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바이든에게 "트럼프 계승하라"며 백신 지원 기대할 수 있겠나

조선일보 2021. 4. 23.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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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과 백신 접종 상황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취임 후 코로나19 백신 2억 도스(1회 접종분)를 미국 국민에게 접종했다고 밝혔다./AP 연합뉴스

바이든 미 대통령은 21일 2억회분 코로나 백신 접종을 달성한 것을 자축하면서 “해외 국가들에 대한 백신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해 11월 집단면역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진 우리로서는 미 정부의 해외 백신 지원 방침에 전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이 7월 4일 독립기념일까지 전 국민 접종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을 달성하고 백신 여유분이 생겼을 때 우리가 우선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서 바이든 정부와 백신 파트너십을 체결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의 백신 지원 우선순위에 올라 있지 않다. 미 국무부는 “캐나다, 멕시코를 비롯해 쿼드(Quad) 국가들과 백신 수급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인접 국가인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對中) 견제 협력체인 쿼드 참가국인 일본, 인도, 호주를 우선 지원 대상으로 꼽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백신을 우선 지원받기 위해서는 한국이 가장 신뢰할 수 있고,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동맹국임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에 발을 맞추면서 협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급선무다.

문재인 정부는 이와 정반대 메시지를 바이든 정부를 향해 발신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가 거둔 성과 위에서 미·북 협상을 더욱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싱가포르 미·북 합의를 폐기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 어느 정부도 직전 정권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는다. 더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 승리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고, 의회의 표결 승인 절차를 저지하는 폭력 사태까지 조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런 트럼프의 정책을 계승하라는 한국 대통령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겠는가.

문 대통령이 중국 보아오 포럼 개막식 영상 메시지에 이어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도 미·중 협력을 촉구한 것도 동맹국들과 손잡고 중국을 압박한다는 바이든 정부의 핵심 대외 정책 방향과 엇박자를 내는 것이다. 이처럼 바이든 정부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에는 하나도 맞장구를 쳐주지 않으면서 우리 당국자들은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 진짜 친구”라며 미국이 한국에 백신 지원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세계가 미국에 백신 지원을 요청하며 매달리는 상황에서 미국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한국 정부에 우선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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