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프랑스 청년들

최예진 2021. 4. 2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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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장 취득을 위해 제로부터 다시 시작

진로 결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직업 교육의 부재

인턴십 제도가 직업을 바꾸려는 청년들의 주요 해결책으로 떠올라


프랑스 연구 조사 기관인 세레끄(Céreq)는 2020년 말에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사회에 진출해 직장 생활을 한 이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위를 취득하는 청년들의 수가 지난 20년간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7년 이내에 다른 전공으로 학업을 이어나간 비율은 1998년 14%였던 것에 비해 2010년 23%로 증가했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 그 수는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초년생들이 다시 학업을 시작하기로 선택한 것은 대학 새내기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졸업생들이 제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대학 재입학이라는 새로운 수를 두는 첫 번째 이유는 프랑스 사회 내에서 ‘대학 졸업장’이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40퍼센트대로 한국의 절반 가량의 비율임에도 학사 졸업장이 있어야 자신이 속한 직업군에서 인정받는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무시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 4월 보도된 르몽드 지에 실린 인터뷰 발췌 부분이다. 문학 학사 취득을 중도 포기하고 곧바로 일을 시작한 클레어 로떵 씨는 “20대 초반의 모든 게 지겨웠고 그저 경제활동을 하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5년간 애니메이션, 요식업, 이벤트 기획 등의 분야에서 일한 그녀는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던 현실의 탈출구로 대학 새내기가 되기로 결정했고 학사학위와 동등하게 인정되는 DAEU(대입 시험을 치르지 않고 대학에 준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 졸업장을 얻기 위해 파리 제 1대학 판테온-소르본에 입학했다.


범죄심리학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익명의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을 하기로 결정을 했을 때 언젠가 다시 학업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공무원 시험은 대학 졸업장 없이도 응시 가능 하지만 그래도 학교에 입학해 학위를 취득한다면 훨씬 수월해질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자기 계발을 위해 직업과 비슷한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다시 입학하는 직장인도 있다.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5년간 매장 및 통신 판매직에서 일한 베티 펩바이 씨는 최근 사이버 대학에서 디지털 마케팅 학사를 취득했다. 그는 “판매직에 종사했을 때 스스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새로운 학사 학위를 취득하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하며 석사과정도 고려중이다.  


고등 교육까지 마친 청년들이 다시 새로운 전공을 선택하는 또 다른 이유를 고등학교부터 이어져 온 ‘실질적인’ 직업 교육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운 직장 생활의 이상적인 모습과 실제 사이의 괴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고등학생 때 결정한 진로가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것을 사회에 진출한 뒤에 느끼는 경우도 많다. 


지난 4월 보도된 르몽드 지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슬런 던전 씨는 간호사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녀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보던 병원에서의 삶과 학교에서 교육받았던 의료인으로서의 생활은 그저 이상적인 것이었다. 처음으로 병원에서 인턴십을 시작했을 때 오던 괴리에서 충격을 받았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전문직의 삶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졸업 후 2년 반 동안 중환자실 병동에서 야간 근무를 하면서 은행 관련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프랑스 은행 CIC와 금융 학교의 전문화 과정에 등록했다. 그로부터 1년 후 학위를 취득했고 학위 취득과정에서 인턴십으로 일한 회사에 취직했다. 


당면한 보건 위기로 인해 새로운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재입학하는 졸업생의 수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 위기로 인한 뉴노멀 시대에 맞서 청년들은 새로운 대책을 세우고 잠시 회피할 곳을 마련할 방편으로 대학에 새로 입학하거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진로를 다시 선택하고 있다. 


지난 4월 5일 필자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연극 학교를 졸업하고 스위스에서 배우 활동을 하는 조에 슐렌베르그씨는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 예정된 공연이 취소되면서 의도치 않게 집에 있는 시간을 길게 가지게 됐다. 그 시간 동안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는데, 예전처럼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까 하는 직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밝혔다.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첫 출산을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조산사 교육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프랑스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재입학생들을 위해 재정 지원을 다양화하고 있다. 그중 필수 인턴십은 뚜렷한 효과가 있는 제도로 꼽힌다.


필수 인턴십은 학기 말에 직업 현장에 투입되어 실무 경험을 쌓는 제도이다. 유럽연합의 다양한 국가에서 할 수 있으며 각종 제한을 완화시켜 문턱을 낮췄다.


2019년부터 인턴십 실습생 계약 연령이 만 30세까지로 늘어났고 전문직 분야는 연령 제한이 없어 재입학하는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변경됐다.


또한 만 26세 이상의 실습생들은 최저임금의 100%를 보장받는다. 새로 학업을 시작해도 인턴십 기간에 돌입하면 학생들은 생활비를 벌면서 동시에 전문분야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필수 인턴십 제도의 혜택을 보는 것은 학생들 뿐만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보건 위기 상황에서 ‘한 명의 청년, 하나의 해결책’이라는 정책의 일환으로 한 명의 인턴십 실습생을 고용하면 고용주들은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정책은 2021년 말까지 이어진다. 


잘 갖춰진 인턴십 제도만으로 새로 학업을 이어나가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은 프랑스의 고등교육기관 대부분이 무료 거나 학비가 아주 적다는 것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하다.


한국에서도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 새로운 전공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졸업생들이 많지만 다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꿈꾸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사립대학교 비율이 높은 편이고, 학교를 졸업하고 이미 쌓인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도 빠듯한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직업 훈련 센터 등이 생겨나고 다양한 청년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막연하거나 형식만 있는 대책이 아닌 실질적으로 청년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재교육 방안 및 재정적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프랑스 파리 = 최예진 글로벌 리포터 yjchoi5201@gmail.com


■ 필자 소개 

움직임 연극학교 Ecole Internationale de Théâtre Jacques Lecoq 졸업

극단 Sitio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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