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처럼..내 가게도 모두가 어우러진 사랑방이 되길 [다른 삶]

나승위 입력 2021. 4. 23. 16:26 수정 2021. 4. 2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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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위의 '라곰 배우기'

[경향신문]

유럽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지던 작년 봄 스웨덴의 느슨한 코로나19 대응책에 분개했다. 병약자나 노약자들은 다 죽으란 말인가? 왜 마스크 사용을 권하지 않는가? 레스토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웃고 떠드는 저 사람들은 대체 제정신인가? 바이러스들이 이 입 저 입, 이 코 저 코 사이를 춤추면서 떠다니는구나!

이 프랑스 학생은 유창한 한국말로 “김밥 한 줄 주세요!”라고 했다.

그렇게 분개했지만, 그 느슨함 덕분에 작년 여름 비빔밥을 파는 도시락 가게를 열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역병으로 감염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마당에 작으나마 레스토랑을 열었으니 정작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은 내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가끔은 제정신이 아닌 일도 벌이고 해야, 삶이 다채롭고 박진감 있게 흘러가지 않겠는가? 뭐든 덤비고 보는 성격이라 때로 삶이 피곤하지만, 이 때문에 역병이 창궐하는 시기 나는 말뫼에서 한국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일한 한국인이 되었다.

가게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국인이 하는 한국음식점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86세 할머니가 옆 도시 룬드에서 기차를 타고 오시기도 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노인 사망자 수가 급증하던 때여서, “코로나가 무섭지 않으세요?”라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내가 나이는 많아도 건강하니 걸리지 않을 거야. 설령 걸려도 나을 거고!”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조심하셔야지요!”라고 재차 걱정했더니, “내 나이 86세인데 뭐 얼마나 더 살겠다고 가고 싶은 곳도 안 가고 보고 싶은 사람도 안 보고 갇혀 지내겠어? 한국 사람이 만든 비빔밥도 이렇게 먹어보면서 살아야지!”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젊으나 늙으나 나이 상관없이 죽음은 두려운 법인데, 역병과 죽음에 대한 스웨덴 노인의 담담한 태도를 보니,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 했던 전직 대통령의 유서가 떠올랐다.

지난 여름 ‘도시락 가게’ 창업하자
스웨덴·팔레스타인·프랑스인 등
다양한 국적·인종 사람들 찾아와
‘K팝·드라마’ 이야기 하며 보람도
‘한국 대표’ 같은 부담감도 있지만
사랑방 주인장 역할 잘 해볼게요

레스토랑을 연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내게 큰 모험이었다. 솔직히,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정도 별로 없다. 아무리 유명한 맛집이라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옆집에 간다. 그러니까 나는 레스토랑을 열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말뫼에 비빔밥이 아닌데 엉뚱하게 비빔밥이라고 이름을 붙여 내놓는 레스토랑들이 생겨나니, 한국인으로서 스웨덴 사람들에게 진짜 비빔밥 맛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팔레스타인 소녀 미희는 이 한복을 입고 나가 추석을 주제로 발표했다.

아무도 강요한 바 없는 이런 사명감을 “자발적으로” 가지고 나는 도시락 가게를 열었다. 사명감만 충천했을 뿐, 정작 음식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비빔밥은 대단한 요리실력을 요구하는 음식이 아니다. 양념해 볶은 고추장과 참기름이 만났으니 내 비빔밥은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얼마 전 한 단골이 내가 말뫼에서 한국음식을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고 알려주었다. ‘도시락 Dosirak’의 구글 평점 4.8! 좋은 성적이다!

성적이 오르면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것처럼, 도시락 가게 일이 재미있어졌다. 레스토랑 일이란 게 음식을 만들고 고객을 만나는 일 두 가지인데, 그중 나는 고객을 만나는 일이 아주 즐겁다! 시내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지역에 위치한 내 레스토랑의 주요 고객은 주변 오피스빌딩에서 일하는 직장인과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다. 동네 단골들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모두 고추장과 참기름의 찰떡궁합 덕분이라 생각한다!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라고는 하나, 말뫼는 인구 35만명의 작은 도시이다. 인구 절반가량이 외국인이고, 180개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산다. 이는 뉴욕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인데, 그래서인지 내 도시락 가게에 오는 고객들의 인종과 국적도 무척 다양하다. 내 비빔밥은 무려 180개 국적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셈이다.

