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체르노빌 원전사고 겪은 피해자들, 대물림 피폭 흔적 없었다

조승한 기자 2021. 4. 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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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誌 논문 2편 소개..직접 피폭 피해자 돌연변이 발생 많아
1986년 4월 26일 폭발사고가 발생했던 체르노빌 원전의 모습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폭발 사고에서 방사능에 피폭된 피해자들이 낳은 자녀의 유전자에서 방사능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방사선에 노출되면 정자와 난자에 돌연변이가 많이 생겨 후대로 전파될 수 있다는 가설을 뒤집은 연구결과라는 점에서 과학계는 물론 피폭 피해자들에게 한줄기 희망을 주고 있다. 하지만 피폭된 환자들 가운데 피폭 당시 나이가 어린 피해자일수록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손상과 변이가 많이 일어난 것으로 나타나 여전히 체르노빌 사고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26일 체르노빌 사고 35주년을 맞아 원전 폭발로 생긴 방사능 노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두 편의 연구결과를 23일 발표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 옛 소련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북서쪽 원전 지구에서 발생했다. 강력한 폭발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에 누출되며 20만 명 이상이 피폭됐고 2만 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스티븐 차녹 미국 국립보건원 국가암연구소 암 역학 및 유전학 국장이 주도한 연구팀은 방사선 노출 영향이 부모에서 자녀에게 유전되는지를 분석했다. 당시 사고가 난 원전 지역을 청소하는 근로자로 일했거나 주변에 살면서 방사능 피폭을 겪은 105쌍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 130명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자녀들은 부모가 노출된 후 최소 46주가 지난 1987년부터 2002년 중 태어나 임신 중 방사선에 노출되지는 않았다.

분석 결과 자녀에게서 방사선 노출로 발생한 돌연변이가 유전된 흔적은 없었다. 연구팀은 정자와 난자에서 발생해 자녀에게 유전되는 반면 부모에게선 발견되지 않는 유전적 변이인 ‘드 노보(de novo) 돌연변이’를 살폈다. 드 노보는 라틴어로 ‘새로운’이라는 뜻이다. 분석결과 자녀에게서 관찰된 드 노보 변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연변이 비율과 유사했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체르노빌 사고로 방사선 피폭이 후속 세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분석했다. 차녹 국장은 “부모의 게놈을 살펴본 다음 자녀를 조사해 부모의 방사선 노출과 연관된 신호를 찾기 위해 9개월을 일했다”며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후속 세대 건강에는 영향이 없었지만 방사능에 노출됐던 이들의 피해는 컸다. 대표적인 후유증은 갑상선암이다. 이온화 방사선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인체 DNA의 화학적 결합을 깨트린다. DNA의 손상은 암과 같은 질병으로 이어진다. 사고 당시 당국은 방사능 낙진이 떨어진 풀을 먹고 자란 소에서 짜낸 우유가 판매되는 것을 바로 막지 못했다. 당시 어린 나이였던 많은 이들이 다량의 방사성 아이오딘이 포함된 우유를 마시게 됐다. 이로 인해 5000명 이상이 갑상선암에 걸렸다.

연구팀은 체르노빌 사고를 겪은 지역에서 갑상선암에 걸린 440명을 분석했다. 방사선의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어린 나이 혹은 임신 중 방사성 아이오딘(I-131)에 직접 노출된 359명과 체르노빌 사고 이후 최소 9개월 뒤 태어나 직접적인 노출을 피한 81명을 함께 비교했다.

분석 결과 어릴 때 높은 방사선량에 노출된 이들은 한 쌍으로 이뤄진 DNA 가닥이 끊어진 다음 다시 결합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조각이 결합하는 ‘유전자 융합’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당시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나 노출된 방사선량이 적었던 사람은 유전자 특정 부분의 염기쌍이 변하는 점돌연변이로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연구팀은 DNA 이중 나선의 파손이 방사선에 노출된 후 갑상선암이 생기게 하는 유전적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연구는 방사선량과 나이를 이용해 암의 발생 위험을 예측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구에 참여한 린제이 모튼 국가암연구소 연구원은 “종양의 유전자 특성을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인자인 방사선량과 연결할 수 있는 연구”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20년 전 갑상선암에 걸린 주민들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체르노빌 조직은행을 창설하면서 가능해졌다. 당시는 지금처럼 유전자 분석을 통해 세밀한 돌연변이의 특성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때다. 모튼 연구원은 “비전을 가졌던 과학자들에 의해 설립돼 갑상선암에 걸린 지역 주민들의 생체 조직을 미리 모았다”며 “과학자들은 미래에 기술이 발전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이제 연구자들은 그들의 선견지명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유령도시가 된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의 모습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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