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들어온다”… 한국 조선, 독 빌 틈이 없다

영암/송혜진 기자 2021. 4. 2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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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조선업… 전남 영암 조선소·대불산단 르포
21일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건조 중인 대형 LNG 컨테이너선(왼쪽)과 초대형유조선(VLCC). 국내 조선업이 지난 연말부터 대규모 수주에 성공하면서 최근 조선사 독은 건조 중인 선박들로 가득 차 있다. /영암=김영근 기자

지난 21일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70만평 공장에 있는 3개 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에는 빈 곳 없이 초대형 LNG 컨테이너선과 LPG선, 벌크선 등 8척의 건조 작업이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었다. 보통 독 1곳에서 2~3척 건조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 LNG 컨테이너선 근처에선 새로 건조될 선박에 쓰일 강철을 모듈(덩어리) 형태로 잘라내는 작업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조선업 불황에 코로나까지 겹쳐 3개 독이 모두 가동되는 날이 드물었다. 최근 상황은 달라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중국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글로벌 선박 발주가 늘었다. 한국 조선 업체들이 잇따라 계약에 성공하며, 독이 비는 대로 선박이 줄줄이 들어온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다른 조선 계열사인 울산의 현대중공업 7개 독, 미포조선소 4개 독도 거의 차 있다. 현대삼호중공업 한정동 전무는 “독이 전체 풀가동되는 것이 몇 년 만인 것 같다”며 “이제 막 바닥에서 무릎을 뗀 기분”이라고 했다.

조선소에서 8㎞가량 떨어진 전남 영암 대불산업단지. 조선 기자재 업체 300여 곳이 몰려 있는 이 공단은 일감이 없어 3~4년째 문을 닫고 있는 공장이 30여 곳 있다. 조용하던 이 산단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채용 공고를 내는 업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선실 내부 설비 업체 관계자는 “2016년 전체 직원 250여명 중 절반을 내보냈는데, 이번에 5년 만에 새 직원을 뽑는다”며 “작년 말부터 주문이 조금씩 늘어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대불산업단지의 2월 상시 고용 인원은 작년 같은 달보다 1.4% 늘었다.

국내 조선업 현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공장 가동률이 상승하고, 채용이 늘면서, 조선업에 의존하던 지역 경제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중·일 ‘조선 경쟁’에서 기술로 승부수

독에서 건조 중인 LNG 컨테이너 선박의 연료 탱크실에 들어섰다. 9% 니켈강으로 만들었다는 1만2000㎥ 규모의 초대형 탱크가 보였다. LNG 연료는 선박용 디젤에 비해 오염 물질 배출이 적어, 환경 규제를 피하려는 글로벌 선주들이 경쟁적으로 주문하는 선박이다. 하지만 LNG를 영하 163도 이하에서 보관해야 해 다루기 까다롭다. 삼호중공업 사업기획담당 이승환 상무는 “니켈이 포함된 LNG 연료 탱크를 용접할 때는 일반 용접 기술로는 안 된다”며 “이 기술은 한국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2010년 전후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던 국내 조선업은 2016년 수주 절벽에 내몰렸다. 저유가와 불경기로 선박 발주가 줄어든 상황에서 중국 조선 업체의 저가 수주에 직격탄을 맞았다. 반전의 계기는 2019년 말 국제해사기구(IMO)가 2025년까지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최소 30%를 감축하라는 기준을 제시하면서 찾아왔다. 선주들이 가격보다 기술력에 주목하면서 다시 한국 조선 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국내 조선 업체 관계자는 “중국 조선 업체가 수주했던 LNG 추진 컨테이너선이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며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이 돋보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비었던 조선소 독에 船 들어왔다

올해 들어 한국 조선 업체는 글로벌 물량의 절반 이상을 쓸어 담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 업체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전 세계 신규 선박 발주량은 1024만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323척)였다. 이 중 우리나라 조선 업체가 52%인 532만CGT(126척)를 수주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회사인 한국해양조선은 3월까지 82척·69억달러어치를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같은 기간 22척·20억달러를 수주했고, 삼성중공업은 42척·51억달러를 수주했다.

조선업 호황으로 지역 경제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대불산업단지에서 컨테이너선의 해치커버를 만드는 ‘마린텍’ 작업장에는 80여 직원이 조립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김용환 대표는 “일감이 서서히 늘고 있어 연말까지 20%가량을 더 채용하고, 생산 장비도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라고 했다. 산단 내 공장 가동률도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다. 2017년 대불산업단지의 가동률은 55.2%에 그쳤지만 작년엔 69.1%였다. 올 들어서는 가동률 70%를 넘어섰다. 현대삼호중공업 협력사 인원도 늘고 있다. 2018년 6312명이었던 것이 올해 3월엔 7116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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