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원격 교육, 위기의 박물관을 구하다

박인혜 2021. 4. 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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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교육전문가와 퀴즈 풀며 주제별 맞춤 학습

팬데믹으로 시작된 디지털 교육, 더 많은 참가자 불러와

박물관, 보는 관람이 아닌 흥미로운 탐구의 장소 되어야


박물관에서 현장 수업하는 날, 학생들은 교실 밖으로 나온 것에 신나지만 한편으로는 오래된 물건만 가득한 박물관이 못내 지루하다. 교사들에게 박물관 방문은 학습에 생동감을 더하는 이점이 있지만, 일정을 맞추고 현장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통솔해야 하는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박물관 방문이 학생들의 진짜 흥미를 끌어 의미 있는 학습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 박물관 방문에 대한 교사들의 부담을 덜고 책을 벗어나 더 자주 체험하는 교육을 하도록 할 수 있을까? 


스웨덴의 박물관에는 전시 전문가인 학예연구사뿐 아니라 학생과 교사를 위한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하는 교육 전문가들이 함께 일하며 이런 고민을 담당하고 있다. 


스웨덴 국립 세계문화박물관의 디지털 교육 책임자인 마티아스 캐스텔씨(Mattias Kästel)를 만나 스웨덴의 박물관 교육과 팬데믹을 계기로 시작된 디지털 원격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들어봤다.



◆마티아스 캐스텔(좌) ©Christer Brosché, 세계문화박물관(우) ©박인혜


스웨덴 국립세계문화박물관(Världskulturmuseerna)은 스톡홀름과 예테보리에 있는 4개의 박물관을 포함하는 문화기구이다. 스웨덴이 보유하는 세계 각국의 유물들을 보존, 연구, 전시하고, 고대 문명에서부터 현재의 국제화 이슈까지 다양한 문화의 발전 속에 인류가 함께 살아온 역사를 교육한다.  


마티아스 캐스텔 씨는 국립세계문화박물관에서 13년간 일해왔으며 현재는 박물관 디지털 원격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진행을 맡고 있다. 공연 및 전시 교육 분야에서만 20년 넘게 일해 온 그의 이력에는 교육학에서 시작해 역사학, 최근에는 박물관학까지 전문성 개발을 위한 끊임없는 학업의 흔적이 빼곡하다.


그런 그에게도 방역 방침 때문에 박물관이 오랜 기간 휴관해야 했던 2020년은 매우 힘들었던 한 해였다. 평소 연간 1,200여 회에 달하는 단체 방문 학습 진행 및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12명의 교육전문가가 일해 왔지만, 팬데믹 이후 네 명의 동료가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다행히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지금은 연계 교육기관을 확대하는 한편 3D 모델링을 활용한 새로운 온라인 교육과정 개발에 골몰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필자가 마티아스 씨와 화상 인터뷰를 가진 날은 그중에서도 기록적으로 바빴던 한 주의 마지막 날이었다. 매년 예테보리에서 열리는 국제 과학 페스티벌 주간을 맞아 세계문화박물관의 디지털 프로그램에도 일주일 동안 무려 50개 팀이 방문했다.


팬데믹 이후 많은 박물관이 시민들을 위해 온라인 개관을 마련했지만, 세계문화박물관의 경우 전시 관람의 개념을 넘어서 평소 박물관 현장에서 진행하던 주제별 학습 과정을 온라인 실시간 교육으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인터뷰 당일 필자가 참관한 한 단체의 디지털 방문 프로그램은 '민주주의는 우리가 만드는 것(Demokrati finns inte - vi gör den: Democracy does not exist - we do it)'이라는 주제였다. 세계의 민주주의 현황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등 교실에서 책을 놓고 공부한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관련된 실제 역사적 장면의 사진과 포스터가 하나하나 제시되고 중간마다 실시간 퀴즈가 이어지면서 온라인 화상 회의실에는 한 시간 내내 열띤 참여가 이어졌다.


참정권을 설명하면서 스웨덴에서 수감자들이 최초로 투표권을 갖게 된 연도를 퀴즈로 맞춰보고, 여성 투표권 운동이 벌어지던 1918년 저마다 고풍스러운 모자와 긴치마를 차려입은 여성들의 시위 행렬 사진을 살펴보는 식이었다. 현재 진행형 이슈인 영주권을 가진 이민자와 해외 교포의 투표권 문제를 놓고 잠시 서로 다른 의견을 들어보는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역사적 사건부터 최근의 이슈까지 하나의 주제를 통해 들여다보면서, 필자 또한 참정권, 평등권, 숙의 민주주의 등 귀에는 익숙하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던 추상적 개념들이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문화박물관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의 교사용 유인물 자료 표지 ©마티아스 캐스텔


교육을 마친 마티아스 씨에게 효과적인 디지털 교육을 위한 기법을 물어보자 "교육에 황금률은 없다"라며 다만 "언제나 학생들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두고 소통하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짧은 박물관 방문에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해 스스로 찾아보고 그 주제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이 박물관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학생들이 다시 박물관으로 지식을 찾아 돌아오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세계문화박물관 홈페이지에 주제별로 마련된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들이 바로 그런 교육적 목적을 갖고 유기적으로 설계된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팬데믹 이후의 디지털 박물관 교육의 전망을 묻자, 마티아스 씨는 원격교육이 휴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확실히 박물관 교육에 더 많은 참여자를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제는 박물관의 중요한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개발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의 참가 학교를 전국적 범위로 확대하는 한편, 3D 모델링과 VR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 교육 플랫폼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새 플랫폼은 가상공간을 돌아다니며 시간 여행을 하듯 역사적 장소를 탐험할 수 있도록 구현될 것이라며, 좀 더 풍부하고 흥미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라는 그의 눈에 열정이 돋보였다.


스웨덴 예테보리 = 박인혜 글로벌 리포터 yierang@naver.com


■ 필자 소개

스웨덴 예테보리 교육정보기술학 석사과정

이화여대 MBA 석사

중앙대 심리학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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