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 방울이, 코코"를 법당에 모신 이유

김지숙 입력 2021. 5. 5. 10:06 수정 2021. 5. 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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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포천 관음사서 로드킬·학대 피해 동물들의 천도재 열려
"고양이 N번방, 대전 살묘남 사건 피해동물들 넋 위로"
5월 2일 경기도 포천 관음사에 학대, 로드킬, 유기 등으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물 천도재’가 열렸다.

“흙동이, 비쥬, 미아, 행복이, 비비, 퐁퐁이….”

법당 안에 동물들의 이름이 차례로 울려 퍼졌다. 생전에 가족들에게 주로 불렸을 이름을 나직이 부르는 것은 스님이었다. 스님이 손에 든 축원지에는 귀여운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목탁과 법고, 종소리를 배경으로 이름들이 호명되자 참가자들은 두 손을 맞잡거나 가슴 앞에 모아 합장을 했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사료, 간식, 장난감 빼곡한 ‘동물 제사상’

지난 2일 경기도 포천 관음사에서는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물 천도재’가 열렸다. 천도재란 죽은 생명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치르는 49재도 이런 천도재에 해당한다. 보통 천도재라고 하면 사람만을 위한 의식으로 생각하지만, 불교에서는 동물도 윤회하는 중생으로 여겨 천도재, 수륙재(水陸齋·물과 육지를 떠도는 영혼, 아귀를 달래고 위로하는 불교 의례) 등을 지낸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법당 안은 천도재 준비로 분주했다. 활동가들은 전날까지 밤새워 만든 동물 액자, 반려인들이 보내온 손편지와 공양물, 동물들이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물건들을 제단에 올리기 위해 정리 중이었다. 사료부터 주식으로 먹던 캔, 짜먹는 간식과 어묵 꼬치 장난감, 담요와 축구공까지 정말 가지각색 물건들이 법당 한쪽에 모아졌다. “생전에 주고 싶었던 걸 보내신 것 같다”고 신정숙 조남동보호소(경기 시흥시) 소장이 말했다. 커다란 제기에 개 사료와 고양이 사료도 각각 그득하게 부어졌다.

천도재 제단에는 동물들의 사진과 함께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간식과 장난감 등이 놓였다. 봉우곰스튜디오 제공
천도재 제단에는 동물들의 사진과 함께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간식과 장난감 등이 놓였다.

사람 장례식처럼 동물들의 생전 사진들이 제단에 올려졌다. 제단 아래쪽에는 동물 영가의 위패도 나란히 붙었다. 거의 실제 사진이었지만 몇몇 동물들의 모습은 일러스트로 올라와 있었다. 행사를 마련한 콩이바바(활동명) ‘좋은냥이 좋은사람들’ 대표는 “이 아이들은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는 동물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림으로 그려진 고양이들은 학대로 죽은 동물들이다.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웃고 있는 ‘턱시도 냥이’는 지난 1월 고양이 N번방 사건 때 살해된 고양이를 그린 것”이라고 전했다.

한 반려인이 고어전문방 학대사건 기사에 매번 다친 사진으로 등장하던 고양이를 추모하기 위해 이날 천도재를 신청한 것이다. 이 반려인은 고양이의 이름을 ‘흙동이’라 붙여주고, 재에 올릴 고양이 간식과 장난감을 보내왔다.

2시간 반 이별 의식…“사람 천도재와 똑같아”

흙동이 뿐이 아니었다. 천도재에 이름을 올린 302마리의 동물들은 대부분 학대로 사망했거나 유기, 질병, 로드킬 등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동물들이다. 지난 10여년 간 고양이를 죽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는 ‘대전 신탄진 살묘남’ 피해동물부터 재개발·재건축으로 희생당한 개·고양이, 로드킬로 생명을 잃은 길고양이들, 어렵게 입양된 뒤 식용이 된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생명이었다.

스님들은 북, 태평소, 바라 등의 불교 예불 악기 등을 연주하며 살풀이춤, 바라춤 등으로 동물 영가들을 위로했다. 봉우곰스튜디오 제공

천도재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시작됐다. 행사는 코로나 거리두기 방역수칙에 따라 천도재 사전신청 인원 가운데 10여 명만 참석이 가능했다. 집전은 천도재를 위해 다른 절에서 관음사를 찾은 스님 네분과 관음사 주지 혜영 스님이 맡았다.

꼬맹이, 방울이, 희망이, 코코…세상을 떠난 동물의 영혼들도 차례로 불려 나왔다. 엄숙한 의식에서 깜찍한 동물 이름들이 흘러나오는 것이 낯설기도 했지만, 참가자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이었다.

천도재는 한 편의 짜여진 예술작품처럼 흘러갔다. 여느 불교의식처럼 재를 올리는 사람이 절을 하거나, 향을 피우는 순서도 있었지만 의식은 주로 스님들의 연주나 춤으로 채워졌다. 마치 스님들이 영혼들을 위한 공연을 펼치듯 북, 태평소, 바라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살풀이춤, 바라춤 등을 쉴새 없이 선보였다.

