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할 때 꼭 녹음 속기 신청하라, 판사가 달라진다"

박정우 입력 2021. 4. 30.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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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불량 판결문> 저자 최정규 "판결에 토를 다는 불온한 사람, 기꺼이 되겠다"

[박정우 기자]

 <불량 판결문> 펴낸 최정규 변호사
ⓒ 박정우
 
법이란 사회가 안정적이고 타당하게 유지되기 위한 중요한 장치다. 그래서 법은 마땅히 지켜져야 하고, 어기면 그에 맞는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법이라는 것이 올바르고, 타당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여기, 법원의 불친절에 대해 비판하고, 어떤 판결은 판결 그 자체가 '유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최정규 변호사의 이야기다. 그는 대개 장애인, 이주 노동자, 국가 폭력 피해자, 공익 제보자들 같은 약자들을 변호했고, 그의 반대편에는 기득권을 누리거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최정규의 무기는 오직 합리 위에 서 있는 '법' 뿐이었으나, 대부분의 법은 약자와 시민의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법과 싸웠다.

최근 출간한 저서 <불량 판결문>은 최정규가 변호사로서 겪어온 사례들을 바탕으로,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에 대한 일침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모두가 의심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법조계라는 성역을 향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법은 과연 대다수의 시민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

이것은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수도 있지만, 이 문제에 공감하고, 함께 답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면 법조계의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낼지도 모른다. 그가 쏘아 올린 <불량 판결문>이라는 작은 공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지난 28일 <불량 판결문>의 저자 최정규 변호사를 만났다.

"대법원판결 의심하면 법질서 흔들린다? 기득권자들의 방어 논리"
     
- 변호사면서 동시에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사실 처음부터 이런 활동을 했던 건 아니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어쩌다 보니 이주 노동자나 장애인과 관련한 변호를 맡게 됐는데, 그러면서 법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너무 불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 깨달았다. 장애인복지법, 노동법 같은 것은 장애인과 노동자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상식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은 거다.

법이란 원래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참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상식에 맞게 법이 바뀌고 판례가 바뀌는 것이 맞을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민단체와 함께 관련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계신 분들께서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라는 분에 넘치는 호칭을 붙여주셨다."

- 법이라는 것이 노동자나 장애인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예를 든다면?

"문재인 정부가 칼퇴근법 공약을 내걸었는데,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처음엔 이게 게임 업계나 정보기술(IT) 업계에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주 노동자나 농촌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도 꼭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사업자에게 근로자의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기록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농촌에서 일하는 분들 같은 경우 열 시간, 열한 시간 일하고도 여덟 시간 임금만 받는다. 이분들이 노동청에 진정하러 가면 당사자들이 일한 시간을 수첩에 빼곡하게 적어간다. 그런데 노동청에서는 이걸 어떻게 믿냐며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사업주는 웃으면서 말한다. 기록 안 했다고. 그런데 재판 가면 사업주가 이긴다.

미국이나 호주의 법을 찾아보면 사업주는 노동 시간을 기록할 의무가 있고, 이걸 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주장하는 것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해석과 기준이 없다."

-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로스쿨>에 재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이 "형법을 가르치는 로스쿨 교수가 대법원판결에 앙심을 품으면 쓰나"라고 말하자, 검사 출신 로스쿨 교수가 이렇게 말한다. "앙심이 아니라 의심입니다." 작가님처럼 대법원판결을 의심하고 잘못되었다고 하면 대한민국의 어떤 법질서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대법원판결을 의심하면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흔들린다는 기자님의 이 말이 바로 기득권자들의 전형적인 방어 논리다(웃음). 그리고 가설이고. 자매품으로 '악법도 법'이 있는데, 이것도 가설이다. 악법을 법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거라는 가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시민들의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걸 아무도 문제 삼지 않으면 그게 더 근본이 흔들리는 건 아닐까?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아무런 비판을 못 하는 것보다 건전한 상식과 교양을 가지고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법질서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법이란 필연적으로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이 대립한다. 그런데 안정성은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을 바탕으로 이 법이 타당한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회적 약자들이 법으로 자꾸 당하고 있는데, 대법원 판례를 무기로 입을 닫게 한다면 더 큰 폭발과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법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양심적 병역거부나 낙태죄 같은 걸 생각해보면 20년 전만 해도 토를 달기 어려웠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것에 문제를 제기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판사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진짜 이상한 일 아닌가?"
 
 "<불량 판결문>은 너무 불친절한 법원의 행정 서비스, 무성의한 판결문, 그리고 상식에 맞지 않는 법. 이런 것들에 대해 내 생각과 나의 언어로 풀어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박정우
 
- 최근 <불량 판결문>을 출간했다. 어떤 책인지 소개한다면?

