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찾아 떠나는 여행..노르웨이 민중고등학교

이철규 입력 2021. 4. 23. 16:00 수정 2021. 4. 2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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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과정의 진로 탐색 운영하는 '노르웨이 민중고'

150년 역사의 정식 인가 교육기관


"한 해 동안 무엇을 하며 지내시겠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학교에서 열정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세요"


노르웨이 민중고등학교(Folkehøgskole, 폴케호그스콜라)를 소개하는 홈페이지 첫 화면의 문구이다. 민중고등학교는 한국에서 조금 낯선 교육 방법이지만 북유럽 국가에서는 보편적인 교육방식 중 하나다.


민중고등학교는 덴마크의 교육자이자 신학자인 그룬트비(Grundtvi)가 개발한 교육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일반 교육과 공교육의 촉진을 목표로 한다. 그는 학교 시험이나 전문 기술보다는 스토리텔링, 강의 및 대화를 통해 국가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1844년 덴마크에 최초의 민중고등학교를 열었다.


노르웨이 민중고등학교는 1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관리 감독하는 정식인가 교육기관으로 고등교육에 연령 제한이 따로 없어 시민학교라 불리기도 한다.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이 진로를 고민하며 선택하는 곳 중 하나도 민중고등학교다. 일반적으로 1년 과정으로 운영된다. 학교 생활을 통해 향후 대학에서 새로운 학업을 선택할지 또는 사회에서 일을 할지, 창업을 할지 등 인생의 갈림길에서 한 해 동안 원하는 분야에 몰입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대학 입시를 위한 이론 위주의 배움과는 다르게 여행을 통해 조금 더 지구의 자연과 환경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 과의 상호 관계를 통해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교육을 진행한다.


◆민중고등학교 홈페이지 초기화면, 한국 K-pop학과 검색 예시 ©민중고등학교(Folkehøgskole) 


노르웨이 교육당국의 보조금과 학생들의 실비로 기숙학교 운영

학비는 따로 없지만 한 해 평균 120,854 NOK(한화 기준 약 1,600만 원) 비용에도 만족도 높아


노르웨이 '민중고등학교 교육법'에 따라 민중고등학교는 학습 프로그램에 필수적으로 기숙학교를 갖고 있고, 시험이 없어야 한다는 등의 필수 법률 규정을 만족해야 교육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미래 직업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적성을 찾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민중고등학교는 스포츠, 여행, 언어, 문화, 환경,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음악, 연극, 뮤지컬, 예술, 공예 등의 프로그램을 갖추고  2021년 기준 84개 학교에서 790여 개의 기숙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 진학 시 민중고등학교 관련 과정을 이수한 이력이 정량적인 도움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중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NTNU)에서 심리학 연구를 하고 있는 빅토리아 타오씨(Victoria Tao)는 지난 1년 간의 민중고등학교 생활이 이전의 학교 생활과는 다른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휴식을 위해 민중고등학교를 선택했는데 이곳에서의 연극 수업과 여행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배우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동서양의 문화를 배우는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 하데란드(Hadeland)민중고등학교를 선택한 안나 위스텀 씨(Anna Wistum)는 요가와 명상수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배움으로써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전공 선택과 진로 고민을 하는 청소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시험이나 성적에 대한 고민 없이 관심분야를 스스로 선택해서 원하는 삶을 미리 살아보는 과정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이다.


실제로 노르웨이 설문조사기관 EPSI Rating에서 2020년 11월에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직업학교, 대학교 만족도 조사에서 민중고등학교가 최고 평가를 받았다.


노르웨이 고등교육 과정에 대한 지난 10여 년 동안의 교육 만족도 조사 결과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민중고등학교, 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학부모 대상 만족도 조사(2020년 11월 설문조사 자료 ) ©EPSI RATING NORGE


◆2012~2020년 민중고등학교와 대학, 전문기술학교 등 고등교육만족도 조사 결과 (빨간색이 민중고등학교) ©EPSI RATING NORGE


한국어, 한국 문화, 태권도, K-pop 학과까지

민중고등학교에서 한국 및 동양문화 관련 과정 인기


대부분 무상인 노르웨이 고등교육 시스템에서 1년에 1000~2000만 원가량 되는 비용(기숙사비, 식비, 학습 교구, 여행비 등 포함)에도 민중고등학교의 학업 만족도는 매우 높다. 


우선 민중고등학교 비용에 대한 학생 기금 지원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일정 거주 요건 등을 만족하면 비용의 최대 90%가 무이자 대출이 가능하다. 또한, 수업일의 10% 넘게 결석하지 않으면 대출금의 40%는 장학금 형식으로도 전환 가능하다.


무엇보다 비용에 대한 걱정보다는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민중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양한 커리큘럼을 통해 일반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배우기 어려운 학습 주제를 접할 수 있고 학과 지원의 폭이 넓다.  


실제로 한국어, 한국 문화, 태권도, K-pop 학과까지 민중고등학교에는 한국 및 동양 문화 관련 과정도 개설돼 있으며, 한류 열풍과 맞물려 관련 학과는 입학을 위해 대기를 할 정도로 노르웨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민중고등학교 한국 K-pop 학과 ©Hadeland Folkehøgskole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더 상승한 학생 지원율

단체 합숙생활에 따른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대책 마련 필요


북위 74~81도, 상시 거주인구 2,000여 명 밖에 안 되는 노르웨이 최북단 스발바르 군도. 이곳에 세워진 민중고등학교에도 자신의 미래를 찾기 위해 1년간의 삶의 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노르웨이 민중고등학교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는 온라인 학습의 대안으로 노르웨이 민중고등학교 지원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지난 4월 노르웨이 공영방송(NRK) 뉴스 보도에 따르면, 부활절 연휴 이후 기숙사 생활을 하는 민중고등학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례가 나오면서 집단생활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가 이어졌다.  


학생들의 단체 합숙생활에 대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외국에서 학교 성적, 어학점수 없이 지원 가능하나 외국인 입학비율 제한하기도

북유럽 민중고등학교(시민학교), 성인 평생 교육과정으로 발돋움


웅장한 자연 학습장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활비에 연령, 학력 제한 없이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은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매력적이다. 한국에서도 북유럽 민중고등학교 유학 컨설팅을 진행하는 곳이 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노르웨이 민중고등학교법에서는 외국인 학생에 대한 입학 비율을 제한하고 있다. 북극의 기후와 환경 문제를 연구하는 스발바르(Svalbard) 민중고등학교는 외국인 비율을 10% 이하로 제한해 자국민의 입학을 독려하고 있다.


사람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소규모의 그룹으로 이루어지는 현장 수업을 통해 다양한 언어, 인종, 문화와 어울리고, 토론하며, 도전해 나가다 보면 공동체로 하나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장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학습 프로그램과 기숙사 공동생활을 통해 서로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학습 집단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150여 년 이어온 나를 찾아 떠나는 민중고등학교 여행은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확산되고 성인을 위한 평생교육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너 자신이 특별하거나 잘 나지 않은 것을 알아라"는 얀테의 법칙을 생각하게 하는 북유럽 특유의 공동체 철학이 담긴 민중고등학교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불확실해진 미래에 나를 찾으려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꿈과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길 기대해 본다.


노르웨이 오스 = 이철규 글로벌 리포터 global279@gmail.com


■ 필자 소개

의료기기 유럽 에이전트

전직 마이스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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