처음 레스토랑 문을 열었을 때는, 진짜 한국비빔밥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을 뿐 간판 위에 적힌 ‘코리아 Korea’란 이름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고, 어떤 역할을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고객 중에는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과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거나 뭔가 한국과 연관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동네 단골들은 내 레스토랑이 굴러가도록 연료를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지만, 내게 인상적인 고객들은 한국에 관한 관심으로, 또는 한국과 연관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입양인 요나스는 종종 아내, 딸과 함께 비빔밥을 먹으러 도시락 가게에 온다.

지난여름에는 한 뉴욕 출신 미국인이 왔는데, 자기 아내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면서 한국에서 살아봤다고 내게 자랑을 했다. 이제 한국에서 살아본 것이 자랑거리가 될 만큼 세계 속의 한국 위상이 높아졌다. 그 자랑이 뒤이어 들어온 단골까지 이어져, 서울이 코로나19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이고, 동해와 설악산 절경까지 언급하며 한국 방문을 버킷리스트에 올려야 한다고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이 코로나19 시국에 마스크도 쓰지 않고 침을 튀기며 얘기하다니…. 다른 이야기였으면 입 좀 다물어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며칠 뒤에 그의 부인도 왔다. “안녕하세요?”란 그녀의 서툰 인사말이 아주 반가웠는데, 그녀 역시 한국 사람을 보니 부모님을 뵌 듯 반갑다고 말했다!

도시락 가게에 불쑥 들어와 서툰 한국어를 사용하여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사람은 팔레스타인 소녀다. 그녀는 K팝과 한국드라마 광팬으로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한다. 그녀의 모든 SNS 계정은 한국 아이돌 스타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스스로 한국 이름도 지었다며 자신을 “미희”라고 불러 달라고 수줍게 얘기했다. 이런 친구를 보면 뭐든 퍼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게다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이민자 가정 출신이니, 미희가 오면 비빔밥 그릇 뚜껑이 잘 닫히지 않을 만큼 산처럼 쌓아 담아준다. 어느 날은 미희가 부탁이 있다며 찾아왔다. 학교 수업 발표과제 주제를 한국의 추석 명절로 정했는데, 관련하여 인터뷰 영상을 찍어줄 수 있겠느냐고! 그리고 발표할 때 입고 싶으니 혹시 내게 한복이 있다면 빌려줄 수 있겠느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두 부탁 다 들어주었고, 한 달에 두 번 도시락 가게 청소 아르바이트 거리도 주었다.

미희보다 훨씬 유창한 한국말로 “김밥 한 줄 주세요!”라고 말해서 내가 감동했던 프랑스 여학생도 있다. 한국에서 3년 동안 살면서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며 한국말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외국인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다니, 극히 드문 일이라 감개무량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네요!”라고 칭찬해 주었더니, “한국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많이 봤더니, 한국어가 쑥쑥 늘었어요!”라고 발랄하게 답했다. 그녀의 핸드백에는 ‘안녕’이란 글자가 박혀 있다.

한국에는 가 본 적도 없으면서 한국드라마에 푹 빠진 스웨덴 여성도 가게를 찾아왔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란 드라마를 본 적 있냐고 물었는데, 제목도 모르는 드라마이다. 그녀는 그날 첫손님이었는데, 나와 2시간 가까이 틈틈이 얘길 나누다가 그날 마지막 손님보다도 늦게 돌아갔다. 그녀는 어른에게 공손한 한국문화를 경외한다며, 특히 젊은이들이 나이 든 어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고, “형” “누나” “언니” “오빠” 같은 칭호는 너무 정겹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선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이긴 하다. 스웨덴뿐 아니라 대부분 서구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특히 스웨덴은 여하간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존중이 있을 뿐, 나이나 지위에 따른 존중은 없다! 상사와 부하직원도, 선생님과 학생도 모두 직함 없이 친구처럼 서로를 간단히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데 부르는 칭호가 실제 관계에도 꽤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어디서?”란 말은 스웨덴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꼰대’도 있을 수 없다! 이 스웨덴 여성은 한국 드라마에서 어른에게 공손한 젊은이만 보고 아직 꼰대 어른은 보지 못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나는 결코 ‘꼰대’는 아니지만, 나이 든 티를 내는 한국인인지라 ‘미풍양속’이란 단어도 점잖게 알려주었다.

