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염수 방류' 지지한 미국..바이든은 '이 물'을 마실 수 있을까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15)]

이종필 교수 2021. 4.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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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파문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아무리 적은 방사선량이라도 인체 유입 땐 암·유전자 변형 가능성
ALPS 통해 ‘핵종 정화’ 자신…아소 부총리 “물 마셔도…” 궤변
못 걸러낸 ‘삼중수소’ 농도, 미국 음용수 기준 두 배 가까이 넘어
‘후쿠시마 핵연료’ 빨라야 2031년 제거…오염수 120만톤 넘을 수도
일, 향후 주변국 겪는 고통 외면…발표만으로도 이미 피해는 시작

과학의 역사에서 19세기는 풍요와 완성의 세기였다. 19세기 말에는 특히 물리학자들을 중심으로 과학적 완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근본원리는 넓은 의미의 뉴턴역학으로 다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남은 일은 보다 높은 정밀도로 자연을 기술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었다.

이같은 인식에 파열을 낸 것이 1890년대 중반 이뤄진 X선과 방사능(放射能·radioactivity)의 발견이었다. X선은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다. 과학자 집안 출신의 앙리 베크렐은 형광물질을 이용해 X선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방사능을 발견(1896년)했다.

방사능이란 아주 간단히 말해 입자를 방출하는 능력 또는 성질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들은 양의 전기를 띠는 원자핵과 음의 전기를 띠는 전자로 구성돼 있다. 원자핵 속에는 양의 전기의 근원인 양성자와 전기가 없는 중성자가 있다. 일부 원소들은 원자핵 상태가 불안정해 보다 안정된 상태로 바뀌는 변화를 겪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입자들을 방출한다. 바로 이런 성질이 방사능이며, 방사능을 가진 원인물질을 방사성 물질이라 부른다. 또한 방사성 물질이 방출하는 입자의 흐름을 방사선(放射線·radiation)이라 한다. 그러니까 방사능을 가진 방사성 물질이 방사선을 방출한다.

인체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이 바로 방사선이다. 과학자들이 방사선의 정체를 잘 몰랐을 때에는 대표적인 세 가지 방사선에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의 이름을 붙였다. 동양 과학자가 방사선을 처음 연구했다면 갑, 을, 병의 이름을 붙였을지도 모르겠다. 알파선은 양의 전기를, 베타선은 음의 전기를 가지며 감마선은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또한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의 순서로 투과력이 높고 질량이 가볍다. 알파선은 종이 한 장도 투과하기 어렵다. 베타선은 피부 속으로 침투할 수도 있지만 얇은 금속판으로 막을 수 있다. 감마선은 투과력이 아주 좋아 두꺼운 콘크리트나 납으로 막아야 한다. 훗날 이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알파선은 헬륨 원자핵이고 베타선은 전자이며 감마선은 X선보다 파장이 더 짧은 전자기파이다. 알파선은 투과력이 형편없으니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만약 알파선을 방출하는 방사성 물질이 체내에 들어가면 양의 전기를 띤 무거운 입자가 신체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사능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마리 퀴리(마니아 스크워도프스카)이다. 베크렐은 방사능이 형광물질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포함된 우라늄 때문임을 알았다. 마리는 우라늄광에서 우라늄보다 훨씬 더 높은 방사능을 확인하고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원소가 높은 방사능의 원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발견한 새 원소가 폴로늄과 라듐이다. 폴로늄은 마리의 조국이었던 폴란드에서 따온 이름이다.

‘방사능’이라는 말도 마리의 작명이다. 방사능 현상을 발견하고 연구한 공로로 마리와 피에르는 베크렐과 함께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후 1911년에는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공로로 마리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서로 다른 두 개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아직까지 마리가 유일하다. 그의 딸 이렌 졸리오퀴리는 사위인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와 함께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합성한 공로로 193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베크렐과 퀴리의 이름은 방사능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도 쓰인다. 1베크렐(㏃)은 1초 동안 하나의 원자핵이 붕괴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이전에는 퀴리(Ci)라는 단위를 썼다. 1퀴리는 370억베크렐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베크렐이 방사성 물질, 즉 ‘소스’의 세기를 나타내는 양이라면 시버트(㏜)는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나타낸다. 베크렐값이 같더라도 알파선과 감마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다를 것이므로 별도 단위가 필요하다. 보통은 1㏜의 1000분의 1인 밀리시버트(m㏜)를 많이 쓴다.

