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모디의 오판·자만이 부른 참사.. 인도 '팬데믹 지옥'으로

장서우 기자 2021. 4. 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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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누적 사망자 수가 2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임시 화장터로 변한 인도 뉴델리의 한 공터에 쌓인 화장용 장작더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올초까진 종식에 희망 걸다가

지방선거 대규모 집회 허용에

힌두 축제 수백만 인파 몰리며

하루 확진자 36만여명 기록도

모디 총리까지 ‘노마스크 유세’

백신공급 자신하며 소량만 주문

K방역 자만하던 韓에 반면교사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하루 신규 확진자 1만 명을 밑돌던 인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최근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 단일 국가로는 처음으로 하루 확진자 36만 명, 사망자 3000명이라는 대기록이 나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팬데믹(대유행)과의 전쟁도 돕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던 발언이 무색할 지경이다.

현재 인도의 ‘생지옥’ 상황은 14억 명에 육박하는 인구의 밀집 거주와 빈곤, 열악한 위생환경과 의료체제가 근본 원인이지만, 최근 2차 대유행은 모디 총리의 실패한 리더십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코로나19를 통제하에 두고 있다는 자만과 안이한 대응이 지난 14일 힌두 최대 새해 축제 쿰브멜라(Kumbh Mela), 지방선거 유세와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팬데믹이 현실화했다. 모디 총리는 지방선거 유세에 ‘노 마스크’ 상태로 참석해 “이렇게 많은 군중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는 말까지 쏟아냈다. 모디 총리의 안이한 인식은 백신 최대 생산국인 인도에서 정작 접종률은 8%에 그치는 결과를 낳았다. K-방역 성과 홍보에 치중하다가 백신 물량 확보 전쟁에서 뒤처진 문재인 정부와도 묘하게 겹치는 가운데, 인도의 사례가 각국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며 인도 지원을 둘러싼 미국·중국의 경쟁이 향후 ‘백신 외교’의 향방을 예측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불타는 로마 바라만 보던 네로 같다”…인도에서 들끓는 여론=“이렇게 많은 군중은 처음이네요. 당신들은 당신들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인도 NDTV가 전한 지난 17일 모디 총리의 발언이다. 그는 ‘록 사바’(인도의 연방 하원) 선거 투표가 예정돼 있던 웨스트벵갈주의 도시 아산솔을 찾아 ‘노 마스크’로 유세를 벌였다. 모디 총리는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관중이 오늘의 4분의 1에 불과했는데, 오늘은 사방팔방에서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가서 투표하라”고 외쳤다.

바로 이날 인도에서 자체 최고 기록인 26만778명의 일일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섬뜩한 광경이다. 불과 4일 뒤인 21일 인도의 일일 확진자는 31만5802명까지 치솟으며 미국의 종전 세계기록(1월 8일, 30만7507명)을 깼다. 제1야당인 국민회의당 전 대표였던 라훌 간디는 “이렇게 많은 수의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것도 처음”이라며 모디 총리를 비판했고, 의회는 트위터에서 “팬데믹 와중에 선거에만 열중하는 총리의 모습은 불타는 로마를 바라만 봤던 네로(황제)와 같다”고 비판했다. 이날 모디 총리의 유세 참석으로 인도 내에서도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마하라슈트라주의 우다브 타케레이 주총리는 중앙정부와 산소 공급부족 문제를 논의할 수조차 없었다.

현재 인도에선 웨스트벵갈주를 비롯해 타밀나두주·케랄라주·아삼주, 연방직할지 푸두체리 등 5개 지역에서 지방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1억8500만 명의 유권자가 824석의 의회 의석을 결정짓는 인도의 선거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물류 훈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기 방역 성과에 도취된 모디 정부는 이를 강행했고, 3∼4월 대규모 정치집회를 허용했다. 모디 총리를 포함한 집권 인도국민당(BJP) 소속 주요 인사들이 연설에 나선 것만 해도 50여 차례에 달한다.

뒤늦게 모디 총리는 지난 2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산소 실린더 공급 △의료용 외 목적으로의 산소 사용 금지 △병상·병원 증설 등 설익은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국적 봉쇄령에 대해선 “마지막 선택”이라면서 결정하지 않았고, 이후 일일 확진자는 35만 명을 돌파하며 종전 기록을 재차 깼다. 트위터에는 ‘모디가 재앙을 만들었다’(#ModiMadeDisaster), ‘모디 사임’(#ModiResign) 등의 해시태그가 쏟아지면서 8년째 재임 중인 모디 총리가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의 약국’ 자랑하며 美에 백신 요구도 안 한 印…오판이 자초한 재앙=‘세계의 약국’을 자처하면서 ‘I-방역’을 자랑하던 모디 총리는 이 자만감 때문에 몰락하고 있다.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 백신 물량을 언제든 확보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2월 중순까지 인도가 주문한 백신 물량은 전체 인구의 단 3%에 불과했다. 인도 내 누적 사망자가 20만 명을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모디 총리는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 소속 국가들에 백신 공급 가능성을 내비쳤던 미국에 끝내 직접적인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CNN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지난 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백신 공급에 대한 구체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날은 미국이 6000만 회분의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타국에 공급할 의향이 있다고 발표한 날이었다.

이는 국제사회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매일 300만 회분의 백신을 접종하던 인도는 뭄바이 등 주요 도시에서 물량 부족으로 백신접종센터들이 문을 닫는 등 국내 상황이 심각해지자 코백스(COVAX·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 백신 협력프로그램)를 위해 생산하는 백신 수출도 중단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모디가 국내외적으로 백신 공급을 과도하게 자신했다”고 지적했다.

◇‘힌두 민족주의’ 기수의 최대 위기…전 세계에 반면교사 되나=2014년부터 재임하고 있는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나라를 사실상 분열시키면서 인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다졌다. 2019년 총선에서 예상을 깨는 압승을 거두면서 ‘메시아’적인 인물로도 평가받던 그는 팬데믹에 단단히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마땅한 대항마가 없는 데다, 카리스마적 인물에 열광하는 인도 정치문화 때문에 이번 위기가 당장은 정치적 파멸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을 계속해서 막지 못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이번 사태는 봉쇄와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여행제한이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는 효과적 수단이며, 빠른 백신 접종만이 팬데믹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겨울 확진자 폭증을 겪은 미국과 유럽이 인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지원을 약속하고 있는 이유다. 동시에 27일부터 실외 마스크 미착용을 허용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인도를 지원하느냐가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백신 외교’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3차 유행의 기로에 선 문재인 정부에도 인도 사례는 먼 나라 일이 아닌 셈이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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