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반대하던 '군 가산점' 꺼낸 與..당내서도 "할말 잃었다"

김준영 입력 2021. 4. 28. 10:01 수정 2021. 4. 2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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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폐지된 ‘군 가산점’ 제도가 20년 만에 다시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다. 주체는 보수 정당이 아닌 더불어민주당이다. 4ㆍ7 재ㆍ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 70% 이상이 국민의힘에 몰표를 주자, 이들을 붙잡기 위한 방안으로 꺼내 들었다. 지난 15일 민주당 최연소 남성인 전용기(30) 의원이 “개헌을 해서라도 전역 장병이 최소한의 보상은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김남국ㆍ김병기ㆍ김병주 의원도 잇따라 유사한 취지의 주장과 법안을 내고 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진보 대 보수’…20년간 다툰 첨예한 논쟁
군 가산점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전원 일치로 위헌결정을 받았다. “실적주의에 입각한 공직제도와 공무담임권을 침해하고, 여성ㆍ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공직 취임기회를 제한하여 평등권을 위반한다”는 요지였다. 폐지론을 주도한 건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 참여연대 등 여성계ㆍ진보진영 중심이었다. 군 가산점은 결국 도입(1961년) 40년만인 2001년 최종 폐지됐다.

1999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군 가산점 제도에 대해 9명 전원 일치 위헌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정경식 재판관이 위헌 결정문를 읽는 모습. MBC 캡처


그렇게 사라진 군 가산점의 부활을 끊임없이 모색한 건 보수 진영이었다. 폐지 4년만인 2005년 6월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처음 군 가산점 부활 법안을 냈고, 2007년 고조흥 한나라당 의원이 낸 군 가산점 부활 법안은 2008년 초 국회 상임위원회(국방위)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즉각 노무현 정부 청와대가 “정부는 이를 다시 도입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천호선 홍보수석 겸 대변인)는 입장을 내고, 민주노동당도 반대 의견을 내는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8년 2월 13일 병역을 마친 사람에게 취업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내용의 군 가산점 부활 법안이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상임위 통과 다음날(14일) 천호선 청와대 홍보수석 겸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 장면. 천 수석은 ″과거 위헌 판결에 의해 폐지된 법안을 재도입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YTN 캡처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선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이 대통령에게 군 가산점 재도입을 건의하기도 했는데,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군 가산점제는 이 대통령이 말하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는 공정한 사회’와 배치되는 것”이라며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공동대표가 현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군 가산점 재도입을 건의하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가 9월 10일 군 가산점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연 모습. 당시 기자회견을 연 한국여성단체연합 남윤인순 공동대표는 현재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캡처


이후에도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 등 보수 정당 의원의 군 가산점 부활 법안은 계속 제출됐지만, 번번이 진보 정당과 여성단체에 막혔다. 2014년 박근혜 정부 국방부가 군 가산점제에서 후퇴한 ‘군 복무 학점 인정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자,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현 청와대 청년비서관)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 사람과 대학을 다니지 못한 사람의 갈등이 예상된다”며 반대했다.

지난 대선에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군 가산점 부활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반대 입장이었던 문재인 후보를 향해 “왜 5ㆍ18 가산점은 동의하고, 군 가산점은 동의 안 하느냐”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지난해 1월에도 하태경 의원이 군 가산점 부활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에서 명시한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반대 입장을 냈다.

2017년 4월 25일 중앙일보ㆍJTBCㆍ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대통령 후보 초청토론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여한 모습. 이날 문 후보는 “군가산점에 동의하냐”는 홍 후보의 질문에 “동의 안한다”고 답했다. JTBC 캡처


“지금껏 해온 게 있는데”…당내 정체성 혼란
그랬던 군 가산점 논의가 민주당에서 퍼져 나오자, 당내에선 정체성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 지도부는 “구체적 안에 대해 논의한 바는 없다”(최인호 수석대변인)며 진화에 나섰지만, 국회 국방위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2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두 달 내에 국방위 차원에서 (대안을) 완결하겠다”고 말했다. 지도부의 한 의원은 “당과 조율되지 않은 이야기가 마구 나오고 있다”며 “일부 의원들이 20대 남성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다 섣부르게 해결 방법을 잘못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단체 출신으로 당내 여성 정책에 관여해온 한 재선 의원은 “우리 당이 지금껏 해 온 게 있는데, 일부 젊은 남성의 주장만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젠더 측면만 보지 말고, 20대 전체의 포괄적인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선도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단체 출신 의원은 “위헌 결정이 났음에도, 우리 당이 다시 법을 낸 것에 대해 할 말을 잃었다. 20대 남성 잡으려다 20대 여자 다 떠내 보내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우려대로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혼란이 커지면서 당내 지도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전용기 의원 등을 직접 만나 면담을 하는 등 수위 조절에 나섰다. 학계에선 “군 가산점 부활은 현실적으로 어렵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단이 중론이다. 원내 관계자는 “20대 남성을 잡아야 하는 건 맞는데, 다른 세대와 달리 20대는 사안별로 견해차가 커서 당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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