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는 강한데 합주는 약한 한국? 편견입니다
숫자 4. 클래식 음악에서는 실내악의 완전체를 뜻한다.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와 첼로로 구성된 현악 4중주는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까지 작곡가들에게 평생의 화두였다. 하지만 한국 음악계에서 실내악은 기악 독주(獨奏)나 성악에 비해 상대적인 취약점으로 인식됐던 것도 사실이다. ‘화려한 독주에는 강하지만 옹골진 합주(合奏)에는 약하다’ ‘꾸준히 장수하는 실내악단 없이 단명한다’. 이런 고정관념에 끈질기게 도전하는 젊은 남녀 실내악단들이 있다.
◇15년 차 장수하는 실내악 아이돌
남성 4인조인 노부스 4중주단은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선후배들이 의기투합해서 결성했다. 출발은 조촐했다. 학교 공연장(현 이강숙홀)에서 슈베르트 현악 4중주 한 곡을 연주한 것이 전부. 리더인 제1바이올린 김재영(35)씨는 “학교 친구나 지인을 포함해도 객석에는 스무 명 남짓이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2008년 오사카 콩쿠르 3위를 시작으로 2012년 독일 뮌헨 ARD 콩쿠르 2위와 2014년 모차르트 콩쿠르 1위까지. 이들은 한국 실내악에서 ‘최초’의 타이틀을 거머쥔 팀으로 성장했다. 그 뒤 유럽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하고 세계 시장에 음반도 내놓았다. 제2바이올린 김영욱(31)씨는 “초기엔 아시아 실내악팀이 드물었기 때문에 무대에 올라가기 전부터 차별이나 편견과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어느새 15년 차. 웬만한 아이돌 그룹보다 장수하는 비결이 있다. 악단을 이끄는 제1바이올린과 보좌 역할인 제2바이올린이 고정되지 않고,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곡마다 번갈아가며 맡는 ‘민주적 운영’이다. 미국의 정상급 에머슨 4중주단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세계 음악계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 김재영씨는 “동료 선후배나 팬들도 우리 연주를 보지 않고서 듣기만 하면, 누가 제1바이올린을 맡았는지 헷갈린다”며 웃었다.
이들은 6월 16~19일 예술의전당에서 실내악의 험준한 고봉 등정에 나선다. 소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전곡(15곡)을 나흘에 걸쳐 완주하는 ‘실내악 마라톤’ 무대다. 중간 휴식을 빼고도 전체 연주 시간만 6시간. 비올라 김규현(31)씨는 “마지막 4중주 15번은 비탄과 정적마저 음악으로 담아내서 지하나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면서 “길고 어두운 실내악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어떤 빛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실내악의 ‘우먼 파워’
2016년 결성한 여성 4인조 ‘에스메 콰르텟’은 ‘우먼 파워’라는 꼬리표(해시태그)를 소셜 미디어에 붙인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거나 역동적인 연주 장면을 촬영한 사진에 주로 달린다. 제2바이올린 하유나(29)씨는 “여성들로만 구성된 악단도 드물고 아시아 4중주단도 적지만, 동양 여성 실내악팀은 정말로 희귀할 정도”라며 “여성 실내악단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도 2018년 영국 런던의 유서 깊은 음악당인 위그모어홀의 실내악 콩쿠르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명문 음반사 알파를 통해서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베토벤의 초기 4중주와 함께 진은숙의 실내악 ‘파라메타스트링(ParaMetaString)’을 담았다. 진은숙의 작품은 세계 첫 음반 녹음. 첼로 허예은(28)씨는 “아시아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진은숙 선생님의 곡을 발견했다”면서 “앞으로도 근현대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을 조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5월 11일과 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이들은 두 차례 실내악 무대를 갖는다. 매년 365일 가운데 300일은 모여서 연습하는 성실성이야말로 쾌속 성장의 동력. 이들은 농담 삼아 ‘에스메 주식회사’의 ‘완 대표’(리더 배원희) ‘하 이사’(제2바이올린 하유나) ‘김 부장’(비올라 김지원) ‘허 과장’(허예은)이라고 부르며 팀워크를 다진다. 이들은 “언제 상장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에스메의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지 않고 계속 우상향하는 것이 목표”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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