방사선은 인간 활동과 상관없이 원래 우리 주변의 자연환경에도 존재한다. 자연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보통 연간 2~3m㏜ 정도이다. 반면 X선 촬영이나 암 치료 등의 과정에서 나오는 인공적인 방사선도 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에서 제시한 인공방사선의 피폭 허용치는 연간 1m㏜이다.

방사선은 인체에서 암을 유발하거나 유전자 변형을 일으킬 수도 있다. 100m㏜ 이상의 방사선 피폭선량에 대해서는 암 발생 확률이 선형적으로 비례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그 이하 피폭선량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논란도 있으나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해 이 영역에서도 비례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즉 아무리 적은 선량이라도 암 발생 확률이 그만큼 증가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사성 물질은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물질의 양이 줄어든다. 그 정도는 시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데 원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걸리는 시간, 즉 반감기라는 개념으로 표시한다. 반감기가 한 번 지나면 원래 양의 2분의 1이 줄고 두 번 지나면 4분의 1로 줄어든다. 반감기가 10번 지나면 원래 양의 약 1000분의 1만 남는다.

한때 침대에서 검출돼 논란이 있었던 라돈222의 반감기는 3.8일이다. 갑상샘암의 주원인인 방사성 아이오딘(요오드), 즉 아이오딘131의 반감기는 8일이다. 스트론튬90은 29년, 세슘137은 30년, 플루토늄239는 무려 2만4000년에 달한다. 요즘 가장 유명한 삼중수소의 반감기는 약 12.3년이다. 삼중수소의 원자핵은 보통의 수소원자핵인 양성자 하나에 중성자가 두 개 더 붙어 있는 구조이다.

라돈과 플루토늄은 알파선을 방출한다. 아이오딘과 세슘은 베타선과 감마선을, 스트론튬과 삼중수소는 베타선을 낸다. 핵사고가 날 때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스트론튬과 세슘은 주기율표에서 각각 칼슘 및 포타슘(칼륨)과 같은 족에 있어 이들과 화학적 성질이 비슷하다. 이들 원소는 체내에 들어온다면 뼈와 근육에 축적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3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누출된 핵연료에 오염된 물을 바다에 배출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저장탱크에 보관한 오염수 총량은 120만t이 넘는다. 사진은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안의 오염수 탱크. 교도연합뉴스

최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로 누출된 핵연료에 의해 오염된 물(냉각수와 지하수 등)을 바다에 버리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물은 핵발전소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인 핵연료와 직접 접촉했기 때문에 고준위의 방사성 오염수로 수백종의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핵발전소를 가동할 때 사용하는 냉각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하루 최대 180t 정도 생성되며 지금까지 저장탱크에 담아 보관한 오염수의 총량은 120만t이 넘는다.

일본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방사성 물질 62종을 제거했고, 여기서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ℓ당 1만㏃)의 7분의 1 수준(ℓ당 약 1400㏃)으로 희석해 30년 동안 방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이 물을 마셔도 별일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음용수 기준은 ℓ당 740㏃, 유럽은 겨우 100㏃에 불과하다. 미국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지지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마 이 물을 절대 마시지 않을 것 같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삼중수소 논란이 일본의 성동격서라는 우려이다. 모든 관심이 삼중수소로 몰려 있는 와중에 다른 방사성 핵종들이 과연 모두 안전한 수준으로 제거될 수 있는지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여전히 전체 오염수의 70% 정도는 기준치가 넘는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작년 12월 도쿄전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스트론튬, 세슘, 아이오딘 등은 여전히 기준치를 상회하고 있어 ALPS의 유효성에 의문이 남는다. 게다가 62종에 포함되지 않은 탄소14 등도 상당량 검출되었다. ALPS가 62종의 방사성 물질을 걸러낸다는 말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방사성 핵종은 오염수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는 그중 가장 만만한 삼중수소만 집어서 ‘물타기’를 하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120만여t이 오염수의 전부일까라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제시한 일정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내 핵연료를 모두 제거하는 시점은 빨라야 2031년이다. 앞으로 최소 10년 동안 계속해서 오염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에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다.

그 결과로 바다와 수산물이 얼마나 오염되느냐,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미치느냐는 별도로 엄밀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일본 주장대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환경단체나 전문가들 우려대로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확실한 피해가 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 때문에 우리가 수시로 해수와 수산물의 안전성을 일일이 점검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고,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하며 온 국민이 불안감에 시달리는 등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지 않고 지상에서 처리하면 우리가 전혀 치르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다. 이런 칼럼을 귀한 지면에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염수 방류 발표만으로도 이미 그 피해는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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