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에너지는 左右가 없어야 한다

이철균 기자 입력 2021. 5. 3. 17:43 수정 2021. 5. 6. 14: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철균 시그널부장
실용보다는 이념 앞세운 에너지정책
'탈핵' 기조에서 탈원전정책 자리잡아
강국도 30년~100년 긴호흡, 자원장악
5년마다 바뀌정책, 에너지대계 휘청
넷제로·탈원전의 엇박자 정상화부터
원전·재생에너지, 양날개로 날아야
[서울경제]

2019년 11월 호주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50%를 넘어서자 환경단체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의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우리와 맞먹는 경제 규모의 호주가 꿈의 숫자만 같던 50%를 달성했으니 오죽하랴. 호주의 성과를 보면서, 이들은 탈(脫)원전 정책을 비판해온 일부 언론과 진영을 향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왔다’며 질책의 목소리도 높였다. 호주는 에너지 혁명을 이루고 있는데 한국은 기득권의 이익 보호에만 혈안이 돼 정부의 정책에 뒷다리만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까.

호주는 서비스업과 광업·농업 강국이다. 서비스업 비중(산업별 총부가가치 점유율·2019년)이 75%고 광업(9.3%), 농림수산업(2.2%)도 낮지 않다. 제조업은 5.9%에 불과, 산업 현장에서의 질 좋은 전력 소비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국내총생산(GDP·2019년) 세계 14위인 호주의 전력 소비량은 17위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 태양광·풍력도 풍부하다. 가끔 전력 공급이 끊기거나 간헐적이어도 버틸 수 있다. 그랬던 호주도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커지자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소형원전을 검토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에너지강국마저 ‘최적의 에너지믹스’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호주는 다르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GDP 대비)은 27.8%다. 산업의 전력 소비가 그만큼 많다. 소모 비중이 56.3%나 된다. 이런 탓에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량은 세계 7~8위다. 경제규모(10위권)보다 앞선다. 이뿐 아니다. 호주는 석탄·우라늄 등의 수출 국가다. 1차 에너지원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표적인 에너지·자원 빈국이다. 석유나 가스 등 화석연료는 물론 니켈·크롬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광물을 사실상 100% 의존한다. 혹여라도 1차 에너지원의 공급이 차단되면 가정은 물론 산업, 공공시설이 멈춰 버린다. 반도(半島)인데도, 에너지·자원의 섬나라인 한국은 치밀하고 정교한 에너지안보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다.

강국은 ‘에너지=안보’의 전략적 접근이 느슨할까. 그렇지 않다. 미국·중국 등 에너지강국은 물론 독일·일본·영국 등 산업강국은 부러울 정도의 많은 자원을 비축하고 개발해 놓고서도 세계 곳곳에 산재한 자원·에너지의 영토에 대한 탐욕을 멈추지 않는다. 10년, 30년을 넘어 100년 이상의 긴 호흡으로 접근하고 있다. 5년 단위로 에너지·자원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에너지 빈국 한국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행보다.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고리1호기 가동 영구 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고 선언했다. 탈원전 정책의 시작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탈원전도 아니었다. 강도가 훨씬 세고 파장이 큰 ‘탈핵’을 내세웠다. 탈핵의 수위는 낮아졌지만 탈원전은 여러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정책과 함께 5년째 눈과 귀를 닫고 밀어붙여지고 있다.

역시 과하게 쏠리면 탈이 난다. 손바닥 뒤집듯 하는 에너지 정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모순을 초래하고 있다. 탈원전을 고수하면서 탄소 중립 수단으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다 자기 발등을 찍었다. 2019년까지 3년간 화력발전 비중을 40.4%로 줄였는데 정작 영국의 기후행동추적은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호주·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 악당’ 국가로 꼽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 환경단체가 환호했던 그 호주도 포함됐다. 지적은 맞았다. 2017~2019년, 우리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5,100만 톤 늘었다. 화력발전 비중을 줄이면서 LNG 비중은 25.6%로 3.4%포인트 늘린 게 화근. LNG는 깨끗하다는 착각이 빚은 결과다. LNG의 온실가스 배출은 유연탄 못지않다. 더욱이 앞으로 LNG 비중은 더 높아진다. 현재 41.3GW인 LNG 설비는 2034년에는 60.6GW로 약 48%나 증가한다.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이다.

석탄 발전을 줄이고 재생 발전은 늘렸는데 왜 온실가스는 더 늘었을까. 탈원전에 그 답이 있다. 원전을 태양광·풍력 등으로 대체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LNG발전소가 중요하다. 태양광·풍력은 전력 공급이 들쭉날쭉하다. 간헐성인데 치명적이다. 특히 양질의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한 반도체·철강 등 산업체에는 독약과도 같다. 이런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LNG발전을 늘리고 있다. ‘재생+LNG발전’ 조합으로는 한국은 기후 악당의 오명을 절대 벗을 수 없다. 처음부터 ‘원전+재생에너지’의 정책을 펼쳤다면 불필요한 극단의 논쟁도, 기후악당 오명도, 기술사장도 없었을 것이다.

최고 통치자의 눈과 귀가 더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난 4년간 우리는 똑똑히 목도했다. 정교하지 못했던, 이념에 쏠린 정책은 여러 부작용을 초래했다. 부동산 정책이 그랬고 소득 주도 성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도 마찬가지다. 소재·부품·장비의 극일(克日)을 하자면서 정작 그 원료가 될 니켈·코발트·구리 광산 등을 팔고 있다.

국제사회의 흐름은 바뀌고 있다. 탄소와의 전쟁을 위해 미국은 물론 독일·대만·일본 등도 다시 원전을 꺼내고 있다. 오죽하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기존 원자로 수명을 연장하고 새로운 원전 건설을 늘릴 것을 권고했겠는가. 4년간 해보고 싶은 만큼 했다. 이념의 옷을 벗고 환경과 산업 경쟁력을 모두 아우르는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철균 기자 fusioncj@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