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버리던 핵연료봉 100% 다시 쓴다..'原電은 지속가능 에너지' 입증

이해성 2021. 4. 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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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적 타당성 충분" 결론
국내 포화상태 '사용후핵연료'를 다시 '원전 땔감'으로 사용
美서 '친환경 에너지원' 인정..폭발위험 없이 활용도 가능
업계 "폐쇄될 원자로, 수명 다할때까지 활용할 기반 마련"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 ‘프라이드(PRIDE)’에서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와 아르곤국립연구소가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적, 경제적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국내 원전산업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두 연구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제조와 전후(戰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도한 세계 최고 권위 기관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전을 ‘재생 가능한 친환경 발전소’로 업그레이드하는 첨단 신기술이다.

지난 22일 열린 기후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52% 감축하겠다는 공격적 수치를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원전 활용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불가능한 전략”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대비 2050년까지 원전을 20%, 미국과 영국은 두세 배 늘리는 전략을 확정했다. 특히 ‘차세대 소형 원자로(SMR)’인 소듐냉각고속로(SFR), 납냉각로(LFR) 등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다. 전력 공급뿐 아니라 대형 원전에서 쓰고 남은 폐기물(사용후 핵연료)을 재활용할 수 있어서다.

 사용후 핵연료, 친환경 재활용 새 전기

파이로는 리튬, 칼륨, 카드뮴 등이 염(Cl)과 함께 녹아 있는 500~650도 고온 ‘용융염’에서 사용후 핵연료에 포함된 유해 방사성 물질을 분리하는 기술이다. 2011년 미국과 프랑스가 파이로 기술 도입을 국제사회에 천명하면서 개발 경쟁에 가속도가 붙었다.

사용후 핵연료는 우라늄 95.6%와 나머지 방사성물질로 구성돼 있다. 요오드,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퀴륨 등이다. 처리 방법은 습식, 건식 두 가지로 나뉜다. 습식 처리는 폐연료봉을 질산수용액에 갈아넣고 ‘인산트리부틸’을 첨가한 뒤 전기를 가해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한다. 핵연료 한 다발을 100%로 보면, 플루토늄은 1%가 남는다. 이 플루토늄만 갖고도 원자폭탄 10개를 제조할 수 있다.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소수 ‘핵 선진국’이 습식 처리 기술을 엄격히 통제하는 이유다.

반면 파이로는 습식 처리 기술과 달리 플루토늄을 따로 분리하는 게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여러 가지 과일을 섞은 주스에서 특정 맛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이정익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파이로를 일각에서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기술이 타당성을 확보하면 원전이 지속가능 에너지라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탈원전의 논리가 파괴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탈원전 정책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원전 기술은 산소 공급이 끊긴 뇌사 환자 수준에 처했다”며 “더 늦기 전에 (환자에게) 호스를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세대 원전 땔감’에 세계 이목 집중

파이로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고준위 핵폐기물의 독성을 없애는 것을 넘어, 차세대 첨단 원전의 땔감을 새로 창출하기 때문이다. 파이로 처리를 거친 핵폐기물은 SFR, LFR 등 각국이 연구개발(R&D)에 매진하고 있는 4세대 원전, 이른바 ‘젠(GEN)-4’의 연료로 쓰인다.

SFR은 고속 중성자로 핵분열을 일으키고, 소듐(나트륨)을 냉각재로 쓰는 원자로다. 폭발 위험이 대형 원자로와 달리 제로(0)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중국 등 각국이 개발 중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역시 SFR을 개발하는 회사에 거액을 투자했다. LFR은 고속 중성자로 핵분열을 일으키고, 납을 냉각재로 쓰는 원자로다. 벨기에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등이 개발 중이다.

원자력업계 관계자는 “폐연료봉 포화 문제로 조기 폐쇄될 가능성이 높았던 3세대 이하 원자로를 최대한 수명이 다할 때까지 활용할 기술적 기반이 마련됐다”며 “향후 차세대 원자력 정책을 추진할 명분이 확보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다만 파이로가 실제로 도입되기까진 넘어야 할 벽이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파이로에 대한 기술적 검증은 끝났지만 양국이 정치, 외교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핵 단체들은 이미 ‘파이로 결사 반대’에 나섰다. 5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핵재처리실험저지연대는 지난달 말 세종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사 근처에서 “사용후 핵연료는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왜곡한 채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고 반박했다.

■ 파이로프로세싱

사용후 핵연료를 다시 원전 연료로 쓸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사용후 핵연료의 부피를 20분의 1로 줄이면서, 소듐냉각고속로(SFR) 등 차세대 원자로의 연료로 탈바꿈한다. 한국 정부는 파이로프로세싱을 구현하기 위해 1997년부터 연구개발(R&D)을 해왔다.

■ 사용후 핵연료(폐연료봉)

원자력발전소에서 3~5년간 쓰고 남은 핵연료를 말한다. 강한 방사선과 고열을 방출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이다. 현재 국내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있어 영구적 폐기 또는 재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이해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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