"그동안 20년 정도 공익법무관, 법률구조공단 변호사, 개업 변호사를 거치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시민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법원에서 겪는 불편함, 법 때문에 겪게 되는 부당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어느 순간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었다. 

너무 불친절한 법원의 행정 서비스, 무성의한 판결문, 그리고 상식에 맞지 않는 법. 이런 것들에 대해 내 생각과 나의 언어로 풀어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책을 통해 법원의 문제점과 불친절한 행정서비스 등을 짚으면서 이런 것들이 국민이 법원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하나 소개한다면?

"20년 전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하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심지어 주민센터의 서비스나 검찰청 민원실도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신기한 게 법원은 20년 동안 별로 바뀐 게 없다.

한 가지 예로 법원에서 재판이 2시라고 해서 가면 3시에 시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판사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러려니 생각한다. 이거 진짜 이상한 일 아닌가? 요즘 세상에 한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행정서비스가 있나? 무턱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미리 다 약속 잡고 가는 건데. 이런 것들이 이제는 좀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법원 서비스는 독점이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 가지고 나름 경쟁이라도 하는데 사법부는 견제하는 세력이 없다. 변호사회가 있지만 사실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모습이다. 우수 법관은 이름을 공개하면서 하위 법관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변호사회의 현주소다. 이제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 책에는 불량 판결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이 나온다. 직접 담당한 사건 중에서 가장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신안군 염전에서 벌어졌던 노예 사건이 가장 화나는 일이긴 한데, 그건 책에 자세히 소개했으니 여기서는 소액 재판에 관한 내용을 좀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3000만 원 이하의 소액 사건은 심리를 붙이지도 않고 판결문도 나와 있지 않다. 이런 소액 사건이 전체 민사 사건의 70%가 넘는다. 쉽게 말해 70%의 시민들은 내가 재판에서 져도 왜 졌는지 모른다는 거다. 조선 시대 원님 재판도 아니고.

2년 전에 군산에서 한 배에 같이 탔다가 북한에 피랍되어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변호한 적이 있다. 결국 5명 모두가 무죄 판결을 받고, 이후에 각각 국가 배상 소송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배상 금액이 전부 다 다르게 나왔다. 진짜 이상한 일 아닌가? 같이 배에 탔고, 같이 억울한 일을 겪었고, 같이 무죄 판결을 받았으면, 배상 금액도 같아야 맞지 않나. 왜 다 다른지, 배상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어쩌면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재벌 총수건 노숙자건, 수사 기관에서 동등한 대우 받았으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재판관이 아니라 시민이 법원과 법정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재벌 총수건, 노숙자건 수사 기관에서 만큼은 동등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 박정우
 
- 그렇다면 법원으로부터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권리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있을까?

"우선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 가장 먼저가 아닐까 싶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어도 증거가 없으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그래서 나는 재판을 할 때 꼭 녹음 속기를 신청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이거 누구나 요청하면 가능하다.

직접 경험한 일인데 녹음 속기를 하면 일단 판사의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 녹음 속기 파일이 있으면 내가 법정에 가지 않아도 내 변호사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걸 증거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녹음 속기 신청이야말로 투명성을 확보하고, 만일의 일을 대비할 수 있는 좋은 장치라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 이런 활동과 책을 통해 작가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법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만, 법의 문턱은 높기만 하고 법원은 너무 어렵다. 이런 것들을 좀 바꾸고 싶다. 시민들이 억울해서 법원에 갔는데 더 억울하게 나오면 안 되는 일 아닌가.

검찰개혁이나 공수처 같은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이게 우리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소액 사건 같은 것들이 제대로 개정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사실 법조 출입 기자들도 소액 사건이 제대로 심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런데 본인들도 큰 사건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 그런 것들에 대한 일종의 부채감이 있다고 하더라. 그런 점에서 <오마이뉴스>를 포함한 여러 언론사와 같이 소액 사건 개정법에 대해서 제대로 한번 다뤄볼 작정이다.

언론뿐 아니라 시민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간의 활동과 <불량 판결문>을 통해 이런 움직임을 일으켜 보고 싶었다. 모두 다 판결이 이상하다고 하는데 목소리를 못 낸다. 행정부는 비판하고 대통령은 비난하면서 판사는 왜 성역에 갇혀 있나.

물론 판결의 내용은 존중해야겠지만 이렇게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것은 바꿔내야 하지 않을까? 판결에 토를 달면 이상한 사람, 불온한 사람으로 취급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기꺼이 그런 사람이 되겠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결국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재판관이 아니라 시민이 법원과 법정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재벌 총수건, 노숙자건 수사 기관에서 만큼은 동등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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