스님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동물들의 이름을 읽고 있다. 봉우곰스튜디오 제공
일요일 오후에 3시에 시작한 ‘동물 천도재’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봉우곰스튜디오 제공

2시간 반 남짓, 스님들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서 있던 참가자들이 지쳐 자리에 앉을 때까지 이별 의식은 이어졌다. ‘동물 천도재’ 위패를 든 좋은냥이 콩이바바 대표를 선두로 참가자들이 모두 법당을 몇 차례 돌고, 절 마당으로 나가 동물의 이름을 썼던 종이를 태우는 것으로 의식은 마무리됐다. “강아지 고양이들아, 동물 영가시여 왕생극락해서 연화세계 가옵소서.” 스님의 마지막 축원에 반려인들이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천도재를 준비한 혜영 스님은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 고통받고 희생당한 생명을 위로하는 일에 구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스님은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든 무료로 신청을 받아 행사를 준비했다. 오히려 스님은 “오늘 고양이 천도재를 지낼 수 있어서 나에게는 이것이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름 없는 동물들’까지 챙긴 사람들

사실 이날 천도재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고양이들’에 있었다. 관음사는 지난해 ‘묘연 깊은 곳’으로 화제가된 바 있다. 스님은 지난 2013년 유기 고양이 한 마리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사찰에서 약 50여 마리의 길고양이를 돌봐왔다.

그러던 도중 개체수 조절이 어렵게 되자 몇몇 개인 활동가가 이를 도우며 ‘관음사 프로젝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관음사 고양이들 중 성묘들은 모두 중성화 수술을 마쳤고, 어린 고양이들은 입양을 가 약 24마리의 고양이가 절에서 지내고 있다.

관음사 주지 혜영 스님은 2013년부터 유기 고양이를 돌본 인연으로 현재까지 사찰 내에서 고양이 20여 마리를 키우며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당시 관음사 프로젝트 활동을 벌였던 좋은냥이는 최근 심각해진 동물학대 사건들을 지켜보며 천도재를 기획하게 됐다고 전했다. 콩이바바 대표는 “최근 학대로 사망한 길고양이 비쥬 사건이 계기가 되어 천도재를 구상하게 됐다. 그동안 학대사건이 벌어지거나 로드킬 사체를 수습할 때면 늘 제대로 장례를 치러주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마침 관음사 스님께 부탁을 드리니 흔쾌히 승낙해주셨다”고 말했다.

좋은냥이는 지난 4월부터 인스타그램(@kong2baba)으로 천도재에 참가하고자 하는 반려인들을 모집했다. 천도재의 특성을 고려해 일반 반려동물보다는 슬프고 억울하게 떠난 동물들을 중심으로 신청을 받았다. 초반에는 길에서 죽은 동네 고양이들이나 오랜 투병 끝에 생명을 잃은 동물들의 사연이 들어왔지만, 행사일이 가까워지자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의 피해동물들을 올리고 싶다는 신청자가 늘어났다.

좋은냥이는 지난 4월부터 인스타그램으로 천도재에 참가하고자 하는 반려인들을 모집했다. 좋은냥이 제공
실제 사진 대신 일러스트로 오른 고양이 영정들. 길고양이 활동가 ‘캣츄’(@__cat_chu__)가 고어전문방 학대사건 피해 고양이로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흙동이’(왼쪽)와 올 초 수원 지역 교육기관 앞에서 살해된 아기 고양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좋은냥이 제공

천도재에 참석한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권유림 좋은냥이 고문 변호사는 “저도 생각지 못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본인이 돌보던 동물이 아닌 학대사건 피해동물들의 천도를 부탁해 오셨다. 반려인구 천만 시대에 그만큼 동물에 대한 인식이 넓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비타민 동물병원 윤재원 원장(수의사)도 이날 동물 여러 마리의 이름을 천도재에 올렸다. 윤 원장은 “수의사로서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동물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시켜야 했던 아이들, 혹은 치료 중에 사망한 아이들의 이름을 올렸다”고 전했다. 그는 전날 아내와 함께 돌보던 유기견들의 이름을 적다가 한참을 울었다고 덧붙였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과정”

천도재가 끝나고 제단에 올려졌던 동물의 사진은 모두 재가 됐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고양이별에선 행복하게 지내렴’ 같은 메시지가 담긴 손편지와 작은 꽃과 리본으로 장식된 액자, 동물의 얼굴도 모두 불 속으로 사라졌다. 전날 밤을 새워 이 준비물들을 만들었던 좋은냥이 김 아무개 활동가는 연신 눈물을 닦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천도재는 제단에 올렸던 동물의 위패와 사진을 태우며 극락왕생을 비는 의식으로 마무리됐다.

“마음이 편안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래요. 아까 사진을 태우면서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빌어줬어요. 떠난 아이들의 영혼을 위로 하는 행사라고 하지만 결국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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