며 위협했다. 그리고 김영삼 총재를 선두에 서게 하고 다른 이들 모두 그 뒤를 저항 말고 따르라고 명했다. 저항할 경우 응징하겠다는 경고와 함께.

이에 일부 당원들은 무슨 짓이냐며 따지며 저항했다. 그러자 흰 장갑을 낀 이가 저항한 이의 머리를 곤봉으로 내리쳤고 피가 솟구쳤다. 경찰 간부는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됐는지 봤냐며 협박을 하며 총재, 국회의원, 기자 순으로 나오라고 했다. 이에 국회의원들과 기자들은 저항했고, 흰 장갑들의 무차별 폭행이 시작됐다.

결국 김영삼 총재는 체념하고 국회의원들은 곤죽이 되어 전쟁 포로처럼 끌려 나왔다. 이는 야당 당사 내에서 국가 폭력 사건이 일어난 초유의 사태였다.

여공들이 있던 강당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사방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렸고 여공들을 떨어지지 않으려 서로 팔짱을 끼고 버텼지만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비참한 모습으로 경찰들에 질질 끌려 나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경찰들은 진압봉을 거꾸로 잡고 폭행하기도 했다.

이 참혹한 모습에 당시 출동했던 전경들은 이를 말리기까지 했다. 경찰이 저렇게까지 과격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했다는 것. 그리고 이후 한 전경은 "사복들처럼 과격하진 않아도 전경 기동대원도 여공들의 머리채를 잡거나 젖가슴을 부여잡았다. 대학생들의 시위 진압은 국민들에게 파급되는 영향 때문에 안전을 강조했다. 그러나 여공들에게는 닥치는 대로 진압해도 좋다는 분위기였다. 이는 국민들에게 파급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는 고백을 남겨 충격을 안겼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대목에 봉태규는 "이걸 참을 수 없다. 사람을 이렇게 단계로 놓고 취급하는 것"이라며 분노했고, 당시 여공들의 진압 상황을 담은 참혹한 현장 사진을 보고 괴로워했다.

여공 1명당 경찰 4명이 붙어 여공들을 밖으로 끌어냈고, 이때 누군가가 건물 밖으로 추락했다. 이는 바로 경숙 씨였다. 그리고 경숙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미 사망한 후였다.

이에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경숙이가 갔구나 이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누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라며 괴로워했다.

그렇게 사망한 김경숙 씨. 그런데 이후 일어난 일은 너무나 이상했다. 경숙 씨가 사망한 지 9시간 뒤, 오전 11시 광주. 그의 남동생 준곤 씨는 누나가 죽었다는 형사의 이야기에 어머니와 함께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급하다던 경찰은 이들에게 계속 기다리라 했고 저녁 8시가 지나서야 출발했다.

그리고 이들이 도착한 곳은 수원의 한 여관. 아직 볼 데가 아니라며 경숙 씨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 설명도 없던 형사는 다음날 아침 서울로 출발했다. 그러나 또다시 준곤 씨와 어머니를 여관에 데려다줬고 이들을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했다.

광주에서 출발한 지 이틀 만에 병원에 도착한 준곤 씨와 어머니. 그런데 이들이 도착했을 때 경숙 씨의 부검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고 참관이 필요한 부검을 보호자들 없이 진행했던 것. 그리고 이전까지 시간을 끌던 형사는 빨리 화장을 해야 한다며 장례식 없이 곧바로 화장터로 향했고 준곤 씨에게 위로금이라며 돈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경숙 씨를 화장한 그 날 경찰은 경숙 씨의 죽음에 관해 "김경숙은 평소 예민하고 과격해서 흥분을 자주 했다. 투신하자고 여공들을 선동하고 경찰 도착 30분 전 투신했다"라며 경찰의 진압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조합 간부들은 수사 대상으로 조사를 받아야 했고, 나머지 여공들은 강제 귀향해야 했다. 그리고 경숙 씨의 남동생 준곤 씨는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나이만 열아홉이었지 모르던 게 많았다. 장례식도 안 하고 화장하자고 해서 화장을 하고. 무지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죄송스럽다"라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냈다.

