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왔습니다" 무심코 문 열었더니..'배달원 위장' 범죄 주의보

이주미 2021. 4. 2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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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등 배달원 사칭 범죄 잇따라 발생..1인 가구 · 여성 '불안'
스토킹하다 세 모녀 살해한 김태현도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
'무인 택배함' · '폐쇄회로(CC)TV' 설치 등 예방책 마련 필요
최근 택배 기사 등을 사칭한 범죄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주미 기자] 최근 택배기사나 배달원을 사칭한 범죄가 잇따르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자칫 살인 같은 잔혹한 범죄도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안전한 배달 환경을 조성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6일, 강원도 강릉에서 30대 남성 A씨가 택배기사로 위장해 아파트에 침입한 사건이 일어났다. A씨는 귀가하는 초등학생을 따라가 택배가 왔다며 문을 열게 한 뒤 집으로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혼자 있던 아이를 결박하고 흉기로 위협하며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1억 원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아이 휴대전화와 집 안에 있던 현금 약 10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가 당일 경찰에 검거됐다. 피해 아이는 다치진 않았으나 정신적 충격으로 심리 상담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발생한 이른바 '배달원 위장 범죄'는 이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여성을 스토킹하다 결국 살해하고, 여성의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살인한 '노원구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의 범인 김태현 역시 퀵서비스 기사로 가장하고 집 안으로 침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태현은 범행 당시 집안에 있던 여동생이 물건을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하자, 피해자가 집 밖으로 나올때까지 기다린 것으로 전해졌다. 흉기를 든 채 기다리다 피해자가 문을 여는 순간 집안으로 밀어붙여 침입한 것이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 김태현은 당시 퀵 서비스 기사로 위장해 피해자의 집을 침입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배달원을 단순 사칭하고 끝난 게 아니라 피해자가 물건을 가지러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법이 점점 고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범죄 예방책 중 하나인 '비대면 수령'도 소용이 없다. 가해자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밖을 나설 때까지 기다린다면 피해자는 무방비 상태에서 범행을 당할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배달원 위장 범죄에 여성들을 비롯한 1인 가구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여성인 친구와 단둘이 사는 대학원생 조 모씨(25)는 "김태현이 밖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피할 수 없는 범죄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택배 등을 이용할 때 특히 신경 쓰게 된다"고 토로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이 모씨(24)도 "평소에도 개인 정보가 노출될까봐 송장을 찢어서 버리고 주의하는 편이었는데, 이런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니까 두려운 마음이 크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임시방편으로라도 무인 택배함의 실효성을 높여 안전한 배달 수령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인 보관함을 통한 수령 문화를 장착시켜 집으로 직접 오는 배달에는 시민들이 의심을 품도록 하자는 것이다. 배달원 사칭 범죄를 근절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겠지만, 최소한의 예방책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무인 안심 택배보관함에서 한 시민이 물품을 수령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문제는 이미 지자체 사업의 일환으로 무인 택배 보관함 설치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편리성이 떨어져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점이다. 경기 부천시가 운영하는 여성안심 무인택배함이 단적인 사례다. 여성안심 택배함은 택배기사 사칭 범죄 등을 예방하고 1인 가구의 택배 수령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2019년 4월부터 지난해 11월 기준 총 20개소의 보관함이 운영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어 '실패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택배함 설치장소를 살펴보면 주로 공영주차장, 도서관 주민센터 등에 위치해 있다. 수령자 입장에서는 무거운 택배의 경우 집 근처에서 받아야 편리하기 때문에 먼 곳까지 가기엔 불편하다는 지적이다.

같은 해 홍진아 부천시의원은 "2019년에 여성 안심 택배함 1칸을 월평균 1.6회 사용했고 올해(2020년 6월 기준)는 월 4회 사용했다"며 안심 택배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예산으로 차라리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집 앞 설치를 지원하면 매년 240곳에 무인택배함을 설치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문가는 무인 택배함 등을 통해 안전한 배달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단은 문을 열지 않고, '집 앞에 놔두고 가세요'라고 말하는 게 1차적 예방 방법이었는데 (김태현 사건의 경우)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며 "무인 택배함을 이용한다면 예방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가능한 경우,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미 기자 zoom_01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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