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각성한 전세계 생명과학계..모든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나선다

김민수 기자 2021. 4. 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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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코로나 액설러레이티드 R&D'에 참여하고 있는 독일 하노버대 연구자들이 바이러스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 하노버대 제공.

2002년 11월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은 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통의 바이러스다. 당시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사스 치료제 개발에 착수해 사스 바이러스가 인체 내에서 자신을 복제하는 데 필수적인 단백질(효소)을 억제하는 분자를 설계했다. 그러나 2004년 마지막 사스 환자가 보고된 후 화이자는 미래 시장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연구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사스 치료제 연구를 주도했던 화이자 연구팀은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의 유전체 분석 결과 사스가 자신을 복제할 때 필요한 효소와 코로나19 효소의 구조가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급하게 사스 유행 당시 설계했던 효소 억제 분자를 미세 조정하고 지난해 9월 임상 준비에 착수했지만 이미 전세계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100만명이 발생한 시점이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발간된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전세계 유수의 생명과학 및 제약바이오기업들과 바이러스 감염병 분야 과학자들이 코로나19를 비롯해 미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또다른 코로나바이러스, 매년 전세계에서 30~50만명이 사망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에 맞서는 항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연합체를 속속 구성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전조격인 사스(2002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2012년)의 경고에도 소극적 대처로 전세계 300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데 대한 반성이다. 최근에는 이들 연합체에 대한 투자도 가시화하고 있다. 

로버트 웹스터 미국 세인트주드아동연구병원 명예교수는 “과학자들은 사스 당시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제이 브래드너 노바티스 바이오메디컬연구소장은 “메르스 때 제약사들이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 미국·유럽·일본 등 선도적 제약기업 손잡아...투자도 가시화

글로벌 제약기업과 생명과학 기업, 과학자들은 미래에 위협이 될 바이러스성 감염병 치료제 개발을 위해 기꺼이 손을 잡고 있다. 바이러스와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는 치료제 개발이 목표다. 

코비드R&D얼라이언스에 참가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기업들과 투자캐피털 현황. 코비드R&D얼라이언스 제공.

지난해 12월 초 20개 이상의 생명과학 기업과 벤처캐피털 연합체로 꾸려진 ‘코비드(COVID) 연구개발(R&D) 얼라이언스’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 암젠이 주도하고 아스트라제네카, 길리어드사이언스, 존슨앤드존슨, 노바티스, 화이자, 로슈, 사노피, 다케다, 애브비 등 세계적인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과 일부 벤처 캐피털로 구성됐다. 

엘리엇 레비 암젠 R&D 전략 및 운영책임자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약 25개의 항바이러스 치료제 후보를 대상으로 초기 임상을 진행하고 향후 필요한 임상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체 구성을 마무리한 ‘코비드 연구개발 얼라이언스’는 최근 약 10억달러(약 1조1180억원)를 투자자, 비영리 재단, 정부 등으로부터 끌어모을 계획을 제시했다.

유럽에서는 ‘유럽 코로나 액설러레이티드 R&D’가 지난 4월 1일 공식 출범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산하기관연구총국이 추진하는 '호라이즌(Horizon) 202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유럽 전역 36개의 대학·연구기관·생명과학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미 약 7580만유로(약 100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코비드 R&D 얼라이언스를 이끌고 있는 레비 암젠 운영책임자는 “현재 정부와 생명과학계의 투자는 미래에 닥쳐올 바이러스 감염병 위협에 맞설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며 “비영리 단체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 모든 바이러스성 감염병에 맞서는 인류의 반격

한 제약기업 연구원들이 바이러스성 감염병에 맞서기 위한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코비드R&D얼라이언스 제공.

현재 코로나19 치료제로는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로 개발된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가 있다. 미국 바이오제약사 리제네론과 일라이릴리, 국내 셀트리온이 개발한 항체치료제도 있다. 이들 치료제들은 코로나19 환자의 중증 진행을 막는 효과 등이 입증됐지만 완벽한 치료제로 보기는 어렵다. 렘데시비르의 경우 제조가 쉽지 않고 비싼 데다 병원에서 정맥 주사로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감염병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약사들과 과학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와 인플루엔자바이러스를 비롯해 모기가 매개체인 뎅기열·지카바이러스와 같은 플라비바이러스, 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같은 레트로바이러스 등 미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바이러스에 맞서는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세웠다.

접근 전략은 바이러스가 인간 숙주 세포와 결합하는 데 활용하는 보편적인 효소나 메커니즘을 찾아내는 게 핵심이다. 효소를 표적으로 삼아 이 표적과 결합할 수 있는 활성 분자를 설계하거나 효소를 차단하는 약물을 개발해 더 이상 스스로를 복제하지 못하게 만드는 식이다.

한국계 항바이러스 과학자로 유명한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와 조슈아 잭맨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가 제시한 전략도 유망하다. 이들은 대다수 바이러스 표면에서 발견되는 지질에 구멍을 내는 화합물 개발을 제시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직접 겨냥하는 게 아니라 숙주인 인간 세포를 바꾸는 치료제를 통해 바이러스가 아예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도 거론된다.

냇 무어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바이러스학 교수는 “앞으로 2020년과 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바이러스 감염병과 싸우기 위한 무기고가 필요하다”며 “전세계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무기고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수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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