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문가들 "탈원전하면서 탄소제로 목표 달성은 불가능"
文 대통령 기후정상회의에서 "석탄발전 줄이고 재생에너지 확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이 주최한 세계 기후정상회의에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정부의 탈(脫)석탄 기조가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퇴출시킨다는 조치인데, 경제계와 전문가들은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하는 에너지 정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이미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탈석탄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전력 공급 불안, 전기료 인상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저(低)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의 비중을 낮추면 정부가 내세운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마저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한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탈석탄 기조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국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허가를 전면 중단하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를 조기 폐지했다"면서 "대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석탄발전의 빈 자리를 태양광·풍력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탈석탄이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하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석탄과 원전은 24시간 연속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국내 대표 기저전원인데, 동시에 비중을 낮추면 전력 공백이 생길 우려가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력 생산량에서 석탄은 35.6%, 원전은 29%를 차지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6.8%에 그쳤다.
문 대통령의 선언대로 석탄의 빈 자리를 태양광·풍력으로 빠르게 대체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태양광·풍력은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간헐성 때문에 설비용량에 비해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우리나라 태양광 발전의 평균 이용률은 약 15%, 풍력은 23% 수준이다. 그래서 항시 전력공급을 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해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은 원자력 발전이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고, 원전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석탄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대신 원전을 기저전원으로 활용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탄소 배출량도 줄인다는 전략이다.
미국은 올해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는 한편, 차세대 원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 비중을 낮췄던 일본도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원전을 재가동하기로 했다. 중국도 경제 성장에 따라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고 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동시에 늘리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된 평가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원전과 신재생 에너지를 병행해야 경제적인 타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전력 수급 안정성을 유지하고 탄소중립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면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탈석탄 드라이브가 결국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증세 없는 복지 없듯이, 발전 단가가 높은 태양광·풍력 비중을 늘리면 전기료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태양광·풍력 등으로 생산한 전력은 1kWh당 89.9원으로 원전 전력 단가(56.2원)의 약 1.6배다.
여기에 정부는 값싼 석탄과 원전을 대신할 징검다리 에너지원으로 LNG(액화천연가스)를 선택했다. LNG는 해외에서 전량 수입하는 데다 발전단가가 비싸고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LNG 의존도가 높아지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불안정성이 커지고 전기요금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결국 에너지 전환에 따른 비용을 국민과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데, 정부가 경제성이나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고 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 주도로 석탄 발전량을 줄이자 그 빈 자리를 원전이 채우면서 원전 발전량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발전 단가가 저렴한 원전이 그만큼 기저전원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탈원전 정책의 역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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