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방송사 비정규직·프리랜서의 '잔혹사' 벗어나기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2021. 4.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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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방송작가는 노동자인가, 프리랜서인가. 지난 3월19일 국내 최초로 방송작가는 ‘근로자’라는 판정 결과가 나왔다. MBC 보도국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 구성작가의 부당해고 사건을 둘러싼 중앙노동위원회의 구제 재심신청 사건 판정이다. 보수적 법리 해석과 인식의 전환을 준 사례로, 상상하기 힘든 견고한 벽이 깨진 순간이다. 당사자들과 동료들은 환호성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작 전후 모든 과정이 PD나 스태프 간 유기적인 협업구조를 통해 업무가 이루어진다. 생방송 프로그램을 맡을 경우 정해진 일정과 장소에 따라 지속된다. 작업과정에서 업무 재량권도, 개인 방송도 할 수 없는 자가 프리랜서로 불릴 수 있을까. 매일매일 생방송 시각에 맞추어 출퇴근한 자가 노동자가 아니라면, 누가 노동자인가. 요즘 같은 시기 정규직조차도 한 직장에서 10년 일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정규직 채용 제안을 했어야 맞지 않을까.

최근 몇 년 동안 국회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방송사 고용 및 노동환경을 지적한 바 있다. 표준계약 미체결, 여성 아나운서의 차별적 채용 관행, 하청 및 자회사 직원 불법파견,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제작현장의 과로사 등 산재사망사고까지. 사회적 이슈가 적지 않았다. 주 1회 이상 밤샘작업 35.1%, 약정 기간 받지 못한 임금체불 52.8%, 휴가·병가 사용 불가 59.3%, 자유로운 임신 결정 불가 70.8%라는 통계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 정도면 노동인권의 사각지대가 아니라 무법지대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방송사 비정규직 프리랜서가 20~30대 여성이라는 점도 짚어볼 대목이다.

방송사에는 약 100개에 가까운 직무가 존재한다. 그러나 정규직은 고작 5분의 1에 불과하고, 대부분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자회사 직원들이 일을 맡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 리포터, 성우, 음악, 분장코디, 수어 등 수많은 직업들이 거의 그렇다. MBC(28.6%)와 YTN(26.2%)은 그중 비정규직 활용이 높은 곳이다. 문제는 지난 10년 사이 방송 전반의 고용 균열과 파편화가 확대되고 있다. 계약직이나 파견용역보다 개인사업자 형태인 프리랜서 고용이 두 배 이상(40.9%) 증가했다.

사실 2001년 마산 MBC 구성작가와 리포터 몇 분이 ‘우리도 노동자다’라며, 여성노조에 가입한 이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근로자성을 인정받기까지 20년이 걸렸다. 노동위원회부터 법원으로의 절차까지 밟아야 하는 어려움을 개인이 모두 감내해야 했다. 영상취재요원(VJ), 제작 프로듀서(PD)의 대법 판결(2011)부터 아나운서 하급심 판결(2019)까지 근로자성 인정 개별 판례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소송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일터를 떠났다. 법적 다툼이 그들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창의성이나 자율성을 이유로 프리랜서 고용을 합리화한다. 그런 이유라면 PD, 기자, 대학교수, 공무원도 프리랜서 활용이 더 효율적이다. 동의하기 어렵다면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방송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방송제작 환경을 만들기 위한 대책을 더는 미룰 수 없다. 영국 BBC 작가 직무기술서에는 “모든 BBC 안전규칙, 절차 및 지침을 준수”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BBC와 어떠한 형태로든 3년 이상 근무한 인력에 대해서는 정규직 계약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참고하길 바란다.

현장의 상황을 몰랐다거나 실태조사부터 하겠다는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의 이야기에 더 화가 난다. 이 정도면 국가인권위 직권조사나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해야 할 상황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100분토론>이나 <심야토론> 혹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사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문제를 다룬 적은 없는 듯하다. 같이 일하는 동료로 대우하진 않더라도 차별과 인권침해에 침묵하는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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