지난겨울에는, ‘미풍양속’이란 단어가 친근할 연세인 70대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이 도시락 가게를 찾아오셨다. 40여년 전에 남편과 함께 이민을 오셨는데, 남편분이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꺼려서 알고 지내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다고 하셨다. 간혹 이렇게 한국인과의 교류를 피하며 사는 교민들이 있다. 자녀만 셋 키우셨을 뿐, 직업도 없고 가깝게 지내는 친구도 없이 오로지 남편과만 돈독하게 지내셨는데, 몇 년 전에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신 뒤 인생의 구심점을 잃고 허망한 세월을 살고 계셨다. 스웨덴에서 40년 넘게 사셨으나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1970년대 후반의 한국인 정서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세 자녀 모두 한국말을 못한다며 한숨을 쉬셨는데, 한국의 미풍양속 전통을 전혀 알지 못하는 스웨덴인 정서의 자녀들과 친밀한 교감이나 나눌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목에 뭐가 걸린 듯 답답하고 뭔가 원망스럽고 왠지 속상했다. “제 도시락 가게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어요?” “한국에 사는 내 친정 식구들이 인터넷으로 찾아서 알려줬어. 말뫼에 한국인이 하는 레스토랑이 생겼으니 한번 찾아가 보라고!” 할머니가 다녀가신 뒤, 나는 가게 간판 위에 적힌 ‘코리아 Korea’란 이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코리아’는 한국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코리아’는 한국 사람뿐 아니라 한국 입양인들도 끌어 당긴다. 도시락 가게에 입양인들도 꽤 찾아오는 편인데, 모두 지인이 되었다.

요나스는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예쁘고 똘똘한 딸과 행복한 삶을 산다. 집이나 회사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비빔밥을 먹으러 도시락 가게에 온다.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르다.

멀고 먼 호주에서 도시락 가게로 전화를 한 사람도 있었다. 용건인즉슨 말뫼에 사는 친한 후배가 득남을 해서 뭔가 선물을 하고 싶은데, 내게 한국 통장이 있다면 그리로 돈을 보낼 테니, 그 액수만큼 후배에게 선물을 전달해 달라는 것이었다. 도시락 가게가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될지 몰랐다.

도시락 가게가 ‘한국’이란 이름을 건 공간이란 점에 나름 무게를 느낀다. 고객들에게는 내가 그들이 아는 유일한 한국인일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무도 강요한 바 없지만, 그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좋은 인상을 주고 싶다는 사명감이 또 ‘자발적으로’ 든다!

나는 도시락 가게가 ‘한국’이란 이름 아래 사람들이 모이는 아름답고 즐거운 사랑방이 되면 좋겠다. 고추장과 참기름이 만난 듯! 도시락 사랑방 평점 4.8! 이렇게 좋은 성적을 받으면 사랑방 주인장 역할이 재미있어질 것 같다!

▶나승위

갑자기 스웨덴에서 일자리를 찾은 남편을 따라 아들 셋을 데리고 남부 도시 말뫼에 왔다. 처음엔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뭘 하며 사나 했는데, 지금은 제법 바쁜 사람으로 통한다. 스웨덴을 한국에 소개하는 책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와 <스웨덴 일기>를 썼고, 스웨덴 사람들에게 한국의 맛을 소개하고자 비빔밥을 파는 도시락 가게를 최근 열었다.

나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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