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미국은 왜 백신 개발 빨랐을까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2021. 4.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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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다시 4월, 이제는 백신전쟁이다. 이 백신전쟁에서 미국은 분명 우위를 점하고 있다. 현재까지 16세 이상 성인의 절반 이상이 1차 백신을 맞았고 일일 300만도스의 현재 접종속도대로라면 7월 말까지 성인의 90% 정도가 2차 백신 접종까지 마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3명 중 1명으로 추정되는 백신 거부자들이 접종에 적극 호응한다는 걸 전제로 한 추정이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미국의 빠른 백신 접종과 속도에 주목하고 있는데,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이 어떻게 해서 백신 개발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인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미국은 왜 더 빨랐던 걸까?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여러 원인과 이유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우선 절박함을 꼽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세계 최대 감염자 및 사망자 수를 기록해오고 있다. 그동안 3200만명 이상이 감염됐고 58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한국과 비교하면 인구 대비 50배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들의 예상치 못한 허망한 죽음은 평균 9명의 가족 및 친구, 지인들에게 깊은 슬픔과 트라우마를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 전체가 깊은 ‘슬픔의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빠른 백신 개발과 접종은 이 집단적 슬픔을 희망으로 역전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기가 절실하다고 백신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초과학 인프라가 필요한데, 케임브리지·보스턴 바이오 집적단지가 대표적인 예다. 이제는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화이자와 모더나는 하버드와 MIT가 있는 케임브리지란 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두 대학 주변에는 430개가 넘는 생명공학 및 제약회사들이 몰려 있다. 이렇듯 바이오텍 기업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계기는 1970년대 말 케임브리지 시의회가 유전자(DNA) 실험을 허용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인접한 보스턴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임상연구 병원들이 밀집해 있다. 일례로 미국국립의료원은 매년 45조원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하는데, 보스턴 시내의 주요 5개 병원은 지난 20여년 동안 가장 많은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전 세계 신약 특허의 상당부분이 이 바이오 집적단지에서 나온다고 하고 연간 부가가치 창출 규모가 2조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수한 인재들이 대학과 병원, 기업의 긴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시장자율을 강조하는 미국에서도 첨단 혁신 분야는 시장 스스로에 의해 출현하고 성장하지 않는다. 정부의 측면 지원이 필수다. 이 케임브리지·보스턴 바이오 집적단지도 세금감면 및 실험실 부지 제공 등 주정부의 전략과 지원하에 더욱 발전했다.

매사추세츠는 인구 700만명도 되지 않는 작은 주로서 미래 먹거리를 위해 서부의 실리콘밸리 등을 벤치마킹하면서 주에 있는 120여개의 크고 작은 대학들의 우수 인력을 활용해 바이오 분야를 특화, 육성해온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미국 연방정부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는데, 모더나와 화이자에 각각 25억달러(약 2조8000억원)와 19억달러(약 2조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선지급해서 연구·개발을 도왔다.

그러나 이렇듯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내부의 연구문화다. 아마도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은 이 집적단지를 만들어온 주체들이 정부주도하에 위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창의적 아이디어나 시각일수록 기존 통념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도 한다. 따라서 혁신을 위해서는 사람이나 조직 중심의 위계가 아니라 최대한 아이디어들이 경쟁하며 기존 통념이나 이론을 무시할 수 있는 발칙함을 허용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혁신적 연구는 이미 어딘가에 혹은 누군가에 의해 정답이 주어져 있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원래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찾아가도록 훈련시키는 한국식 교육의 최대 취약점이기도 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경제규모 대비 연구·개발비를 이스라엘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고, 인구 1000명당 연구원 수도 세계에서 가장 많다. 대기업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전체 투자액 중 민간의 비중도 77%로 미국의 64%보다도 높다. 하지만 당장 돈이 되는 응용기술 개발에 집중하다 보니 기초과학에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번 백신 파동이 정부나 사회 모두 더 긴 호흡과 안목으로 기초과학 인프라 육성에 지혜를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기업이나 사회나 길게 봐선 그게 더 남는 장사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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