또한 준곤 씨는 "누나가 매달 돈을 보내왔다. 그 돈으로 학교를 다녔다. 누나 도움을 받는데 나중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한다"라며 결국 인터뷰 자리를 이탈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고 이를 보는 이들이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경숙 씨의 죽음. 그런데 이 죽음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YH사건 후 김영삼 총재는 박정희 정권과의 정면 대결을 선언했다. 그는 "나는 박정희 씨의 하야를 강력히 요구한다"라며 "암흑적인 정치, 살인 정치를 감행한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79년은 유신 정권 말기로 대통령의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김영삼 총재의 발언에 당시 여당인 공화당에서는 김영삼 제명 동의안을 제출했고, 이는 10월 4일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그리고 당시 김영삼은 "아무리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새벽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전했고 이는 예언처럼 실현되었다.

김영삼의 의원 제명 이후 부산의 한 대학생이 "YH사건의 진실을 밝혀라. 유신 철폐 독재 타도"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주었고 부산 시내로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시민들까지 이 시위에 합세했고 그날 밤 자정 부산에는 비상계엄이 선포된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이 시위는 마산으로 번졌다. 이는 바로 부마항쟁. YH무역의 여공 경숙 씨의 죽음이 부마항쟁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당시 중정부장이었던 김재규는 부산으로 내려와 심각한 상황을 직면했고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는 "체제에 대한 저항과 정책 불신이 겹친 민란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라고 대통령에게 호소했으나 박정희는 그의 조언을 무시한 채 발포 시민들을 향한 발포 명령을 내렸다. 특히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 죽어도 까딱없었는데 100만 명 200만 명 죽인다고 문제가 되겠냐"라는 발언까지 했다. 그리고 이는 10.26으로 유신 정권의 종말로 이어졌다. YH사건은 유신 정권을 무너뜨린 도화선이 되었던 것.

2008년 과거사 위원회에서는 김경숙 사망 사건 재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부검 기록을 통해 진압 폭력을 피하는 과정에서 생긴 추락사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경숙 씨의 동생 준곤 씨는 누나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향집에 왔을 때 남긴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1979년 4월에 집에 왔을 때 그런 말을 했다. 신문을 볼 때 큰 타이틀의 기사를 보지 말고 저 밑에 있는 조그만 뉴스를 보라고 하더라. 밑에 있는 것이 진짜 큰 기사일 수 있는데 작게 보도할 수 있다, 조그마한 보도를 보면 숨어있는 진짜가 있다고 했다"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주우재는 "큰 글씨보다 작은 글씨를 집중해서 보라는 말은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는 작게 이야기해도 다 들리지만 힘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온갖 방법으로 해도 닿지 않으니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말인 것 같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또한 봉태규는 "부마항쟁이 유신 정권의 종말로 이어지고 그 발단이 이거라는 걸 전혀 몰랐다"라며 출연하길 잘했다고 했다. 그는 "그 안에 여성 노동자들이 이 일을 벌이기까지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상황이고 삶이 어땠는지 오늘이 아니면 몰랐을 텐데 알아야 할 진짜 사실을 알아서 다행이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장항준은 폭압과 야만의 시대, 그 잡초 사이에서 핀 들꽃이 바위를 갈라낸 사건이라 말했다.

YH무역 여공이었던 두 사람은 "우리는 공순이라는 말이 기분 나빴다. 그런데 지금은 안 나쁘다. 공순이가 중요하니까"라며 "우리가 그랬던 것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되돌아가도 또 그렇게 살겠다 싶다"라며 웃었다. 그리고 김경숙 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누구도 그런 죽음을 당할 수 있었다. 내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게 경숙이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때의 여성 노동자의 삶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얼마나 인간답게 살지 못했으면 그랬을까 그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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