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통해 세상읽기] 손부족봉유여(損不足奉有餘)

여론독자부 2021. 4. 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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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LH·채용비리에 국민들 공분한 건
공정하게 겨룰 기회조차 빼앗긴 탓
가진 것에 더 많은 것 보태려 말고
모든 이에게 공평한 사회 만들어야
[서울경제]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공정으로서 정의는 오늘날 더 이상 교과서 안에서나 소수의 전문가가 추상적으로 논의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제 공정은 우리 사회에서 정권이 국정 과제로 추진하거나 특정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여러 차례 화두로 부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의와 공정이 사회적 현안이 될 때마다 정계와 언론계 그리고 학계의 범위를 넘어 시민 단체와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논의 과정에 직접 목소리를 내며 참여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 담론은 먼저 거시적인 논의에서 시작했다가 요즘은 아주 구체적인 사안에 이르기까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처음에 사회 정의는 지난 1980년대 초 ‘정의 사회 구현’의 슬로건으로 크게 부각됐다.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갑작스러운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성 정치인을 부패와 타락을 일삼는 집단으로 몰고 소위 ‘우범자’들을 사회 불안 세력으로 간주해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

이때 정의는 사회 곳곳에서 만연하고 있는 부패와 타락, 질서 파괴와 안정 위험으로부터 소위 ‘선량한 국민’을 보호하는 이념이었다. 즉 정의는 선과 악의 대결에서 선의 승리를 목표로 하는 지상 과제로 설정됐다. 이처럼 정의가 이념으로서 지상 과제가 되자 이 정의를 주도하는 집단이 과연 정당한지 묻지도 못하는 분위기가 강요됐다. 정의가 절차와 목표가 정당한지 논의되지도 않은 채 “이것이 정의다”라는 선언으로 국민을 우르르 몰고 가려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정으로서 정의는 여전히 선과 악의 대결 논리로서 작동하지만 아주 미시적인 영역까지 침투하게 됐다. 예컨대 이전에 대학의 교·강사가 수강생의 학점을 부과하면 그것으로 평가가 끝나지만 요즘 수강생은 자신의 학점이 어떻게 평점됐는지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고 부당한 사항이 있다면 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시정하지 않으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험에서 부정행위는 과거 학창 시절의 전설이나 추억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감독관이 부정행위자를 모르고 넘어가면 수강생이 객관적인 사실을 갖고 찾아와서 적절한 처분을 요구한다. 부정행위는 나쁘지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일이 아니라 그로 인해 성적의 정당한 평가가 왜곡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정되지 않으면 공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일자리·부동산과 관련해서 공정으로서 정의는 블랙홀과 같이 사회의 다른 논의를 집어삼킬 정도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서 실패는 쓰라리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당락에 특혜, 청탁, 정치적 고려 등이 조금이라도 개입하게 되면 그 결과는 반드시 시정해야 하고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때문에 어떠한 사안이라도 공정으로서 정의와 연관이 된다면 소수의 전문가만 관심을 갖는 고담준론(高談峻論)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두 눈 뜨고 지켜보는 활화산이 됐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공정으로서 정의가 정권의 기획 상품이나 추상적인 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정의 사회의 구현을 더 깊고 튼튼하게 할 것이다.

왜 이렇게 공정으로서 정의가 뜨거운 주제가 됐을까.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의 기회를 갖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회가 만인에게 열려 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그 가능성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따라서 그 과정이 공정하다면 실패를 수용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이에 대해 노자도 일찍이 ‘자연의 길은 남는 곳을 덜어서 부족한 곳을 채우지만 사람의 길은 부족한 곳을 덜어서 남는 곳에 갖다 바친다(천지도·天之道, 손유여이보부족·損有餘而補不足. 인지도·人之道, 손부족이봉유여·損不足以奉有餘)’고 비판했다.

여기서 하늘의 길이 오늘날 공정으로서 정의에 해당된다면 사람의 길은 불공정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손부족(損不足)은 그나마 바늘구멍처럼 좁은 기회마저 가로채는 것이고 봉유여(奉有餘)는 이미 가진 것에다 더 많은 것을 보태 탑을 쌓는 것이다. 이로서 손부족과 봉유여는 현실과 관련이 희미한 고담준론이 아니라 불공한 사람의 길을 비춰서 공정한 자연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지극히 구체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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